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환 칼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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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환 칼럼]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미국
  • 문경환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19.04.1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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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일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한반도 문제의 돌파구가 마련될지 관심이 높다. 이에 과연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1.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

지금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리하면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북한의 비핵화와 무장해제를 목표로 하고 그것이 달성되고 나서야 종전선언이든, 북미연락사무소 개설이든, 대북제재 해제든 하겠다는 것으로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이다. 

지난 6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제시한 5개항 합의문 초안 내용을 공개했는데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미국 이전, 모든 핵 관련 활동 중지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 ▲북한 내 미군 병사 유해 발굴 등 두 가지를 북한이 이행하면 ▲종전선언 ▲북미상호연락사무소 설치 ▲대북경제지원을 미국이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이 일치하며 세계는 북한이 비핵화를 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6일 미 국무부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안보리 제재를 완전히 이행하길 기대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하게 하는 것이 한·미·일 3국이 주도하는 압박 캠페인의 목표”라고 밝혔다. 또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미국을 다녀온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5일 비핵화의 최종 목적지와 로드맵에 대해서 한미의 의견이 일치한다고 밝혔다.

셋째는 북한과 협상을 원하고 있으며 빨리 3차 북미정상회담을 하기 바란다는 것이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5일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머지않아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입장이 바뀐 것도 없는데 다시 협상을 하자는 것은 4월 11일 열릴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 재개 등의 결정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2. 미국은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자신이 김정은 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폼페이오도 지난 1일 몇 달 안에 3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길 기대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미국이 입으로는 협상을 이야기하지만 대북정책을 보면 사실상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단 미국은 북한이 받아들일 수 없는 일방적인 요구를 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는 “북한 핵무기와 핵물질을 미국에 반출하고 전체 관련시설의 완전한 해체”, “북한의 모든 핵 관련 활동과 새로운 시설의 건설을 중지”, “핵 개발 계획을 포괄적으로 신고하고 미국과 국제사찰단의 완전한 접근을 허가”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완전히 무릎을 꿇으라는 것인데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게다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대량살상무기(WMD)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데 북한은 생화학무기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이는 협상이 될 수도 없는 사안이다. 이런 미국의 태도를 두고 언론들은 ‘사실상 백기 투항을 요구한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또한 미국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폐기해야 상응 조치를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동시 행동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상호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이 완전히 무장해제를 하면 그제야 자신들도 움직이겠다는 것은 형평에도 어긋나고 현실성도 없다. 북한이 미국을 믿고 비핵화에 나설 이유가 없다.

북한에 요구하는 내용과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 조치가 등가교환의 대상도 아니다. 미국이 북한에 요구하는 내용은 완전한 무장해제로 여기에 맞는 상응 조치는 당연히 군사안보 영역에서 미국이 북한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물리적 조치여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고작 ▲종전선언 ▲북미상호연락사무소 설치 ▲대북경제지원을 하겠다고 한다. 이 가운데 종전선언과 북미상호연락사무소 설치는 북미 양국에 모두 이익이 되는 것이므로 결코 북한에 대한 미국의 ‘보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대북경제지원은 북한이 요구한 적이 없는 내용이다. 북한은 미국과 정상적인 경제교류를 하자는 것이지 무슨 지원이나 시혜를 요구한 적이 없다. 게다가 경제지원에 포기할 핵무기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미국은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하면 관계정상화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북한이 핵개발을 하기 전에는 왜 종전선언이나 연락사무소 설치, 대북제재 해제 등을 하지 않았나. 북핵문제가 터지기 전에, 아니 터진 후라도 아직 핵무기 개발을 하기 전 단계에서 관계정상화를 했다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당시에는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를 무시하다가 이제와서 비핵화를 하면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하면 누가 그걸 믿겠는가. 만약 북한이 비핵화를 하고 나면 또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종전선언을 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결국 미국의 주장은 북한의 무장해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탕발림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렇게 쉽게 드러난다.

이처럼 미국의 입장은 북한과 협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북한과 협상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3. 문재인 정부의 구상은 현실성 있는가

문재인 정부는 지난 17일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빅딜’ 전략과 북한의 단계적 동시행동 요구를 절충한 ‘굿 이너프 딜’(충분히 괜찮은 거래)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포괄적 비핵화 목표를 먼저 합의하고 이행은 단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현실성 있을까? 기존의 방법보다 더 발전한 안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제안은 현실성도 없고 오히려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안이다. 일단 첫 단계부터 합의가 될 수 없다. 포괄적 비핵화 목표에 대해서 합의하려면 북미 양국이 서로가 원하는 안을 내놓고 합의를 봐야 한다. 미국의 입장은 앞서 서술한 것처럼 이미 나왔다.

그럼 북한이 원하는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북한의 최종 요구는 한반도 안전보장이다. 미국의 요구대로 모든 현존하는 핵무기와 미래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까지 완전히 폐기하려면 미국도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의 위협을 느끼지 않아야 북한도 핵을 내려놓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이 가진 모든 핵무기, 미사일, 대량살상무기, 체제전복 공작, 대북적대정책을 폐기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미국은 본토에 핵미사일, 전략폭격기, 핵항공모함, 전략핵잠수함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나 주일미군, 괌 미군기지 철거 정도로는 안심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북한은 자신을 무장해제시키려면 미국도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이게 등가교환의 원칙에 맞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합의는 어렵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이 무장을 해제하려면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전략무기를 없애야 한다. 북미 상호 전략무기 폐기는 전 세계 전략무기 폐기와 하나로 연결된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나아가 전 세계 입장에서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없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비현실적 제안을 한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의 의미를 아직도 ‘북한 비핵화’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계속 북한이 비핵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북한 비핵화’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인된 합의 어디에도 ‘북한 비핵화’는 없다. 오직 ‘한반도 비핵화’만 있다. 남북은 4.27 판문점 선언 3항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며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 노력”하기로 했다.

북미 역시 6.12 북미공동성명 3항에서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다. 국제사회도 2017년에 나온 유엔 안보리 결의 제2397호 26항에서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식으로 달성”해야 한다는 2005년 6자 회담 9.19공동성명을 지지한다고 하였다.

즉, 모든 공식 합의들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핵위협이 사라져야 한다. 실제로 9.19공동성명은 1항에서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 또는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하여 미국의 핵위협도 제거 대상임을 분명히 하였다.

다시 정리하자면 한반도 비핵화란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 대한 핵위협을 모두 없애는 것이며 이는 북한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와 미국, 나아가 전 세계가 염원하는 공동의 요구사항이다.

그러나 미국은 자신의 패권 욕심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를 실행할 수 없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제안은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며 첫 단계부터 난관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실현 가능성도 없고 좋은 안도 아니다.

▲ 2019년 1월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신년사 발표.

 

4. ‘새로운 길’로 갈 수밖에 없는가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은 협상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미국은 오직 북한을 압박하고 일방적으로 굴복을 강요할 뿐이다. 그리고 이를 전제로 한·미·일 반북전선을 구축하고 중국 등을 끌어들여 북한을 고립, 붕괴시키겠다는 모습만 보인다.

북한은 올해 신년사에서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자기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우리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의연히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이라고 전제조건을 명시하며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이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지금 미국의 태도는 북한이 말한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이런 미국에 대해 북한이 대화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싶다. 그러면 결국 대화 아닌 것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대화 아닌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분명하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책임은 협상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북한을 일방적으로 굴복시키려 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정부에 있다. 그리고 이에 부화뇌동한 친미굴종세력도 공동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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