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이상민에게서 왜 자유당 최인규 냄새가 나는 걸까?
상태바
[유영안 칼럼] 이상민에게서 왜 자유당 최인규 냄새가 나는 걸까?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2.07.28 2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에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을 흔히 기시감 혹은 ‘데자뷔’라고 한다. 요즘 이상민 행안부 장관을 보면 이승만 정권에서 맹활약한 최인규 내무부 장관이 떠오르는데, 이게 과연 우연일까?

혹자는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 하고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지만 최인규가 어떤 인물인지를 자세히 알고 나면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이승만이 집권한 자유당 시절로 가보자.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자유당에서는 이승만, 민주당에서는 신익희가 출마했다. 그러나 신익희가 선거 운동 중 사망하자 진보당 조봉암에게 30%나 되는 표가 갔다. 당시 결과는 이승만 약 500만 표, 조봉암 약 220만 표, 투표 당시 사망 상태인 신익희에 대한 추모표가 약 185만 표나 나오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승만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음모를 짜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음모가 평화통일을 부르짖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어 사형시키고 진보당을 박살내는 것이었다. 마치 박근혜 정부 때 진보당을 말살시킨 것을 연상케 한다.

두 번째 음모는 자유당을 비판하던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신 국가보안법을 발동시키는 것이었다. 세 번째 음모는 민주당이 아직 대통령 후보조차 정하지 못하고 내부 갈등으로 갈팡질팡하던 1959년 3월부터 이미 새로 내무부장관이 된 최인규를 통해 부정선거를 획책하는 것이었다.

최인규는 취임식 때 “모든 공무원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며, 차기 정부통령 선거에서는 기필코 자유당 후보가 당선되도록 해야 한다.”라고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최인규는 전국 시·읍·면·동에 ‘공무원 친목회’를 조직해 매주 1회씩 모여 득표 공작을 점검하고, 같은 해 5월부터 11월까지 서울, 인천, 대전, 춘천, 대구, 광주, 부산 등지를 순회하면서 공무원들에게 차기 정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 측 후보자가 당선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을 지시했다.

최인규에게 내려진 특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때 최인규는 “세계 역사상 대통령 선거에 소송이 제기된 일이 있느냐? 법은 나중이니 우선 당선시켜 놓고 보아야 한다. 콩밥을 먹어도 내가 먹고 징역을 가도 내가 간다. 국가대업 수행을 위하여 지시하는 것이니 군수 서장들은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말했다.

최인규가 계획한 부정 선거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4할 사전투표: 선거당일 자연 기권표와 금전으로 매수하여 기권하게 만든 전체 유권자 4할 정도의 표를 미리 자유당 지지표로 만들기

(2) 3인조 5인조 공개투표: 미리 짜둔 3인조, 5인조 별로 조장의 확인 아래 투표하여 자유당 선거위원에게 보여준 다음 투표함에 넣기.

(3)완장부대 활용: 자유당 완장을 찬 사람들을 여럿 투표소 주변에 배치시켜 심리적으로 압박하여 자유당에게 투표하도록 유도하기

(4)야당 참관인 축출: 민주당 측 참관인을 매수해 참관을 포기시키거나 여의치 않을 경우 구실을 붙여 투표장에서 축출하기

최인규가 부정선거 준비를 했는데 1960년 대선 직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유세기간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이로써 사실상 대통령은 이승만이 되는 거였는데, 문제는 부통령이었다. 이전 대선에서 자유당이 내세웠던 이기붕이 보기 좋게 민주당의 장면에게 진 기억이 있는지라 부정 선거가 아니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자유당은 그야말로 온갖 아이디어를 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당시 이승만은 나아가 85세여서 대통령 수생 중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부통령이 권한 대행이 되는데 비로 이기붕이 필요했던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준비한 부정선거 계획이 부통령 당선을 위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부정선거에는 엄청난 돈도 들어가야 했으므로 자유당은 각 기업에 1000만환 이상의 선거자금을 거두었고 그 총액이 70억환이었다. 또한 도로사업비 등 정부사업예산에서 80억 환을 전용,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 과거 한나라당이 한 소위 ‘차떼기 사건’도 다 역사가 있는 것이다.

드디어 제4대 대선이 치러졌으나 부정선거가 발각됨으로써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고 이게 바로 4.19가 되었다. 그 결과 이승만은 하야하고 부정선거를 지휘한 최인규 내무부 장관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현재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하는 것을 보면 풍기는 인상도 그렇고 하는 짓이 최인규를 떠오르게 한다. 이상민이 부정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에 대한 맹목적 충성은 닮았다.

윤석열 정권이 출범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내는 것이 아마 경찰 통제인 것 같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졌고 이어서 검찰정상화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위기감을 느낀 수구들이 경찰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승만이 집권한 자유당 시절이 아니므로 수구들은 궁리 끝에 행안부에 경찰국을 두어 경찰의 인사권, 예산권, 감찰권을 장악하려 했다.그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지금 하는 행동으로 보면 대충 짐작은 간다.

이상만이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국의 경찰들이 들고 일어나 연일 삭발, 단식을 하고, 급기야 전국 주요 도시의 경찰서장인 총경들이 모여 회의까지 했다.

그러자 이상민이 이를 두고 “하나회 버금가는 쿠데타” 라고 선언하고, 윤석열도 “국기문란” 운운했다.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상민은 “쿠데타와 내란은 다르다.”고 말해 세간의 조롱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쿠데타’는 불어로 우리 말로 하면 ‘내란’이다. 전두환이 12.12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잡았는데, 정식 죄명은 ‘내란’이었다. 즉 쿠데타와 내란은 같은 말인 것이다.

총경들이 회의할 장소와 시간을 공지했고, 평일도 아닌 주말에 모여 자신들의 의견을 모은 게 쿠데타라면 검찰정상화법 통과 때 검찰이 전국 검사장 회의, 평검사 회의를 한 것도 쿠데타란 말인가?

따라서 이상민의 주장은 논리에 맞지도 않고 사실도 아니다. 공무원인 경찰은 집단행동을 할 수 없지만 시간과 장소롤 공개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모을 수는 있다. 그게 쿠데타면 당시 검사장 회의나 평검사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지금 감옥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생긴 말이 ‘검로경불’이란 말이다.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의 지위를 활용해 사실상 검찰을 장악하고, 이상민이 행안부에 경찰국을 신설해 사실상 경찰을 장악해 사정정국을 만들어 작금의 낮은 국정 지지율에서 탈출하고 싶었겠지만 오히려 역풍만 불고 있다.

이번 주말에 전국의 경위, 경감은 물론 이런 파출소장들까지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데, 그때도 이상민은 쿠데타라고 할까? 그렇다면 14만 경찰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야 되지 않은가?

거기에다 국민 대다수가 경찰들의 저항을 지지하고 있고, 법률계에서도 정부조직법에 없는 경찰국 신설은 위법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이 문제는 헌법재판소로 가도 행안부가 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살리는 경제는 살리지 못하고 검찰 인사 도배, 정치보복, 경찰장악, 사적채용, 비선 동원, 무속 동원 등에 혈안이 되어 있는 윤석열 정권은 이만 퇴진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다.

공장과 상식이란 허울 좋은 말로 국민을 기만해 대통령이 된 윤석열은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본부장 비리 수사나 받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쿠데타 운운하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진짜 쿠데타는 국민을 기만한 윤석열이 하고 있지 않은가? 이상민은 부디 최인규 같은 간신이 되지 말기를 바란다. 인생 그리 길지 않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