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수능 시험 날 나는 죄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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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수능 시험 날 나는 죄인이 됩니다
  • 김용택 이사장
  • 승인 2023.11.16 0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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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언제쯤 교육을 할 수 있을까?

수학능력고사를 치는 날이면 나는 “오늘이 이 땅에서 치르는 마지막 수능이기를...”라는 기도를 한다. 이런 속죄의 글이라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군 병력을 마치기 바쁘게 교단에서 초롱한 눈망울을 마주보며 보낸 세월.... 내가 뿌려놓은 교육의 씨앗이 지금쯤 얼마나 영글었을까?

 

■ 수능 날 아침 늙은 교사의 기도

한반도 남단 대한민국 2023년 11월 16일 이 땅에 태어난 남녀 학생 504,588명이 1373개 시험장에서 수학능력고사 치르는 날 이날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 아버지 어머니, 시민.... 아니 비행기도 자동차도 휴대폰도 디지털 카메라, 엠피스리(MP3), 전자사전, 라디오도 이 땅에 사는 모든 잡귀조차 숨죽이며 죄인 되는 날...

나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그 하나만으로 군대에서도 사라진 체벌에 인권유린조차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제갈 물려 살던 착하기만 한 아이들을 서열 매기는 날, 오늘... 양심을 팽개친 지식인도 교육자라는 이름의 공범자도 죄인이 된다. 이 땅의 어머니는 혹은 절에서 혹은 교회에서 더러는 시험장 교문을 붙들고 오열한다. 오늘을 위해 20년의 세월을 저당 잡혀 살아온 착하디 착한 청소년들이여! 2023년 오늘 이 땅에 태어났다는 그 원죄를 벗고 고통의 세월, 억압의 세월....그 한을 오엠아르(OMR) 카드에 후회 없이 담아 기도하는 가족품으로 가세요. 앞으로 모든 날은 웃으며 사는 날이 되기를... 2023년 11월 16일 수능 보는 날 아침 수험생들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늙은 교사는 죄인이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린다.

 

■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수학능력고사 준비를 위해 교실과 학원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오가며 시험문제 풀이 기술을 배우고 익혀왔다. 사람을 쇠고기 부위 등급 매기듯이 소수점 이하 두 자리 이상까지 계산해 한 줄로 세우는 시험... 이 땅에 사는 부모들은 하나같이 오늘을 위해 바늘 방석같은 세월을 살아왔다. 혹자는 원정출산에서 혹은 이산가족이 되어 학원비를 마련하느라 보낸 세월....

 

■ 수능이 공정하다는 사람들에게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학교에서 시험공부를 하는게 당연하다고 철석같이 믿기 시작했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다. 시험문제를 풀이해 점수를 잘 받게 하는 곳은 학원이다. 학교도 학원도 시험문제 풀이하는 곳이 됐지만 전국 유·초·중등학교 20,605개 학교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들은 하나같이 이런 학교가 정상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시험문제를 풀이하는 곳은 학교가 아니라고 하는 교사들은 빨갱이가 되어 쫓겨나 34년이 지나도록 원상회복조차 못하고 더위도 추위도 잊은채 길거리에서 “원상회복하라!”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병이라도 불치의 병이 든 대한민국의 교육, 2022년 공교육비 89조 6251억 원, 사교육비 총액 약 26조 원.... 교육을 안내해야 할 교육부는 수능의 난이도가 어떠니 변별력이 어떠니 킬러문항이 어떠니 설명하기 바쁘다.

“홍익인간(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부 관계자들은 대한민국 교육기본법 제 2조를 알고 있는가. 도로교통법만 어겨도 벌금을 받거나 면허를 취소당하는데 국회가 제정하고 대통령이 공포한 대한민국 법을 어기고 있는 교육부, 교육전문가, 교사들은 치외법권자들인가?

■ 아는 걸 다시 배우는 게 아니라/ 모르는 걸 배우는 게 공부이며/ 열의의 속도는 아이마다 다르므로/배워야 할 목표도 책상마다 다르고/아이들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거나 늦으면/학습목표를 개인별로 다시 정하는 나라/변성기가 오기 전까지는 시험도 없고/잘했어, 아주 잘했어. 아주아주 잘했어/이 세 가지 평가밖에 없는 나라/친구는 내가 싸워 이겨야 할 사람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서 과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멘토이고/경쟁은 내가 어제의 나하고 하는 거라고 믿는 나라/나라에서는 뒤처지는 아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게/교육이 해야 할 가장 큰일이라 믿으며/공부하는 시간은 우리 절반도 안 되는데/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보며그는 입꼬리 한쪽이 위로 올라가곤 했다/

가르치는 일은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므로/언제든지 나랏돈으로 교육을 시켜주는 나라/청소년에 관련된 제도는 차돌멩이 같은 청소년들에게/꼭 물어보고 고치는 나라/여자아이는 활달하고 사내 녀석들은 차분하며/인격적으로 만날 줄 아는 젊은이로/길러내는 어른들 보며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학교가 작은 우주라고 믿는 부모와/머리칼에서 반짝이는 은빛이/눈에서도 반짝이는 아이들 보며/우리나라 아이들을 생각하며/마침내 그는 울었다.

우리는 도종환 시인이 꿈꾸던 “북해를 바라보며 그는 울었다”와 같은 세상을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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