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디지털사회에서 아나로그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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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디지털사회에서 아나로그의 반격
  •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 승인 2023.11.2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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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편지의 특별한 감성과 기다림의 미학 느린 우체통
김철홍 자유 기고가
김철홍 자유 기고가

늦가을 이 시기에 음유시인 이동원이 부른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로 시작하는 ‘가을 편지’는 MZ세대와는 다른 7080세대만의 감성을 자극해 정을 듬뿍 담아 꾹꾹 눌러 손 편지를 쓰고픈 마음과 노랗게 물든 은행잎 위로 오롯이 선 빨간 우체통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필자는 지금도 집 근처 우체통을 월 1~2회 정도 이용하곤 한다. 정기 구독하고 있는 공공기관 및 기업체 소식지에 붙어 있는 우편엽서에 독자의견을 쓰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독 중인 소식지 중 우편엽서가 점점 사라지면서 QR코드로 대체되고 예전엔 진심인 정성이 깃든 손 편지를 동네 우체통에 넣고 답장이 올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 추억과 낭만의 ‘빨간 우체통’이 하나씩 사라지는 현실에 왠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다.

흔히 우리 곁에 있었지만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어 추억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대부분이 통신, 인터넷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물인 공중전화 부스, 우체통, 타자기, CD 등인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공중전화 부스’와 ‘빨간 우체통’이다.

‘공중전화 부스’는 국민 1인당 1휴대폰 시대가 열리면서 공중전화기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불법 광고물 부착이나 각종 쓰레기로 도시 미관은 물론 위생을 해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해외에서도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얼마 전 미국 뉴욕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공중전화 부스가 철거돼 뉴욕시의 아날로그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영국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색 전화부스도 이미 수만 대가 철거됐다고 한다.

‘빨간 우체통’ 하면 편지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메시지’, ‘문자’가 편지로 대변되는 손쉽게 보낼 수 있는 존재로 이메일의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고 세태가 그렇다 보니 기존의 편지가 '손 편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 '손 편지'라는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단어다. 더욱이 길을 걷다 보면 마주치고 친숙했던 ‘빨간 우체통’ 수는 ‘공중전화 부스’의 28.8% 수준으로 이젠 거리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우체통은 조선후기인 1884년에 지금의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의 우정사업본부격인 우정총국이 근대적 정부기관이면서 최초의 우체국으로 탄생하면서 우편 업무를 시작함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설치됐다.

우리나라의 우체통 변천사

초기 우체통은 목조의 사각형으로 작은 크기였지만, 광복 이후 수요가 늘어나면서 크기가 커지고 원통형으로 바뀌었다. 1950년부터 사각형 우체통으로 바뀌고, 1984년부터 ‘신속, 정확, 긴급’의 이미지 부각 특히 우편(郵便)의 ‘편(便)’을 ‘변(便 똥오줌)’으로 읽은 사람들이 화장실로 착각해 볼일을 봐서, 야간애도 눈에 잘 띄는 지금의 빨간색으로 했다는 재미있는 사실도 알려지고 있다.

1990년대 빨간 우체통은 거리의 랜드마크이며, 언론사 고객의 소리에는 ‘우체통이 멀어서 불편하다’, ‘우체통이 모자란다’라는 글들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 1993년엔 무려 57,599개가 설치됐으나, 인터넷이 보급된 2000년 이후부터 더 간편한 SNS 등을 선호하고 이를 통해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어 손 편지를 쓰는 이들이 줄어드는 등 우편물 접수 물량도 빠르게 감소함에 따라

