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제르 쿠데타 연재] ① ‘반서방’ 강조한 군부…쿠데타의 배경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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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쿠데타 연재] ① ‘반서방’ 강조한 군부…쿠데타의 배경과 특징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8.0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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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7월 26일(현지 시각) 서아프리카의 중요한 길목에 있는 국가 니제르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동안 니제르에서 권력을 잡아온 친서방 정권이 뒤집히면서 아프리카를 둘러싼 정세가 요동칠 것으로 예상된다. 

주권연구소는 2편의 연재를 통해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번 쿠데타의 특징은 무엇인지, 전망은 어떻게 될지를 분석한다.

1. 러시아-아프리카 포럼 도중 발생한 쿠데타

7월 26일~29일(현지 시각)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제2차 러시아-아프리카 경제 및 인도주의 포럼이 열렸다. 아프리카연합 회원국 54개국 가운데 49개국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는 ‘서방 중심의 세계 질서와 식민주의 잔재에서 벗어나 협력하자’는 내용이 중요하게 논의됐다. 

그런데 행사 시기인 7월 26일 니제르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친서방을 표방해온 모하메드 바줌 니제르 대통령이 축출됐다. 니제르 군부를 이끈 압두라흐마네 티아니 대통령 경호실장은 니제르의 부정부패와 치안 악화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켰다면서 자신을 국가원수로 지칭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니제르 군부 인사들.

쿠데타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던 가운데, 7월 31일 아마두 아드라안 니제르군 대변인이 “프랑스는 특정 니제르인들과 공모해서 니제르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방법을 모색하고 정치적 승인을 얻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라고 발표했다.

프랑스가 바줌 대통령을 석방시키기 위해 ‘일부 니제르인들’과 니제르군을 공격하는 군사 개입을 공모했다는 것이 니제르 군부의 주장이다. 이는 쿠데타 정부가 그동안 프랑스와 미국 등 서방 진영과 긴밀히 협력해온 이전 정권과 다른 정책을 펴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티아니는 니제르 독립기념일을 하루 앞둔 8월 2일 TV 연설에서 “니제르 국토 수호를 위한 국가위원회는 니제르 내정에 간섭하는 모든 행위를 거부할 것”이라면서 “군사 개입을 포함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가 권고하는 모든 제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라며 “어느 쪽의 위협에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는 프랑스, 미국 등과 가까운 친서방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가입한 경제협력기구다.

니제르 군부가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이번 쿠데타는 러시아와 관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7월 27일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 수장인 프리고진은 바그너 그룹의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음성 성명에서 니제르의 군사 쿠데타를 ‘서방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라고 환영하면서 아프리카에서 활동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또 프리고진은 니제르에서 벌어진 쿠데타에 관해 “바그너 그룹의 효율성이 입증된 사건”이라면서 “바그너 전투원 1,000여 명이 질서를 회복하고 테러리스트를 파멸시켜 그들이 민간인에 해악을 끼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프리고진은 이번 쿠데타를 “니제르 국민의 식민 지배자들에 대한 투쟁”으로 규정하며 “나머지는 니제르 국민에 달려있고 (쿠데타 세력의) 통치가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달렸으나 중요한 것은 식민 지배자들을 제거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7월 27일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매체 ‘폰타카’ 등에서는 프리고진이 니제르의 사절단과 만났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러한 정황은 쿠데타와 러시아가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러시아는 군사 협력을 요청하는 아프리카 각국에 바그너 그룹을 파견하는 등 아프리카 각국과의 정치·군사적 협력을 모색해왔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번 쿠데타에 관해 니제르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밝혔지만, 러시아와 손을 잡은 니제르 군부가 니제르 내부의 친서방 세력 축출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통 군부 쿠데타라고 하면 ‘독재’, ‘민주주의 파괴’ 등의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데 정작 니제르에서는 쿠데타를 환영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여러 보도를 종합하면 쿠데타 이후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는 시민 수천여 명이 프랑스 대사관에 몰려가 “프랑스 타도”를 외치며 프랑스 국기를 불태웠다. 이는 니제르를 식민 통치하고, 독립 뒤에도 니제르에 깊숙이 개입해온 프랑스를 향해 강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쿠데타 이후 외신을 인용한 YTN 보도에 따르면 시위에 참여한 오마르 바오모우사 씨는 “유럽연합과 아프리카연합,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에 제발 우리 일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주민도 영국 BBC에 “프랑스는 우라늄, 석유, 금 등 우리나라의 모든 부를 착취했다”라면서 “니제르 국민들이 하루 세 끼를 먹을 수 없는 것은 프랑스 때문”이라고 규탄했다.

