[기고] 인생 3막 여정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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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인생 3막 여정을 묻다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1.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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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시상자로 “PARASITTE (패러사이드)!!!”을 크게 외치며 봉준호 감독을 호명하며 우리 한국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던 그 여배우가 나이 90을 바라보는 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사회운동가 제인 폰다(Jayne Seymour Fonda)로 다섯 번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와 두 번의 수상을 한 그녀는 지금도 배우로서의 역량은 출중하다. 그게 다가 아니다.

그녀는 평생을 반전운동과 여권운동에 앞장서 왔으며, 최근에도 스웨덴 ‘환경 지킴이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활동에 감명받아 매주 금요일 기후변화 회복을 위한 시위인 ‘파이어 드림 프라이데이’를 주도하다 체포되어 수감되는 등 환경운동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30년 수명이 길어진 요즈음 세대에 그녀의 저서 ‘황금기(Prime Time)’는 ‘제인 폰다의 인생 3막’을 잘 말해준다. 즉 그녀의 삶은 배우라는 위치를 통해 세상의 모순을 결코 방관하지 않고 부딪히고 극복 해냈다. 또한 여성의 섹슈얼리티(sexuality)를 과감하게 표현하고 스크린에서도 건강한 인생을 엮어 나가는 열정적인 인생 3막의 삶을 살고 있다.

이렇듯 미국에 제인 폰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평생을 책과 우리 문화예술을 함께 한 김종규(金宗圭)가 있다. ‘문화 대통령’ ‘문화계의 영원한 마당발’ ‘출판계 대부’ ‘축사의 달인’ ‘프로참석러’ ‘뮤지엄 마피아 보스’ 등 국내외에서 불리는 별칭·애칭이 그를 말해준다. 삼성출판사 CEO 출신이고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삼성출판박물관장으로 출판계를 이끈 큰 어른으로서 우리나라 문화예술 발전에 힘써왔다.

그는 평소 인생 3막을 “인생을 90세까지로 볼 때, 첫 30년은 배움으로 채우고, 다음 30년은 생업에 전력을 쏟으며, 그 이후 30년은 사회에 되돌려줘야 합니다. 이게 내 인생 모토예요. 돈도 시간도 재능도 되돌려주는 인생을 살려고 해요.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요.”라고 말하곤 해 필자도 그 가르침을 따르고자 했지만 쉽지 않음을 늘 깨닫게 된다.

그는 마당발 시절 인연들 중 김종규 인생에 길을 내준 고마운 두 분으로 바로 자신의 큰 형으로 학창 시절, 부모님 대신 학부모 역할을 해준 김봉규 삼성출판사 창업회장과 천하의 이야기꾼이자 시인(문인), 학자, 교수, 행정가의 종합 세트면서 천재인 고(故) 이어령 선생을 얘기한다.

이어령 선생은 삼성출판사가 1972년 월간 ‘문학사상’을 창간했을 때 편집주간였고 1989년 초대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2000년대까지 박물관 1,000개는 있어야 하고 출판 박물관은 필수”라고 말해 평소 고서(古書) 수집에 힘써 ‘새 책 팔아 헌 책 산다’는 말을 듣던 그는 이 말에 크게 고무됐고, 1990년 대한민국 첫 출판 전문 박물관인 삼성출판박물관 개관식 때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만파식적 소리가 들린다’는 이 장관의 축사를 듣고 그는 펑펑 울었다는 일화도 있다.

조용헌 교수의 칼럼 “선거운동의 방식은 크게 2가지이다. 하나는 워딩이다. ‘귀족 노조’ ‘적폐 청산’ 같은 단어들은 공중폭격의 효과가 있다. 다른 하나는 땅개작전이다. 땅개처럼 시장 바닥을 훑고 다닌다.(요약) 문화계 원로 중에서도 2가지 스타일이 있다. 원로 이어령은 공중폭격이다. 워딩의 귀재이다. 김종규는 땅개작전이다. 땅개작전의 구체적 방법은 축사를 해주러 다니는 일이다. 70대 중반의 전성기 때만 하더라도 하루에 7~8군데 축사를 해주곤 하였다. 하루에 7~8군데를 하려면 시간대별 교통 상황, 동선이 엉키지 않도록 면밀히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축사의 달인’이다.”를 읽고 어쩜 그렇게 잘 보고 썼는지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젊은 시절엔 불모지나 다름없던 출판계에 뛰어들어 사회에 꼭 필요한 책들을 펴내며 한국인의 지성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했고, “책으로 얻은 지식은 영원하고 디지털에 비할 수 없다”는 철학이 지금까지 책과 함께 해온 한국 출판문화의 산 증인으로 그 역사를 말해준다.

“박물관은 한 나라 문명의 척도”라는 지론을 바탕으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박물관협회 회장을 지내며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큰 힘을 쏟았다.

