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설날 연휴 인사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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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설날 연휴 인사청문회
  •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 승인 2024.02.0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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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자유기고가
김철홍 자유기고가

설날은 ‘새해의 시작’ 이상의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는 추석과 함께 연중 최대 명절이다. 젊은 세대에겐 낯선 음력문화지만 1989년 정월 초하룻날(음력 1월1일)부터 ‘설날’을 정식명칭으로 사용했는데, 결국 정부가 양력이 아닌 음력 설날을 민족 고유의 명절로 고수해 온 국민적 정서에 손을 들어준 셈이다.

참고로 그동안 명절로 불리던 신정(新正), 구정(舊正)은 일본이 만든 명칭으로 우리의 설날 명절의 다른 이름은 원단(元旦)·원일(元日)·정일(正日)·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 등 10여 개가 넘는다.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는 설 연휴 고향 가는 길은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다.

설날이 이처럼 우리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전통적인 농경민족으로서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어른들께 세배를 한 뒤 떡국을 먹는 설날만의 독특한 풍습인데, 이는 조상님과 어른들께서 지난해를 잘 돌봐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음덕과 건강을 축원하는 미풍양속이다.

풍속으로 차례·세배· 설빔·시절음식(떡국)·덕담·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의 많은 종류가 있다.

필자는 평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 구경을 좋아하기에 설 명절 준비 겸 집 근처의 재래시장을 찾았다. 백여 년 전통을 이어온 도심 속의 5일(4일, 9일)장터로 을미의병의 효시로 의병을 일으키고 3.1 만세운동이 전개 되었던 역사적인 현장이기도 해 의미를 더한다.

장을 돌아다니면서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한창 가래떡을 뽑고 있는 한 방앗간에 다다르자, 2년 전 100세로 작고하신 엄마 따라 방앗간에 밤새 불린 쌀을 가져와 가래떡을 만들고 아주머니들이 깔깔거리며 수다를 떨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은 유난히 방앗간이 많아 그 고소한 내음이 발길을 잡아 마치 아로마테라피 향수로 힐링하듯 늘 기분이 좋다.

명절하면 온 가족이 모이고 맛난 명절 음식이 생각난다. 그러나 가족간 화합의 장이어야 할 명절이 유독 여성만이 음식을 만드는 등 전통적 성역할이 가장 큰 이유로 가사노동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 등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세태이다 보니 보다 못한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전을 부치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내용과 음식의 가짓수는 9개까지면 된다는 이른바 ‘설 명절 차례상 간소화 방안’을 내놓았다.

삼성·SK·포스코 등 기업이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주 4일 근무제 형태로 맞춰가고 있는 시점에 차례와 제사를 구분 못하고 제례문화지침서 ‘주자가례’에 없는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을 제사상처럼 차리고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는 걸 크게 가문의 영광으로 느꼈던 그동안의 문화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차례상 간소화는 제례 문화의 전통을 복원하고 명절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해소되어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이 모여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와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민족 대이동 프로젝트를 매년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설날은 예년과 다른 분위기의 명절이 될 것으로 예상이 된다. 왜냐하면, 4월 10일 국회의원 선거(410총선)를 60일 정도 앞두고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술 한 잔하면서 정치권 이슈, 국회의원 공천 및 예비후보자 인물평을 안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 대신 좋은 놈, 나쁜 놈을 가려 내고 목소리 톤을 높이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할 것이다. 또한 특검·명품백이 어떻고 누구는 모범수라 사면되고 00관이 배신했느니 쫒겨났느니 그 어느 때보다도 푸짐한 상차림이다. 그야말로 라이브 인사청문회로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 보고 배우면 좋을 듯하다.

따라서 이번 설날에는 우리나라 고혈압 환자가 1천2백60만 명 이상임을 명심하여 나라 걱정하는 얘기는 쵀대한 자제하고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화투놀이 대신 아이들과 함께 집안이나 많은 야외 체험행사장에서 가능한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 민속놀이를 즐기며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청룡의 기운으로 더 높게 비상하길 소망한다.

대신 필자가 나라 걱정하며 한마디 한다. “대체 왜 그 자리에 있는가?”

고려말, 조선초 격변기 유명한 관리이자 문인 정도전의 삼봉집(三峰集) 답전부(答田父)에 그가 전라도 나주 회진으로 유배 갔을 때, 그에게 뼈아픈 말로 세상을 풍자하던 늙은 농부의 말을 곱씹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그 농부가 바라는 세상은 그저 상식이 통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인정받는 지극히 평범한 사회였는데. 그래서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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