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홍 칼럼] 고슴도치의 지혜
상태바
[김철홍 칼럼] 고슴도치의 지혜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1.09 14: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철홍 자유 기고가
김철홍 자유 기고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예절을 중요시하는 ‘동방예의지국’으로 칭송해 왔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선조들은 어릴 때부터 생활 속에서의 행동을 바르게 하는 예절 바른 사람으로 키우는데 중점을 두었다. 특히 조선시대는 유교문화가 바탕이 되었던 시기로 당시의 교육풍토는 어른들의 행동을 모방해 배우도록 하는 실천교육을 강조하였다. 전통적인 대가족 제도에서 아이들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예절이 습관화 되도록 하는 것이 대표적인 인성교육 방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성교육이 화두인 시대가 되었다. 최근 사회 전반에 만연되고 있는 학교 폭력, 집단따돌림, 게임 중독, 패륜적 범죄, 자살 등의 반사회적, 반인륜적 행태는 물론 사람을 해치고 상대를 괴롭혀 자살로 몰아넣은 가해자들이 조금이라도 죄책감과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등 우리 교육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 스타나 국무위원 후보자 등 지도층 인사 자녀들의 학교 폭력 문제 등으로 종종 사회적 논란거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정부는 인성 부재의 사건·사고 방지를 위해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을 발표했교 세계 최초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도록 제정했지만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성 부재의 사건·사고들은 여전한 실정이다.

영국에서는 인간관계 교과서가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인간관계 교육을 12년 동안 정규교과과목으로 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가족관계이다. 가족처럼 좁은 관계에서 잘 지내면 타인과 잘 지내기가 쉽다는 논리다. 좋은 가족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잘 싸우는 것이 중요하고 싸우지 않는 가족이 제일 힘들며 잘 싸우지 못하고 대화가 단절된 부부가 위험하고 이혼율이 높다고 한다.

‘멀리서 쏜 화살은 내 심장을 적중할 수 없어도 가까이서 쏜 화살은 내 심장에 적중한다.’는 가족친밀도를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20년간 5살 어린이부터 90대 노인까지 상담을 해온 심리상담가의 말에 의하면, 모든 사람의 고민 1순위가 압도적으로 인간관계이고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어려운 게 가족관계라고 말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나와 타인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운더리다. 미국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관계에 관한 노래를 배우는데 가사가 ‘나는 바운더리가 중요해요. 내 거리를 지켜주세요. 침범하지 말아 주세요. 당신이 싫은 게 아니에요. 나는 내 바운더리가 중요할 뿐이에요.’ 이처럼 심리학용어 ‘쇼펜하우어의 딜레마’에서도 고슴도치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몸에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는 서로 떨어지면 춥고 꽉 끌어 안으면 가시 때문에 피가 난다. 그래서 잠을 잘 때는 가시가 없는 부위인 머리를 맞대고 몸은 떨어뜨려 잔다.

영국의 인간관계 교과서에서도 가장 중요시 가르치는 것은 바운더리로 서로의 경계, 가족사이의 거리 그러나 예의 지키기로 내 안전 지킴은 물론 상대가 미워지는 것 또한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가족관계 중 한 예로 고부관계는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자주 만나는 밀접한 관계를 오히려 위험한 관계로 발전 가능성이 높아 적당하게 거리를 두고 가끔 봐도 반가고 환대하는 친밀한 관계가 좋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을 장가보내는 날은 아들이 완벽한 타인이 되는 날인데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어머니들이 아들이 며느리의 남편이 아닌 내 아들이라는 심리적 탯줄을 끊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로 끊임없는 융합 갈등 관계로 이어지는 밀착된 관계를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고민, 의논, 대화할 때는 고슴도치의 지혜와 더불어 동양고전에 있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고사성어와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이라는 명언을 통해 인간관계의 희망적 해법을 다시금 곱씹어 본다.

이제 우리도 앞에서 언급한 외국 사례처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인간다운 인간을 기르기 위한 끊임없는 교육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타인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한국문화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로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나?”, “말로 안 해도 알아줘야 하는 거 아니야?”인데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강력한 소망이 있는 것이 한국인의 특징이다.

타인의 마음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표현하지 않으면 내 속으로 낳은 자식도, 부부관계일지라도 상대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을 문화심리학적으로 한국문화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독특한 단어 ‘독심술’이라고 한다.

또한 한국인이 제일 많이 쓰는 감정 단어 1위는 ‘섭섭하다.’이다. 그저 혼자 섭섭하다고 한다. 나의 감정과 내가 원하는 것을 고백하고 소망으로 표현해야 한다. 생각을 말하지 말고 소망을 말해야 한다. 즉 독심술을 버려야 한다.

가족 사이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은 필요없는 말, 가장 필요한 말은 솔직한 감정을 표현한 ‘고맙다’, ‘미안하다’ 단어에서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계에는 연습과 공부가 필요하다. 심리학은 말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뭔가를 주고 보상을 원하면 내가 노예가 되고 내가 스스로 공헌을 하면 내가 세상에 유익한 존재가 된다.”

끝으로 가족 사이에서 네가지 결심 하기를 권한다. ⓵ 작은 것에 감동할 결심 ⓶ 사소한 것에 감탄할 결심 ⓷ 준다가 아니라 공헌했다는 마음의 결심 ⓸ 또 보고 싶은 마음으로 환대할 결심

이러한 맥락과 함께 기성세대와 MZ세대는 각자의 가치와 경험을 존중하며 상호 협력하고 이해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자세로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 나가면 우리의 정서와 체질에 맞는 갑진년(甲辰年) 슬기로운 K-가족관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인성교육과 선비정신의 현대적 가치 조명을 위해 조선에게 그 길을 물어보련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