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스] 검찰총장의 비밀 금고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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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 검찰총장의 비밀 금고를 찾았습니다
  • 뉴스타파
  • 승인 2023.11.1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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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는 지난 6월 검찰의 특수활동비(특활비)등 예산 자료를 사상 최초로 입수한 데 이어, 지금까지 베일에 감춰져 있던 검찰 특활비의 집행 구조와 실태 등을 분석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일반인들의 상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검찰 특활비의 구조를 밝혀내기도 했는데요.

개인적으로 제일 충격적이었던 건, 수백억 원에 달하는 특활비 중 약 절반이 검찰총장 한 사람의 관리 아래 쓰였다는 사실이었어요. 게다가 특이하게도 이 특활비는 대부분 현금을 뽑아서 주는 방식으로 집행됐습니다. 일반적인 회사에서 공금을 집행할 때 법인카드를 쓰는 것과는 대조적이죠.

게다가 이 ‘총장 전용 특활비’ 중 상당 액수가 포상금, 격려금, 명절 상여금 등 검찰총장의 ‘통치 자금’으로 쓰인 정황도 드러났습니다. 원래 ‘기밀 수사 등 특수한 활동’에 써야만 하는 특활비가 사실상 검찰총장과 몇몇 간부들의 용돈처럼 쓰인 셈이에요. 

▲ 검찰의 내부 비리를 폭로해 온 임은정 검사는 특활비가 사실상 ‘나눠먹기’ 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MBC)
▲ 검찰의 내부 비리를 폭로해 온 임은정 검사는 특활비가 사실상 ‘나눠먹기’ 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MBC)

그런데 뉴스타파는 최근 검찰 특활비를 분석하며 또 다른 비밀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검찰총장이 관리하는 ‘비밀 금고’의 존재를 밝혀낸 것인데요.

이 비밀 금고는 특활비 중 일부를 현금으로 넣어 놓고, 검찰총장이 원할 때마다 꺼내 쓰는 이른바 ‘현금 저수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게다가 검찰은 이 비밀 금고를 만들기 위해 편법과 꼼수를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어요.

이번 주 ‘타파스’는 뉴스타파가 새롭게 확인한, 검찰총장의 ‘비밀 금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잔액 ‘0원’이었는데 1억 원 지출? 검찰, 국가재정법 위반 의혹

우리나라 국가재정법은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올해 받은 예산은 올해 안에 다 써야 한다는 원칙이에요. 만약 연말(12월 31일)까지 예산을 모두 쓰지 못한다면, 불필요한 세금 낭비를 막기 위해 남은 돈은 국고에 반납해야 합니다.

즉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첫 예산이 입금되기 전까지 모든 정부 기관에는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어야 합니다. 12월 31일까지 모든 예산을 소진하거나 반납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검찰은 달랐습니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월 검찰총장 특활비 계좌에 돈이 입금된 날은 1월 14일이었어요. 즉 1월 1일부터 14일 입금 전까지는 쓸 수 있는 현금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실제로 당시 검찰이 국회에 제출한 결산보고서에는 특활비 불용액, 즉 남은 돈이 ‘0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문무일 총장은 1월 1일부터 14일까지 약 1억 원의 특활비를 집행했습니다. 분명 돈이 없다고 했는데 어디선가 1억 원이 튀어나온 셈이죠. 이 돈은 대체 어디서 나온걸까요?

▲ 2019년 문무일 검찰총장의 특활비 집행 내역 중 일부. 이 중 약 1억 원은 국가재정법상 현금 사용이 불가능한 시점에 사용됐습니다.
▲ 2019년 문무일 검찰총장의 특활비 집행 내역 중 일부. 이 중 약 1억 원은 국가재정법상 현금 사용이 불가능한 시점에 사용됐습니다.

가능성은 하나입니다. 작년(2018년)에 쓰지 않은 특활비 일부를 현금으로 보관하고 있다가, 2019년 1월에 꺼내 썼다는 의혹이죠. 만약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다른 누구도 아닌 검찰총장이 국가재정법을 위반한 셈이에요. 

 

특활비 지급받은 시점에 집행 완료? 검찰의 궤변.

▲ 10월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이원석 검찰총장. 특활비를 보관한 뒤 연초에 사용했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 10월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이원석 검찰총장. 특활비를 보관한 뒤 연초에 사용했다고 발언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이원석 현 검찰총장은 ‘특활비를 보관하고 있다가 연초에 사용한’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회계상으로 특활비 집행은 연내에 완료된 것이기 때문에 회계연도 독립의 원칙을 어긴 것은 아니다’ 라고 주장했어요.

