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역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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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역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 김용택 이사장
  • 승인 2024.04.05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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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교사는 침묵하라

젊은 여인이 부끄럼도 없이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고 거의 벗다시피 한 노인이 젊은 여인의 젖을 빨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국립미술관 입구에 걸려 있는 그림이다. 얼핏보면 딸 같은 여자와 놀아나는 노인의 부적절한 애정행각을 그린 포르노(현상)가 아닌가 하고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실은 커다란 젖가슴을 고스란히 드러내 놓고 있는 여인은 노인의 딸이다. 푸에르토리코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싸운 이 노인을 독재정권이 체포해 감옥에 넣고 '음식물 투입 금지'라는 가장 잔인한 형벌을 내렸다. 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을 받은 딸은 해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무거운 몸으로 감옥으로 찾아가 아버지를 위해 가슴을 풀고 불은 젖을 아버지의 입에 물리고 있는 모습이다.

■ 현상과 본질은 다르다

사람들의 눈으로 보이는 것은 부분일 뿐, 전체는 아니다. 현상(現像)은 시신경으로 인지(認知)되는 부분이요, 본질(本質)은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시각으로 인지되는 현상을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시력은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보이는 것은 시각으로 인지, 지각되지만 사람들은 본질을 덮어두고 현상은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자본이 만든 광고는 모두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본질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은 광고에 속아 낭패를 당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약을 먹으면 무조건 병이 낫는다거나 병원에 가면 무슨 병이라도 다 고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약 속에 독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매장에서 팔고 있는 아이들의 과자류는 안심하고 먹으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방사능이나 GMO 식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본질을 알지 못하고 선택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 역대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역대정권은 교사들이 깨어나는 걸 가잘 두려워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혜를 가르쳐 시비를 가리고 비판의식을 갖도록 가르친다면 학생들이 독재정권의 과거나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권리를 깨우치게 된다. 헌법은 ‘법앞에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고 했지만 교육기본법 제6조 ①항은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은 엄정하게 지켜져야 한다. 교원은 직무상 교사이기도 하지만 개인은 국민으로서 기본권을 보장받는 자연인으로서 국민이기도 하다. 교사는 학생들에게는 철저히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국민으로서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었던 일이 없었다. 교원의 정치적 중립이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의 몫이 되고 만다.

일제 강점기의 교육목표는 황국신민화다. 당시 초등학교 이름은 ‘국민학교’다. ‘국민학교’란 천황의 백성을 만든다는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조선의 백성에 깨어나 시비를 가릴 수 있는게 가장 두려워 학교를 만들고 일본 백성으로 길러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독재정권은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깨어나 시비·선악(是非·善惡)의 판단력을 가진다면 그들의 과거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국가보안법을, 박정희가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건 이유가 그렇다.

■ 국정교과서에는 무슨 내용이 담기나

교사에게 가르치라는 것만 가르치면 어떤 인간을 양성하게 될까.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의 교사는 자신의 자질과 무관하게 국가가 원하는 인간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 즉 교육과정은 교육부의 교육과정 편수관이 정부가 요구하는 정체성에 맞게 만든다. 국정교과서란 그들이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골라 담은 지식을 묶은 책이다.

사회과 교과서가 국정이 된다는 것은 독재정권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길러내게 된다. 이승만 정권시대 교과서가 친일 인사들의 작품으로 채워진 이유가 그렇고 박정희 정권이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로, 전두환 정권이 광주항쟁에 침묵하도록 만든 현대사 교과서가 그렇다. 불의한 정권이 자신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서술한 내용을 담은 교과서가 국정교과서다. 교사가 국정교과서에 담긴 지식을 학생들에게 암기시킨다는 것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권력이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들게 된다.

물건을 훔치는 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사상을 도둑질한 죄인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승만을 비롯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독재정권과 군사정권은 교과서를 통해 2세 국민들의 사상을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경제재를 훔친 것은 변제를 할 수 있고 용서할 수는 있어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남의 생각을 갖도록 마취시키는 교육은 범죄 중의 중범죄다. 노예들에게 주인의 생각을 갖도록 하는 교육. 불의한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범죄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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