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개가 권력이 되고, 권력의 감시자가 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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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개가 권력이 되고, 권력의 감시자가 개가 되다
  • 권종상 재미교포
  • 승인 2020.12.03 2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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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 15분부터 일하던 며칠동안 많이 힘들어진 몸을 이끌고 잠깐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 댁에 들렀다가 집에 와서 손 씻고 버릇처럼 컴퓨터를 엽니다. 뉴스들을 보니 가관들입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추미애 장관의 징계 결정에 대해 나온 뉴스들을 보면, 언론과 검찰이 얼마나 유착돼 있는지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나오는 뉴스마다 어떻게 하든 추미애 장관과 대통령에게 데미지를 줄 것인가만을 생각하는 것 같은 뉴스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사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기들이 직접 취재하는 것보다는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뉴스를 받아 먹으려는 게으르고 특권화 된 언론으로서는 수사권을 쥔 검찰이 흘려주는 정보를 단독이라는 이름을 달고 클릭수 올리기 장사를 하는 게 더 남는 것이라는 계산이 서기 때문이겠지요.

제대로 된 언론이 없습니다. 언론 자유는 세계 1위인데 신뢰도 꼴찌인 한국언론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이 지난 조국대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사안 사안마다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나름 10년간 기자생활을 했고, 그 글밥을 먹는 동안 나름으로 정론직필의 정신으로 글을 쓰겠다고 했었고, 어느 정도 제가 생각했던 그런 기자의 모습에 스스로 다가간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선 미래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공무원이 되려 했던 건 그런 몇 가지 이유들이 겹쳤었기 때문이었지요.

언론은 기득권의 일부가 되는 순간 그들이 비판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들이 협조의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에게 협조하는가를 보면, 누가 진짜 기득권인지도 마찬가지로 드러나게 됩니다.

항상 정권의 해바라기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범죄자들을 양산해 오던 검찰이 개혁의 대상으로 드러나자, 온갖 추잡한 방법을 동원해 그들을 ‘감히’ 개혁하려 한 장관들을 말 그대로 ‘보내려’ 하고 있고, 거기에 호응하는 언론들은 이제 그들 스스로 생각하는 ‘진짜 권력’에 어떤 식으로 개가 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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