시위에서는 외세의 내정간섭을 반대하는 주민들 상당수가 “니제르 만세”, “푸틴 만세”, “러시아 만세”를 외치면서 러시아 국기를 흔들었다. 주민들이 프랑스에 강한 분노를 드러낸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에 관해 김동석 외교안보연구소 교수는 “아프리카는 러시아와 역사적 경험에 바탕을 둔 연대 의식을 지닌다. 러시아는 아프리카를 식민 지배하여 착취한 적이 없다”라면서 “또한 아프리카 국가들은 식민 지배의 트라우마로 인해 탈식민 이후 내정 불간섭 원칙을 고수하게 됐다. 러시아는 아프리카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했다”라고 짚은 바 있다. (김동석, 「최근 러시아의 대(對)아프리카 진출 고찰」, 『주요국제문제분석』 2022-26, 외교안보연구소, 2022.10.7.) 

프랑스를 향한 니제르 국민의 반프랑스 정서가 이전부터 높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BBC는 2021년 12월 6일 자 보도에서 “프랑스를 향한 아프리카인들의 불만과 비판은 이제 전례가 없을 정도로 들끓고 있다”라면서 “현지 이슬람 무장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부르키나파소와 니제르를 지나던 프랑스군을 시위하는 주민들이 여러 차례 막아냈다”라고 니제르의 상황을 전했다.

프랑스와 미국 등 서방 각국은 2021년부터 집권하다가 최근 축출된 바줌 대통령을 니제르 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룬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치켜세워왔다.

하지만 바줌 정권에서는 국민을 위하지 않는 맹목적인 친서방 정책과 부정부패가 잇따랐다. 2023년 5월 니제르의 한 비정부기구는 2022년부터 1년 동안 약 1억 달러가 니제르 재무부에서 불법 유출됐다고 밝혔는데, 이는 바줌 정권 차원에서 니제르 국민의 혈세를 빼돌렸음을 암시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바줌 전 대통령이 기댈 곳은 서방 각국뿐이다. 바줌 전 대통령은 8월 3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서방 각국에 자신을 복권시켜 “우리(니제르)의 헌법 질서를 회복”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바줌 전 대통령이 니제르 국민의 재신임을 받아 복귀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분석이 중론이다.

 

2. 니제르의 역사 : 프랑스 제국주의가 장악했던 곳

현재 사하라 사막 이남 서아프리카에는 광활한 사헬 지대(건조한 사막 기후와 비교적 습한 사바나 기후의 경계에 있는 지역)가 펼쳐져 있다. 

사하라 사막과 사헬 지대를 잇는 길목에 니제르가 있다. 서방의 침탈이 없던 15~16세기 지금의 니제르가 있는 지역은 아프리카 북부와 중·남부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번성했다.

니제르와 주변 지도.

그러다 19세기 들어 서아프리카 일대는 프랑스를 위시한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을 받게 된다. 현 니제르를 비롯해 말리, 부르키나파소, 모리타니 등 10여 개국은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프랑스는 1892년부터 니제르 지역을 식민 지배했고 주민들에게 프랑스어 사용을 강요했다. 또한 니제르 지역에서 황금 등 천연자원이 발견되자 주민들을 노예처럼 부려 자원을 프랑스로 빼돌렸다. 

이뿐만 아니라 프랑스는 주민들을 갈라치기하는 악랄한 분열 통치로 니제르를 지배했다. 본래 니제르는 국경선 없이 다양한 부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프랑스가 편의에 따라 구역을 나누면서 부족 간 대립이 심각해졌다.

일부 니제르의 친프랑스 인사들에게는 프랑스를 도운 대가로 떡고물이 떨어졌지만, 대다수 주민들은 자신들을 수탈하는 식민 통치 아래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다.

그러던 중 프랑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니제르를 표면상 독립시키되 사실상 독립시키지 않고 수탈하는 ‘신식민주의 정책’을 획책했다. 서아프리카 일대를 장악할 힘이 빠진 상황에서 친프랑스 세력을 활용해 식민수탈을 이어가려 한 것이다.

이는 니제르 등 서아프리카 국가 위에서 군림하는 왕초 노릇을 하며 자원을 수탈하고, 이권을 유지하려 한 프랑스의 속셈이었다. 프랑스는 니제르 등 서아프리카 14개국을 독립시키기 이전에 친프랑스 인사들을 정치·경제·군사의 핵심 요직으로 심어뒀다. 

니제르는 1960년에 프랑스에서 독립했지만 60여 년 동안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사실상 프랑스의 식민 통치 아래에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1945년에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화폐를 프랑스의 화폐 가치와 연동시키는 이른바 ‘세파(CFA)프랑’이라는 통화를 도입했다. 이는 프랑스가 서아프리카 각국의 통화 주권을 강탈한 것으로 니제르에서는 아직까지도 세파프랑이 통용되고 있다.

친프랑스 세력이 프랑스에 정치·경제·군사 주권을 바친 상황에서 니제르 전역이 프랑스의 손아귀에 있었던 것이다.

최근 쿠데타 이전까지 니제르에서는 친프랑스 군부 세력이 60여 년 동안 니제르의 권력을 잡아왔고, 프랑스를 향한 니제르 국민의 분노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쿠데타 발발 뒤 니제르의 대규모 시위대가 프랑스 대사관을 습격한 건 이런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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