현재는 회원 기관 1,000개를 훌쩍 넘긴 협회의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2004년 서울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린 세계박물관대회(ICOM) 공동조직위원장, 2005년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추진위원장을 역임했고 “우리 경제가 어느날 갑자기 성장해 강국이 된 게 아니듯, 수천년 문화적 저력이 있어 현재 대중문화도 가능하고 그 뿌리에 출판이 있다.”고 강조한다.

2009년부터는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을 맡아 워싱턴D.C 주미대한제국 공사관 환수 및 소대헌·호연재 고택 등은 물론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는 근현대사 건축물인 보성군 보성여관의 관리 복원을 시작으로 시인 이상의 옛집과 향토사학자 윤경렬 선생 옛집 매입, 울릉도 도동리 일본식 가옥 보존 및 관리 등의 의미 있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활동에는 약 1만 5000명의 회원과 함께하고 있는데, 회원 모집에는 ‘문화유산 지킴이’이자 ‘문화계 마당발’인 그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필자는 늘 “일정을 무리하게 잡지 마시고 건강 잘 챙기세요”라고 간청했지만 지금도 쉬지 않고 2만 명을 목표로 질주하고 있다.

3년 전에는 50여 년 전 인사동에서 ‘서울 변두리 집 두 채 값’이라고 구입해 소장 해오던 ‘가례집람’ 책판(冊版) 9장 등 활자본과 달리 대체 불가능한 목판 인쇄 장치 원본 54장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충남 논산의 돈암서원(遯巖書院)에 기증했다.

이 책판은 조선 중기 유학자 사계(沙溪) 김장생이 예학(禮學)을 집대성했다는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증보·해석한 ‘가례집람’을 비롯해 ‘사계선생연보’ ‘사계선생유고’ ‘사계전서’ 등을 펴내는 데 쓰인 귀중한 유물로 그간 ‘이빨 빠진’ 채 흩어져 있던 책판들이 비로소 치열 고른 완제품으로 채워져 후대와의 공유가 “문화유산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값어치 있는 것”이라는 평소 그의 철학을 실천한 셈이다

이에 “​기억이라고 하는 건 기록으로 갖고 있으면서 실제 모습을 기억 창고처럼 해놔야 하는 거예요. 숭례문도, 경복궁도,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종묘도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누려야 하는 역사인 거죠.”라며 그의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관을 엿볼수 있는 문화지킴이 보스(Boss)다운 역대급 어록이 새삼 떠오른다.

김철홍 자유기고가
김철홍 자유기고가

작년 가을 필자가 초대받은 한국문학의 거목 김홍신 작가의 신간 장편소설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출간기념 북 콘서트에서 김 작가가 인사말 중 “동짓날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님이 보내주신 제주 감귤을 받고서 전화를 드렸더니, ‘옛날 감귤이 귀하던 시절 제주 목사가 상감마마께 감귤을 진상했다’면서 이사장님이 ‘제주 목사의 마음으로 상감마마께 진상한 것’이라고 하셔서 감동과 함께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내용을 듣고 역시 하면서 엄지척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는 늘 유머와 해학, 낭만이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아끼는 보물이 세 가지 있다고 해서 삼성출판박물관의 소장품 40여 만 점 가운데 국보 1건, 보물 11건의 국가유산 속에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1963년 4·19 3주년을 맞아 쓴 자작시 ‘24시에 불태우고 0시에 서자’의 시화, 1964년 출간돼 30만 부가 팔린 삼성출판사의 10권짜리 ‘한국야담전집’, 그리고 ‘1974년 ‘25시’를 쓴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방한했을 때 삼성출판사 편집주간이었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함께 셋이서 찍은 사진‘을 꼽아서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역시도 보물이다.

어떤 문화 행사에서 실크해트(silk hat)를 쓰고 코트를 입은 노신사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들어오는 걸 본다면 ‘이거 중요한 행사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는 어느 기자의 말처럼 산수(傘壽)를 훌쩍 넘긴 이 시대의 큰 어른 ‘프로 참석러’를 언제까지나 볼 수 있게 늘 건강 챙겨ON, 문화유산 지켜ON 김종규!

어느덧 설레는 갑진년(甲辰年) 새해 설 명절,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이 모여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와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에 고생을 무릅쓰는 민족 대이동 프로젝트를 앞두고 있다.

평소 “동구 밖 당산나무도 보존해야 할 유산”이라고 했던 그의 말이 오늘따라 가슴에 울림을 주고 있다. 또한 우리가 꼭 지켜야 할 문화유산 보존과 젊은 세대를 위한 나눔과 베풂으로 인간 김종규의 인생 여정 3막은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나만의 여정이어서 아주 흐뭇했다.

끝으로 정도전의 삼봉집(三峰集) 답전부(答田父)에 정도전이 전라도로 유배 갔을 때, 늙은 농부가 그에게 “대체 왜 그 자리에 있는가?”라고 뼈아픈 말로 했던 풍자와 김종규의 인생 여정을 누군가는 꼭 곱씹어봤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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