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민 청원에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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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행복을 위해 국민 청원에 함께 해요!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0.11.07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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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국가권력의 탄압에 의해 자살은 고민해 보신사실이 있나요? 지금은 한명숙 총리를 보며 그래도 위안이 됩니다. 저는 감옥살이는 안했으니까요!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칼럼과 기사를 퍼다 제 블로그 “무명천사,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것이 국가보안법에 옭혀 4년간의 힘든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국민을 짐이 되었던 이명박
필자를 국가보안법으로 옭았던 사기꾼 대부 이명박

이명박 정권에 의해 죄 없이 정치적 재물이 되어 자택과 직장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기소되어 1년 6월의 구형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습니다. 주변 지인들은 고문당하지 않고 두둘겨 맞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합니다. 대법원 판결을 받고 곧 바로 공직을 명예 퇴직했고 녹조근정훈장도 받았습니다.

 

일제청산 실패로 친일매국노가 애국자가 되었다.

역적 김창룡 묘
 친일 매국노(국민을 학살한) 김창룡 묘

자유당 정권에 의해 김구 선생 암살 1년이 되던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전쟁 2일 후인 6월 27일 대전으로 도망친 이승만은 라디오 특별방송으로 국군이 북진하고 있다며 서울시민에게 동요하지 말라고 속였고 한강교를 폭파하여 많은 서울시민들이 한강을 건너 피난할 수 없도록 봉쇄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한 후에 서울시민들이 인민군에게 부역했다는 이유로 서울시민을 무참하게 목숨을 빼앗았고 연좌제까지 실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임산부, 어린이까지 죽인 제주도 4.3사건을 비롯하여 6.25전쟁 기간 중 보도연맹에 가입한 국민과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 등 우리나라 군·경들이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반인륜적인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지난 세월호 참사를 국민들은 TV를 통해 젊은 생명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고 국가권력은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며 구조를 방해하는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적폐정권의 진면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6.25전쟁 때 이승만이 대전에서 라디어 특별방송으로 국군이북진하고 있다며 서울시민을 속이고 한강교를 폭파하여 피난길을 막았던 사례와 비슷하게 세월호에서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13번의 구내방송을 실시하며 탈출의 기회를 빼앗은 것은 내용과 행태는 달라도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 불행은 되풀이된다는 교훈이 되는 대목입니다.

 

군사주권을 미국에 넘겨준 이승만 자유당 정권

맥아더와 이승만
맥아더와 이승만

6.25전쟁 중에 자유당 이승만은 을사 5적이 나라를 일본에게 넘겨주었던 행태와 똑같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우리나라 군사주권을 미국의 맥아더에게 넘겨준 행위는 민족의 반역이고 매국노입니다. 결국 이승만은 1953년 7월 23일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에 참석할 자격도 얻지 못했습니다. 미국의 시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6.25 한국전쟁 휴전협정에는 UN군 사령관 마크 웨인 클라크, 북한군 사령관 김일성,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하이(팽덕희)가 서명했고, 참석자는 조선인민군 및 중국인민지원군 대표단 수석대표 조선인민군 대장 남일과 UN군 대표단 수석대표 미국 육군중장 웰리엄 K 해리슨 2명이 서명하였습니다.

 

현충일의 불편한 진실

대한민국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후 3년 미국군정을 실시한 후 1948년 9월 7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기관조직법을 제정하였고 1948년 9월 22일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어 반민족행위 예비조사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당시 반민특위 청사

그러나 1949년 6월 6일 오전, 이승만은 경찰 50명을 동원하여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일명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친일청산을 할 수 없도록 무력으로 해산시켰고 20일 후인 6월 26일 우리의 민족지도자인 김구 선생을 암살했습니다.

휴전협정이 조인된 3년 후인 1956년 4월 19일의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대통령령 제1145호) 및 1956년 4월 25일 "현충 기념일에 관한 건"(국방부령 제27호)으로 "현충 기념일"로 지정하였고, 1975년 12월부터 '현충일'로 지정되면서 이승만이 일제청산을 저지시킨 6월 6일을 호국영령을 기리는 숭고하고 엄숙한 날로 현대사를 바꿨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적폐정권보호법입니다.

일제의 앞잡이로 활동했던 매국노들이 일제 강점기 일제 왜구에 충성하며 조선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식민통치에 기여했던 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을 모방하여 1948년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리고 1960년 4월, 3·15부정선거로 인해 4·19혁명이 발생했고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한 5.16쿠데타로 친일 매국노들은 다시 1년 만에 정권을 무력으로 강탈하였습니다.

쿠데타 세력들은 5.16혁명이라며 국민의 여론을 통제하기 위해 쿠데타 실시 48일 후인 7월 3일, 반공법을 제정하여 국민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했지만 박정희는 결국 자신의 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총살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중국, 러시아 등 사회주의 국가와 수교하게 됨에 따라 1980년 12월 31일 반공법의 주요 조문을 국가보안법으로 이관하여 통합한 후 반공법을 폐지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적폐정권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직 국민만 통제하는 적폐정권보호법입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친일 매국노와 5.16쿠데타 세력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국민을 탄압했던 방식 그대로 해방 후에도 국민의 입을 봉하고 국민의 양심의 자유까지 통제하는 수단으로 헌법위에 군림하며 적폐정권을 보호하는 악법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북한 ICBM
북한 ICBM

지구상에 전시작전권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부탄왕국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국방예산이 북한보다 47배가 많다고 합니다. 언제까지 미국의 눈치만 보며 자주권이 없는 미국의 속국이 되어야 합니까? 국민들이 깨어나야 합니다.

북한의 핵은 우리나라와 상관이 없습니다. 북한이 재래식 미사일로 우리나라 핵발전소만 파괴해도 우리나라는 핵 참화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동토대가 됩니다. 사회주의 중국과 러시아 처럼 북한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자유롭게 개별관광을 할 수 있도록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방예산을 국민의 복지에 활용하여 평화와 번영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아베 노부유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메 노부유키는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예언대로 해방 후 7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토착왜구들이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서 준동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적폐청산의 시발점입니다. 국가의 안전과 관련이 없는 적폐정권보호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친구들과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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