검찰은 지난 2022년 특활비 정보공개 소송 당시에도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습니다. ‘특수활동비는 대검찰청 운영지원과가 검찰총장에게 현금으로 전달함으로써 집행이 완료된다’ 라는 주장이었어요. 왠지 이해가 될 듯 말 듯 아리송한 말인데요.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고등학생 H군은 부모님으로부터 한 달에 10만 원씩 용돈을 받습니다. 대신 이 10만 원은 무조건 월말까지 다 써야 하고, 만약 조금이라도 돈이 남는다면 남은 돈은 부모님께 돌려주기로 약속했어요.

어느 날, H는 월말이 다가오는데 아직 5만 원밖에 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대로라면 남은 5만 원을 부모님께 돌려줘야 하는 상황. 그래서 H는 남은 5만 원을 몰래 숨겨 놓고, 부모님께는 용돈을 다 썼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이 ‘왜 거짓말을 했냐’ 라고 묻자, H는 오히려 이렇게 따집니다. ‘내가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은 시점에서 사실상 용돈을 다 쓴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냐’ 라고요.

분명 돈을 안 썼는데 다 쓴 것으로 간주한다(?) 라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주 기가 막히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고등학생 H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이 이와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검찰 특활비는 다름아닌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예산입니다. 집행 과정이 훨씬 더 투명하고 공정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겠죠.

 

꼼수로 조성한 검찰총장의 ‘비밀 금고’

그렇다면 검찰은 연말에 남은 특활비를 어디에 어떻게 숨겨놓은 걸까요? 뉴스타파가 만난 전직 검찰 관계자들은 검찰총장 비서실에서 관리하는 ‘비밀 금고’가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이 비밀 금고에 현금을 넣어두고, 검찰총장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꺼내서 썼다는 말이에요.

검찰총장 비서실은 이 비밀 금고를 현금인출기(ATM)처럼 그때그때 특활비를 빼서 쓰는 용도로 쓰기도 했고, 또 연말에 남은 특활비 일부를 보관해두는 용도로 쓰기도 했습니다. 즉 일종의 ‘현금 저수지’ 역할을 한 것이죠.

또 검찰은 이 ‘현금 저수지’를 조성하기 위해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어요. 원래 특활비를 집행할 때는 집행내용확인서라는 문서에 집행 사유, 지급액 등을 적어야 하는데, 수사에 큰 지장을 미칠 경우에 한해서 이 문서를 생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매달 정기적으로 집행내용확인서를 생략한 채 검찰총장 비서실에 막대한 현금을 전달했어요. 결국 뚜렷한 사유도 없이, 연간 수십억 원의 현금이 검찰총장의 ‘비밀 금고’ 안에 쌓이게 된 셈이죠. 

 

‘윤석열 총장’ 특활비 관리책들, 대통령실로 영전

원래 극단적인 상황(수사 기밀 유출)에서만 생략해야 하는 집행내용확인서를 일상적으로 생략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 악용입니다. 누구보다 법과 규칙을 잘 아는 검찰이 이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니면 검찰총장이 걱정 없이 현금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일부러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일까요? 비밀 금고를 만들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편법이나 법 악용 사례는 없었을까요?

그 답은 아마도 전현직 검찰총장, 그리고 총장의 ‘비밀 금고’ 관리를 맡았던 비서실 직원들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재직 시절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을 지금도 가까이에 두고 있어요.

뉴스타파는 윤석열 총장 시절, 총장 비서실에서 특활비를 관리했던 직원 2명이 지금 대통령비서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강의구 현 대통령비서실 부속실장과 김 모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 바로 그들입니다.

앞서 뉴스타파가 ‘대통령비서실 영전’을 보도했던 복두규 인사비서관, 윤재순 총무비서관을 포함하면, 윤석열 총장 시절 검찰 특활비 집행에 관여했던 인물 4명이 지금도 윤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대통령실은 ‘보안’을 이유로 이들의 담당 업무는 물론 재직 여부조차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전국 55개 검찰청도 ‘비밀 금고’ 가능성 확인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뉴스타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총장이 있는 대검찰청뿐 아니라 전국 검찰청 55곳 역시 특활비 일부를 현금으로 옮겼다가 꺼내 쓴 것이 확인됐어요. 즉 각 지검장이나 지청장들 역시 ‘비밀 금고’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비밀 금고의 가능성이 확인된 검찰청은 각급 검찰청 전체의 약 87%에 달합니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특활비를 숨겨 놓고 마음대로 쓰는 행위가, 전국의 검찰청에서 마치 관행처럼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번 소식을 전해드리면서 저는 다시 한 번 ‘감시’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만약 검찰에 대한 사회의 감시가 없다면 ‘비밀 금고’는 영원히 ‘비밀’로 남았겠죠. 편법과 꼼수를 동원해 국민 세금을 마음대로 쓰는 검찰에 대해, 언론과 시민의 감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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