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비정신의 현대적 가치 재조명
상태바
[기고] 선비정신의 현대적 가치 재조명
  • 김철홍 자유기고가
  • 승인 2024.05.22 23: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철홍 자유기고가
김철홍 자유기고가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저출산과 기후 위기’라는데 누구나 공감한다. 이외에도 외모 컴플렉스로 인한 성형문화를 꼽거나 최근 마약 및 마약 범죄의 심각성이 언론매체를 통해 사회문제화 되고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사라지는 양반문화와 선비정신에 대해서는 크게 이슈가 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발단은 1950년 6·25 전쟁과 전쟁으로 인한 폐허 그리고 전쟁에 의한 상처라고 진단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옛날에 양반하면 단순히 경제력도 갖추고 많은 식솔도 거느리면서 벼슬한 사대부로 상류층 신분이라 할 수 있으나, 선비는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녀 존경받고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선비정신 즉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세속적 이익보다 대의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이 양반문화와 함께 조선의 시대정신이자 사회와 문화를 지탱하는 힘과 사상적 역할을 했다.

명문가 집안으로 널리 알려진 경주 최부자집, 최진사집은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집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지했고,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고 했다. 또한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가 없도록 하라. 찾아오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흉년에 남의 논·밭을 사들이지 못하게 했다’는 전통과 가훈이 전해져 오면서 단순히 그 집안이 품고 있는 부(富)뿐만 아니라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될 만한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영화 ‘가문의 영광’ 촬영지로 구한말 만석꾼 집인 여수 봉소당(鳳巢堂)의 김한영 선생 후손들이 성실한 소작인들에게 남몰래 덕을 쌓고, 지나가는 과객에까지 자립의 발판을 만들어 주는 등 적선공덕(積善功德)으로 여순 반란사건 때 죽창으로 찔러 죽이는 등 살상과 충돌의 한복판에서 과거 도움을 받은 소작인의 아들이 좌익세력 대장으로 완장을 차고와 김한영 선생의 아들을 알아보고 탈출을 도와 목숨을 건졌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임금이 내린 여러 벼슬, 나중엔 우의정까지 사양하는 상소문을 40차례 이상 올린 논산 명재 윤증 선생이 철저한 자기관리와 검소한 제사, 가례 등을 강조한 유훈을 남겼으며 ‘종학당’이라는 사립 교육기관을 설립해 문중의 후손뿐만 아니라 주변 학생들에게 개방하고 교육에 따른 노동력 손실 대가로 오히려 장학금을 지급하고 서민 먹을거리인 양잠을 양반 집안에서 해 버리면 서민들 밥 굶는다는 이유로 윤씨 집안은 양잠을 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는 생전 처신과 가르침은 진정한 선비정신의 실천이다.

이러한 명문가들의 적선과 배려 그리고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의식이 역사적으로 동학에서 6.25까지 격변의 시기에 가문을 지켜주었다.

예전에 천석꾼이라는 말은 지금 천억대, 만석꾼은 조 단위 부자라고 한다. 그야말로 만석꾼은 재벌 오너다. 재벌기업 오너들이 이러한 옛 명문가들의 도덕성과 리더십, 불굴의 용기를 교훈 삼아 기업의 비전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하는 바람직한 오너상(像)을 구현하면 좋겠다.

옛말에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 선행을 쌓은 집에는 반드시 경사(慶事)가 일어난다는 말은 서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다. 즉 선비정신은 한국형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누군가가 명문가 집안이 과거 행적이나 살아온 길을 알려면 동학때, 6.25 등 사회적 격변기 당시 죽었는지 건재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한다. 적선하고 베풀었던 명문가는 확실히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외국의 경우, 시리아 등 내전으로 약탈이 난무하는 중동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세상에 비밀이 없고 기록이나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몇백 년 전 명문가의 행적(行跡)은 요즘 스포츠스타나 연예인들 또는 고위층 자녀들이 학창시절 저질렀던 학교폭력 문제로 곤욕을 치르거나 대기업이나 직장 상사의 갑질이나 가스라이팅 등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언론매체에 가끔 등장하는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조어가 많은 세상이다 보니까 특정 분야에 걸출한 능력을 지닌 사람에 붙여주는 호칭이 생기게 되었다. 최근에는 대통령의 ‘대’자 대신 분야를 붙여 이들을 밥통령, 애통령, 개통령이라 호칭하고 이들은 한국의 3대 해결사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개통령은 현재 갑질, 가스라이팅 등 언론을 통해 구설수에 올라 세 통령 중 이미지상 가장 튼튼해 보였던 개통령이 먼저 갈줄 몰랐다며 실망의 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또한 연이어 트바로티로 불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가수도 구설수에 오르며 과거의 행적까지 드러나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저출산과 기후 위기’인 것처럼 고결한 인품을 지니고 존경받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선비정신’의 실종도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앞의 명문가의 사례를 보고서 한 지인이 “떡밥을 뿌리고 볼 일이다.

어느 코에 아다리될 줄 모르니까.”라면서 “어느 구름에 비 들어 있는지 모른다.”는 속담을 인용하여 박장대소했던 기억이 있다.

‘적선해라,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다.

흔히 고스톱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농담처럼 한다. 근데 그건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과거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현대 사주명리학의 3대 거목 중 한 명인 제산 박재현, 일명 박도사를 참모로 하여 신입사원 면접 및 중역인사에 관여하는 등 그의 신통력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또한 이병철 회장은 사업의 성공비결을 인생을 살아보니 50대 운칠기삼, 60대 운팔기이, 70대에는 운구기일(運九技一)이라고 했다는 일화도 있다.

사주명리학자인 조용헌 교수가 표현하는 영발경영(靈發經營)의 사례는 한국 현대사에 수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독특한 사례는 삼성이다. 더욱 놀란 것은 세계 최고의 부호 존 록펠러도 사업 성공 비결을 “첫째도 운(運), 둘째도 운(運), 셋째도 운(運)”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이들은 현대경영학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를 넘어 성공경영을 이룬 셈이다.

이는 인비지블 데이터(invisible data)에 의한 경영으로 경영철학 중 하나며 기업경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무형자산을 의미하고 기업의 브랜드가치, 기술력, 인재, 조직 문화 등에 많은 투자와 조직문화 개선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다고 평가한다. 상대에 대한 배려, 적선이 보시(布施)의 핵심인 만큼 이들의 성공경영은 결코 운(運)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선비정신은 예의와 도덕, 학문과 인격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가치관이다. 오늘날 퇴색한 이러한 가치관을 복원하기 위해 학생 중심의 교육을 유도하고 선비정신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위해 사회적 분위기 조성 그리고 대중들에게 선비정신을 알릴 수 있는 미디어의 역할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새로운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문화를 만드는 범국민적 정책과 우리 국민 개개인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퇴계 선생이 70 평생 살아가면서 사회적 약자인 나이 어린 제자, 집안 여인, 심지어 하인에게까지 스스로 겸손하게 처신하고 그들을 아끼고 보듬은 일화와

퇴계 선생이 몸소 실천한 ‘물러남의 미학’이 반목과 갈등이 날로 심해지는 지금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더우기 요즘이 겸손과 칭찬,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기에 2500년 전 테스형보단 450년 전 퇴계 형이 우리에게 훨씬 가깝고 배울게 많음을 깨닫게 된다.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