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신선사졸(身先士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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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신선사졸(身先士卒)
  • 이정랑 중국고전 연구가
  • 승인 2019.10.07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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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졸보다 앞에 선다.

‘기호신서’ ‘기효혹문(紀效或問)’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른바 병사들보다 앞장서라는 말은 꼭 진의 앞장에 서라는 말이 아니라, 평소 어려울 때도 늘 앞장서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말은 어려울 때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함께 나누어 먹으라는 뜻이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보면 조조의 둘째 아들 조창(曺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조창은 어려서부터 말 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으며, 힘이 남달리 세어서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정도였다. 조조는 이런 조창에게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고 그저 무예만 좋아하는 것은 평범한 사내의 용기에 지나지 않으므로 높은 차원이 아니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조창은 대장부라면 한나라 때의 장군 위청(衛靑)이나 곽거병(霍去病)처럼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사막을 달리며 천하를 누비는 것을 배워야 마땅하지, 공부는 왜 하느냐고 대답했다.

일찍이 조조가 아들들에게 장래의 희망을 물었을 때 조창은 장군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장군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조조의 잇따른 질문에 조창은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들고 어려움에 처해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솔선수범하며, 상과 벌을 분명하게 믿음 있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조조는 크게 웃었다. 그 뒤 조창은 싸움터에서 용감하게 병사들보다 앞장서서 나아갔다.

‘군참(軍讖)’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훌륭한 장수는 군대를 통솔할 때 자신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다스리며, 은혜를 베풀어 병사들의 힘을 날로 새로워지게 한다. 싸우면 바람이 이는 것 같고, 공격하면 강둑이 터지는 것 같다.” 『황석공삼략』 「상략 上略」에서는 이 구절을 인용한 다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그 수를 헤아릴 수는 있어도 당해낼 수 없고, 그 밑에 서 있을 수 있으나 이길 수는 없다. 자신의 몸을 남보다 앞세우므로 그 군대는 천하의 용감한 군대가 된다.” 이 중 ‘자신의 몸을 남보다 앞세운다’는 ‘이신선인(以身先人)’이 곧 ‘신선사졸’과 같은 뜻이다.

‘울료자’ ‘전위(戰威)’에는 “전쟁이란 반드시 솔선해서 여러 병사들을 격려하는 데 근본을 두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마음이 사지를 부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솔선해서 여러 병사들을 격려하는 데 근본을 두어야 한다’고 한 것 역시 장수로서 ‘신선사졸’하여 스스로 모범이 되어 부하를 격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군대는 장수의 지휘가 마치 자신의 두뇌로 사지를 부리는 것과 같이 마음먹은 대로 자유자재다. 이 점을 ‘전쟁의 근본적인 이치’로 본 것이다.

576년, 제나라 군대는 진주(晉州-平陽)를 포위 공격했다. 망루와 성벽이 모두 파괴되고 성은 겨우 일곱 자 정도만 남는 등 쌍방의 전투는 잔혹할 정도로 격렬했다. 주(周)나라의 수비군 양서언(梁士彦)은 비분강개해서 부하들에게 “오늘은 죽는 날, 내가 앞장선다!”며, 부하들이 보는 앞에서 앞서 달려 나가니 부하들도 모두 용기백배하여 고함을 지르며 1당 100의 기세로 싸워 이겼다.

917년, 진(晉)나라의 장수 이사원(李嗣源)은 군대를 이끌고 유주(幽州)를 구원하기 위해 현재의 북경 방산현(房山縣) 서북을 지나 계곡의 작은 강을 따라 전진했다. 이사원 부장 이종가(李從珂)에게 3천 기병을 거느리고 선봉에 서게 했는데 산 입구에 이르러 거란의 1만여 기병과 맞닥뜨렸다.

이종가는 기겁하여 나아가지도 후퇴하지도 못하여 당혹해 하고 있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이사원은 기병 1백 명을 이끌고 자신이 앞장서서 적진으로 돌진하길 3차례 반복하면서 거란의 적장 한 명의 목을 베었다. 진나라 군대는 이에 힘입어 일제히 진격하여 적을 후퇴시키고 산 입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대의 장수들은 군을 다스릴 때 ‘신선사졸’을 매우 중시한다. 오늘날 우리가 자주 쓰는 ‘모범의 역량은 무궁하다’는 말이나 ‘앞장서서 이끄는 행동은 소리 없는 명령’이라는 말도 이런 이치에서 나왔다.

병사가 맹렬하면 장수도 맹렬하다. 장수가 ‘신선사졸’하는 것은 한 군대가 적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중요한 보물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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