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윤석열과 이상민은 '목민심서'를 읽어나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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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안 칼럼] 윤석열과 이상민은 '목민심서'를 읽어나 봤을까?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2.12.1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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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 중 다산 장약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학자이자 조선의 개혁가인 그는 방대한 저술을 남긴 천재 중 천재이다. 다산은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가 다산초당을 지어놓고 수백 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그게 나중에 <여유당전서>로 발간되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이토록 다양하고 방대한 저술을 남긴 학자는 없다. 다산은 연암 박지원,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라 할만하다. 다산이 남긴 저술 중 <목민심서>, <경세유포>, <흠흠심서>는 널리 알려진 저술이고, 그중 <목민심서>는 공직자가 가져야할 자세를 담은 역작이다.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가져야 할 자세와 구체적 내용을 언급한 책이지만 널리 보면 공직자가 가져야 할 자세를 밝힌 지침서다. 물론 조선시대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지만 공직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마음은 다르지 않다.

 

◆ 인사가 만사

흔히 ‘인사가 만사’란 말을 한다. 새정부가 출범하면 누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되느냐에 관심을 두는 것도 그들의 생각이 향후 정부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인사 청문회가 도입된 후 ‘송곳검증’이 이루어지다보니 능력은 있지만 도덕성에 문제가 생겨 낙마한 사람이 부주기수다.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탈세, 위장 전입, 음주 운전 등으로 총리 및 장관 지명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수백 명에 이른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선 작은 흠집도 침소봉대되어 낙마의 조건이 된다. 그러다보니 국회 보고서 책정 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윤석열 정권은 출범 7개월 만에 벌써 그런 명단이 쌓여 있다.

 

◆ 윤석열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을 알까?

지나친 신상털기도 문제지만 명백한 잘못이 있는데도 지명을 철회하지 않고 임명을 강행해 국민들의 원성을 사는 것은 더 문제다. 결국 그 정부는 그 인물 때문에 나중에 곤욕을 치르게 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못한 탓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란 울면서 마속(馬謖)을 베다, 란 뜻으로 공정한 법 집행을 하거나,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정을 버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건흥 6년(228) 봄,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위나라를 공격했다. 제갈량은 전력상의 요충지인 가정을 지킬 장수로 마속을 보내면서 가정의 길목을 지켜 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마속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적을 끌어들여 역습을 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산등성이에서 장합의 군대에게 포위당해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참패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제갈량은 할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한중으로 퇴각해야만 했다. 마속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옥중에서 제갈량에게 〈속임종여량서(謖臨終與亮書)〉라는 글을 올렸다.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해 주셨고, 저는 승상을 아버지처럼 대하였습니다. 곤(鯀)을 죽이고 우(禹)를 흥하게 한 뜻을 깊이 생각하시어 평생의 사귐이 이 때문에 무너지지 않도록 하시면 저는 비록 죽지만 황천에서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제갈량은 패전의 책임을 물어 마속에게 참수형을 내렸다. 다시 구하기 어려운 장수이므로 살리자고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지만 법을 엄정히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울면서 마속의 목을 처 죽인 것이다.’ - 다음 백과 중

 

◆ 고교 후배 이상민 감싸는 윤석열

주지하다시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윤석열과 고교(충암고)와 대학(서울법대) 선후배 사이다. 그러다 보니 여러 장관 중 이상민에 대한 윤석열의 편애는 지나칠 정도다. 물론 고교, 대학 후배를 행안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어차피 인사는 잘 아는 사람을 쓰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관이 될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향후 어떤 정책을 펴느냐이다. 이상민은 판사 출신으로 ‘친일재산환수법’에도 반대한 보수적 색채가 뚜렷한 법조인이다. 이상민은 풍기는 인상도 그러하지만 언행이 거의 ‘불도저’ 같다. 그래서 윤석열이 아끼는지 모르겠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 아닌가.

 

◆ 행안부에 경찰국 신설하고 프락치를 초대 경찰국장으로 임명한 이상민

이상민은 15만 경찰이 반대하고 야당 및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경찰국을 행안부에 설치하고 사실상 경찰을 장악하려 했다. 더구나 초대 경찰국장으로 동료를 밀고해 경찰이 된 김순호를 임명해 공분을 샀다.

경찰국은 행안부와 경찰청을 연결해주는 조직으로 사실상 경찰 인사를 좌우하는 막강한 자리다. 그런 자리에 프락치 혐의가 있는 자를 임명한 것이다. 물론 김순호를 경찰국장으로 임명한 데는 윤석열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 이태원 참사 유족에게 비수 꽂은 이상민

아니나 다를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상민은 “경찰 조직이나 소방 조직을 많이 보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라고 말해 전국민적 공분을 샀다. 또한 이상민은 “그 행사는 주체가 없어 경찰이 단속할 권한도 의무도 없다.”라고 말해 유족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이상민 식으로 하면 주체가 없이 모여든 일출 관람객이 사고가 발생해도 경찰은 아무런 책임이 없게 된다. 그러나 헌법에도, 경찰기본조직법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은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상민은 헌법을 어긴 것이다.

 

◆ 참사를 사고 희생자를 사망자로

이상민이 이태원 참사 유족을 더욱 분노하게 한 것은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기해 합동 분향소에 현수막을 달게 한 것이다. 거기에다 이상민은 각 지자체에서 자체적으로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 것도 방해했다가 나중에 논란이 되자 겨우 허락했다.

심지어 이상민은 ‘근조(謹弔)’라 씌어 있는 리본을 못 달게 해 100만 공무원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이 역시 논란이 되자 자율로 맡겼다. 거기에다 이상민은 합동 분향소에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못 모시게 하였다.

이상민은 유족들이 서로 연락을 취해 단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고, 국정감사 때 “희생자 명단이 있느냐”란 질문에 “없다”고 했다가 얼마 후 있다는 게 밝혀져 망신을 당했다. 이 모든 것은 이상민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실과 사전에 조율된 것일 것이다.

 

◆ 유족보다 이상민을 먼저 위로한 윤석열

이상민이 이런 망언과 폐륜적 행동을 하는데도 윤석열은 이상민을 경질하거나 파면하기는켜녕 해외 순방 가기 전에 공항에서 만나 어깨를 쳐주며 위로하였다. 그 모습을 본 국민들이 분노해 촛불을 들고 모여 든 것이다.

윤석열은 야당의 이상민 해임 요구에도 아랑곳없이 오히려 힘을 주며 격려했다. 화물연대 파업을 강경으로 몰아붙여 보수층 지지가 좀 오르자 기고만장해진 윤석열은 이상민을 끝까지 지킬 태세인데, 그건 아마 탄핵 마일리지만 쌓이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목민심서 한 줄이라도 읽어라

정역용은 <목민심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常存畏 無或恣肆(상존외 무역자사) 

공직자가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공직에 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방자함이 없을 것이다.

斯可以寡過矣(사가이과과의) 

이것이 공직자로서 과오를 적게 하는 방법이다.

다산은 “자신의 능력보다 벼슬이 크면 눈을 가리게 되어 국민들을 불행하게 함으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공직을 하겠다고 나서면 안 된다.”라고 하였다. 다산은 “공직자란 모름지기 당리당략이 아닌 국민만을 직시하고 치민(治民)하는 것이 곧 목민하는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은 책이 닳도록 목민심서를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평생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다산이 책의 제목인 목민심서(牧民心書) 글귀 중 심서(心書)라고 지은 이유 중 하나가 '목민할 마음은 있지만 몸소 실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마치 윤석열과 이상민을 두고 한 말 같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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