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스] 정부 비판하면 '입틀막'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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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정부 비판하면 '입틀막'하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
  • 뉴스타파
  • 승인 2024.03.30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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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대파 발언’이 화제입니다. 지난 18일, 윤 대통령은 물가 점검을 위해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방문했는데요. 

공교롭게도(?) 윤 대통령이 방문한 하나로마트는 대파 한 단을 875원이라는 파격 할인가에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평균적인 대파 값의 1/3정도에 불과한 가격이었죠. 그런데 이를 본 윤 대통령이 “대파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말하면서 논란에 불이 붙게 됩니다.

▲ 지난 18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를 찾은 윤석열 대통령. (MBC 보도 영상 갈무리)

이후 해당 발언을 두고 정부와 여당, 야당 사이에 수많은 설전이 오갔습니다. 국민의힘 이수정 후보(경기도 수원 정)는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에 875원이라고 말한 것’ 이라고 대통령을 변호해 또 다른 논란이 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최근 이 논란이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대파 발언’을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가 선거방송심의위원회(선방위) 심의를 받게 될 것으로 알려진 것이죠.

아래에서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선방위는 말 그대로 선거 방송을 심의·제재하는 기구입니다. 총선 후보도 아닌 대통령 관련 보도를 심의하는 것이 선방위의 업무 범위가 맞는지 의문이 제기되는데요. 

사실 선방위는 최근 들어 과잉 심의 논란을 계속 일으키고 있습니다. 보도 내용 자체는 물론이고 방송 패널의 발언 한 마디, 심지어 일기예보까지 문제 삼아서 ‘무차별 징계’를 내리는 모양새예요. 

또 다른 문제는 선방위 징계가 주로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방송사에 집중돼 있다는 것입니다.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선방위가 중립성을 잃어버린 채 폭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와요.

이러한 선방위의 폭주는 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이번 주 ‘타파스’는 폭주하고 있는 선방위와 그 원인, 그리고 폭주를 막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MBC에 징계 8건... 정부 비판하면 ‘입틀막’ 하는 선방위 

먼저 ‘선거방송심의위원회’ 라는 생소한 기구에 대해 설명해 볼게요. 사실 저는 선방위라는 기구의 존재를 이번 총선 들어 처음 알게 됐는데요. 

공직선거법 제 8조의 2에 따르면, 선방위는 선거방송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선거 때마다 설치·운영되는 기구입니다. 그만큼 ‘선거방송’을 전문적으로 심의하고, 선거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중립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번 22대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선방위는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아예 한 건의 징계도 내리지 않았고, 다른 선거 때도 보통 한두 건의 징계를 내리는 데 그쳤어요. 

그런데 22대 총선 들어 선방위는 엄청난 속도로 징계를 쏟아내고 있어요. 지난 21일 이미 역대 총선 최다 징계 건수(14건)를 돌파했고, 최고 수위 징계인 ‘관계자 징계’도 벌써 11건에 달합니다. 참고로 선방위 ‘관계자 징계’는 지난 15년간 단 두 건이 나왔을 뿐이었어요.

문제는 이렇게 쏟아지는 징계가 주로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보도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여러 논란에 휩싸였던 MBC에 대한 징계가 두드러졌는데요. 위에서 말씀드렸던 11건의 관계자 징계 중 8건이 MBC 에 집중됐습니다.

▲ 22대 총선에서 선방위가 의결한 관계자 징계 11건 중 8건이 MBC에 집중됐습니다.

일기예보에 징계? 계속되는 선방위 심의 논란 

또 각각의 징계 내용을 살펴보면 과연 선방위에서 심의할 안건이 맞는지, 심의 결과가 적절한지 의문이 드는 안건이 많습니다. 

지난 2월 23일 선방위는 뉴스 프로그램 출연자가 ‘김건희 특검법’에서 ‘여사’ 호칭을 생략했다는 이유로 SBS에 징계를 내렸어요. 당시 백선기 선방위원장은 “대통령 부인에 관련해서는 아무리 야당 인사라고 해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2월 27일 MBC는 일기예보에서 미세먼지 농도를 표현하기 위해 ‘파란색 숫자 1’ 그래픽을 사용했는데, 이 그래픽이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선방위 위원 9명 중 7명이 징계를 추진하기도 했습니다.

▲ 선방위 심의 대상이 된 MBC <뉴스데스크> 일기예보 화면 갈무리.

이처럼 선방위는 주로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보도를 한 방송사를 대상으로 수많은 징계를 쏟아내고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선방위의 행태가 ‘언론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라고 말합니다. 방송사들이 징계를 피하기 위해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을 자제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는 결국 언론이 보도해야 할 사안을 보도하지 못하고, 그만큼 유권자의 선택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공정한 선거를 위해 설치된 선방위가 오히려 공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이죠.

 

선방위가 ‘폭주’하는 이유는? 

그렇다면 선방위는 왜 이렇게 ‘폭주’하고 있는 것일까요? 

선방위는 원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산하 위원회 중 하나였습니다. 1997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선거방송 전문 심의기구’인 선방위가 독립해 나왔지만, 여전히 선방위를 어떻게 구성할지는 방심위의 결정에 달려 있어요.

그런데 현재 방심위는 이른바 ‘청부 민원’ 의혹을 받고 있는 류희림 위원장과 정부·여당 측 추천 인사들이 사실상 장악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선방위 역시 정부·여당에 친화적인 인물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높겠죠.

실제로 류희림 방심위가 구성한 22대 총선 선방위에는 친정부 시민단체 ‘공정언론국민연대(공언련)’ 관련 인물이 2명 포함돼 있는데요. 공언련 1기 대표를 맡았던 최철호 위원과 현 공언련 이사장인 권재홍 위원이 바로 그들입니다.

최근 방심위·선방위에는 공언련이 낸 민원이 많이 들어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런데 이렇게 접수된 민원을 안건에 올리고 심의하는 위원들이 바로 공언련 출신인 최철호, 권재홍 위원이에요. 일종의 ‘셀프 심의’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원래 방송 심의에서는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민원인과 심의위원이 엄격히 분리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의위원이 마음대로 심의와 징계를 남발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현재 선방위에서는 이 원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 22대 총선 선방위원 9명의 명단. 공언련 관계자인 최철호, 권재홍 위원을 비롯해 친정부 성향 위원들이 다수입니다.

물론 현재 선방위 위원들 중 정부·여당에 비판적이거나 중립적인 위원도 있습니다. 그러나 친정부 성향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한 상황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다수결’에 묻혀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어요. 

결국 류희림 위원장 등 친정부 성향 인물들이 방심위를 장악하고, 선방위 역시 친정부 성향 인물들로 채워넣으면서 선방위의 ‘폭주’가 일어나고 있는 셈이에요.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다름아닌 윤석열 대통령의 탓도 큽니다. 윤 대통령이 야당에서 추천한 방심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 현재 방심위의 야당 추천 위원 자리가 비어 있기 때문이에요.

 

권력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

선방위는 선거 방송의 공정성을 조사하고, 공정하지 않은 방송에 대해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권한을 함부로 휘두른다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국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22대 총선 선방위는 자신들이 휘두른 권한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별 고민이 없는 것 같습니다. 또 정부와 여당 역시 선방위를 비판 세력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뉴스타파는 최근 김준희 방심위 노조 위원장, 탁동삼 방심위 연구위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에 맞서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은 현재 방심위와 선방위의 상황에 깊은 답답함을 토로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일에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부당한 일에 용기를 내서 맞설 수 있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정부, 여당, 보수 언론과 친정부 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마치 한몸처럼 움직이며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가 아닐까요. 그럼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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