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이승만이 1~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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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이승만이 1~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라니...
  • 김용택 이사장
  • 승인 2023.12.26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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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영령들이 지하에서 통곡한다

국가보훈부가 2024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선정했다. 보훈부는 25일 ‘세계 속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선정한 2024년 1~12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총 38명을 공개했는데 그 중 1월의 독립운동가로 이 전 대통령이 선정했다. 보훈부가 이승만을 1월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한 이유는 “이승만은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을 역임했고 주미외교위원부 위원장으로서 한인 자유대회 개최와 한미협회 설립 등의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 이승만이 누구인가?

1948년부터 1~3대 대통령으로 집권한 그는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를 했고 4·19 혁명으로 1960년 하야했다.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 한국을 일정기간동안 국제연맹의 위임통치 아래 두어달라는 위임통치청원서를 윌슨 대통령에게 제출한 것도 모자라 독립운동가 최능진에게 내란음모죄를 씌워 총살시켰다. 제주 4·3항쟁으로 2만 5,000명~3만 명의 인명피해를 냈는가 하면 이를 빌미로 국가보안법을 제정해 정적을 제거한다. 6·25전쟁 중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장기집권을 위해 불법적인 발췌개헌과 전쟁이 채 끝나기 바쁘게 사사오입개헌을 단행한 사람이 이승만이다.

이승만은 1952년 7월 4일 부산의 피난국회에서 재선이 어려워지자, 6·25전쟁 중인 1951년 11월 30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1952년 1월 18일에 국회는 정부의 개헌안을 부결했고, 4월 17일에는 이승만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들을 주축으로 의원 123명이 발의한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제출되었다. 7월 4일, 군경(軍警)들이 국회의사당을 포위한 가운데 국회의원들은 기립하는 방식으로 투표하여 출석 의원 166명 중 찬성 163표, 반대 0표, 기권 3표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켰다.

권력에 취하면 이성을 잃는다. 권력에 취한 이승만도 1954년 본인의 영구 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 당시 재적의원 203명 중 찬성한 의원이 135명, 반대한 의원이 60명, 기권이 7명으로 개헌 정족수에 1표가 부족해 부결이 선포했다. 헌법 개정에는 국회 재적의원 203명의 3분의 2인 135.333……명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였고, 이 개헌안에 대해 찬성 135표가 나와 부결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이틀 후 여당인 자유당과 정부에서는 사사오입의 논리를 주장하며 개헌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위헌이자 무효가 되어야 하는 개헌이었다.

1950년 6.25 전쟁 중에 대한민국 국군·헌병·반공단체 등이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수만 명 이상의 국민보도연맹원을 학살했다. 이승만은 그의 사병(私兵)인 서북청년회를 앞세워 김구를 비롯한 정적을 제거하고 조봉암 진보당 당수에게 간첩 혐의를 적용해 사형시키는 등 보도연맹사건과 제주 4·3항쟁, 여순항쟁, 대구 10·1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꺼낸 카드가 《반공》이다.

1951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박산에서 국군 제11사단 소속 군인들이 공비 소탕 명목으로 15세 이하 남녀 어린이 359명을 비롯해, 16~60세 300명, 60세 이상 노인 60명 등 719명을 총살하는 등 전국 곳곳에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러 정확한 희생자 수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1951년 초 이른바 ‘1.4후퇴’에 의해 부산까지 약 15일간 도보로 후퇴하면서 처참하게 학대당해 아사․동사․병사자가 5만~10만 명에 달하는 국민방위군을 창설해 ‘1.4후퇴’에 의해 부산까지 약 15일간 도보로 후퇴하면서 처참하게 학대당해 아사․동사․병사자가 5만~10만 명에 달하는 아사자를 내기도 했던 인물이 이승만이다.
“인간을, 포로도 아닌 동포를, 이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6·25전쟁의 죄악사에서 으뜸가는 인간 말살 행위였다. 이승만 정권과 그 지배적 인간들, 그 체제 그 이념의 적나라한 증거였다. 얼마나 많은 아버지가, 형제와 오빠가, 아들이 죽어갔는지... 단테의 연옥과 불교의 지옥도 그럴 수 없었다.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한국의 1951년 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리영희 선생이 쓴 ‘한국현대사 산책’에 나오는 글이다. 그래도 이승만을 독립운동가로 대접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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