우정사업본부는 3개월간 우편물이 수집물량이 10통이하 또는 통행방해 등으로 철거 요청 민원이 빈번하거나 집배구 운영상 우체통이 불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등 일정 철거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한 결과, 한 해에 2,000개씩 2022년 9월 1일 기준 8,647개로 30년 사이에 우체통의 85%가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우체통 안의 적은 우편물마저 주민등록증, 휴대전화 등 분실물과 음식물 쓰레기 악취 등으로 민원이 상당하고 실용성이 낮아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빨간 우체통이 연락을 주고받는 용도가 아닌, 잃어버린 물건의 주인을 찾아주는 용도, 우체통 활용 폐의약품 수거 시범사업으로 세종·서울·나주지역에서의 폐의약품 수거함 용도 등이 병행되고 깨알 같은 글씨로 쓴 손 편지와 엽서 등을 우체통에 넣었던 그 감성적인 정서 즉 빨간 우체통을 지키려 페인팅 작가가 SNS에 자신의 주소를 올리고 그에게 손 편지글을 우체통에 넣어 보내면 본업인 그가 직접 엽서에 그림을 그려 답장으로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의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종시 대평동에서는 우체통이 없어 불편해 온 주민들의 오랜 바람을 세종우체국과 논의 끝에 빨간 우체통을 행정복지센터에 설치하여 손 편지를 통해 코로나19로 멀어진 주민 사이의 멀어진 정을 잇고, 관내 기관단체 및 학교와 손 편지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는 저서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인간은 인간의 감성이 묻어나는 ‘휴먼 터치(Human Touch)’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듯이 기술이 발전된 디지털 사회에서도 인간의 감성이 중요하고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매개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재빨리 흘러가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잊고 있었던 편지의 낭만이 담긴 아나로그 감성을 느끼면서 삶의 속도를 줄이고 기다림의 미학을 일깨워 줄 그 무언가를 갈구하던 차에, 모인 우편물을 2~3일 만에 빠르게 전달하는 전통적인 ‘빨간 우체통과는 대조적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 6개월~1년 후에 수신처로 배달되는 방식의 ’느린 우체통‘이 등장하게 됐다고 한다.

이 ’느린 우체통‘의 시작은 2005년 10월 경기 포천시 억새꽃 축제로 ‘1년 후에 받는 편지’라는 이름으로 축제 기간 방문객들에게 엽서를 나눠주고 우체통에 넣은 엽서를 약 1년간 보관하다가 포천시에서 우체국에 접수하는 방식으로 푸른 억새가 갈색으로 익어가는 한 해를 추억하는 의미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강조해 기획한 것이라고 한다.

인천 ‘영종대교’의 경우 ‘느린 우체통’이 개설된 후 매년 3~4만 건의 편지가 접수되는데, 엽서에 특정 지역 풍경을 새겨 또 다른 선물이 되고 있다. 이러한 감성적 문화 정서와 인기에 힘입어 울산‘간절곶’, 서울‘북악팔각정’, 파주‘임진각’, 강릉‘경포대’, 대전‘우리들공원’, 전주‘한옥마을‘, 경주‘보문단지’, 대구‘이상화 고택’ 등 전국 곳곳으로 확대되어 전국에 설치된 ‘느린 우체통’은 지난해 334개로 공공기관과 지방자치단체, 민간기업 등이 자체적으로 문화마케팅 차원에서 우체국과의 협약을 통해 운영하고 있는데, 개성 넘치는 이색적인 캐릭터의 “느린 우체통”이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관광 상품 역할은 물론 손 편지의 감성을 자극, MZ세대에게도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등 가 볼만한 명소로 ‘빨간 우체통’ 의 대변신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느린 우체통’이 갖고 있는 감성적인 정서 문화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국 5곳 현충원과 호국원의 ‘하늘나라 우체통’, 파주 임진각의 ‘이산가족 우체통’ 등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데, 여기에 넣은 글을 모아 책으로 엮거나 특별한 전시회를 열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라시아의 톨스토이는 손 편지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는 중요성을 강조했고, 미국의 맹농아인이자 저명한 사회 운동가인 헬렌 켈러는 손 편지로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손 편지는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수단으로 그 특별한 감성과 마음을 전달하는 데에는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고 마무리하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겨울여자’의 OST 김세화의 ‘눈물로 쓴 편지는 읽을 수가 없어요. 눈물은 보이지 않으니까요. 눈물로 쓴 편지는 고칠 수가 없어요. 눈물은 지우지 못하니까요. ……’를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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