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쌍관제하(雙管齊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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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쌍관제하(雙管齊下)
  • 이정랑의 고전탐구
  • 승인 2019.07.22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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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루의 붓으로 동시에 그림을 그린다.

장조(張璪.-어떤 사료에는 張藻로 되어있다)는 자가 문통(文通)이며 당나라 오군(吳郡.-지금의 강소성 소주) 사람으로 소나무와 돌을 잘 그린 산수화가였다. 그는 독창적인 기법과 독특한 작품 스타일로 당‧송 회화사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는 검교사부원외랑(檢校祠部員外郞)이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 뒤 강등되어 장안을 떠나 무릉군(武陵郡.-지금의 호남성 상덕)의 사마(司馬)가 되었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송나라 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에 따르면, 장조는 회화 창작에서 절묘한 기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두 손에 붓을 하나씩 들고 동시에 소나무 두 그루를 그렸는데, 한 손에 든 붓으로는 ‘봄의 윤택한 기운이 흐르는 생기발랄한’ 소나무를, 또 한손에 든 붓으로는 ‘가을의 처량한 기운이 완연한’ 비쩍 마른 소나무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조적인 두 소나무가 모두 생동감이 넘쳐서, ‘쌍관제하’라는 그의 특기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두 자루의 붓으로 동시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것을 ‘쌍관제하’라고 한다. 나중에 이 말은 하나의 고사성어가 되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펼치거나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쌍관제하’는 일종의 계략으로 운용되면서 비교적 넓은 영역에 침투해 있는데, ‘남은 밑천을 다 걸고 최후의 승부를 거는’ ‘고주일척(孤注一擲)’이나 ‘외곬으로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고수하는’ ‘일조도이주도흑(一條道而走到黑)’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어떤 책략을 시행하려면 때로는 문(文)에 때로는 무(武)에 의존해서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정치 수단을 사용한 다음 다시 경제‧군사‧외교 수단 등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쌍관제하’는 그저 기본적인 모략 방법일 뿐이고, 크고 많은 문제에 부딪치면 ‘삼관제하’ 내지는 ‘다관제하’도 활용해야 한다.

공장 생산의 경우 대량 생산 체계가 조직되고 난 다음 판매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시범 생산단계부터 심지어는 설계가 완성되자마자 광고 선전을 병행하면서 판매를 연결시키는, 이른바 선전‧판매‧시험‧생산을 동시에 진행시키기도 한다. 방법상 어떤 일을 하든 오로지 한 길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두 가지 길’을 마련해서 좌우에서 근원을 찾아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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