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오늘은 한글날이 부끄러운 577주년 한글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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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오늘은 한글날이 부끄러운 577주년 한글날입니다
  • 김용택 이사장
  • 승인 2023.10.0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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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이사장
김용택 이사장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 개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국어 ‘빅데이터’를 꾸준히 구축해 나가겠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해 한글날을 맞아 경축식 기념사에서 한 말이다.

인공지능시대에 왜국어가 아닌 외래어로 ‘빅데이터’를 우리 말로 표현하면 좀 좋았을까? 사전을 찾아 보니 ‘빅데이터’란 ‘디지털환경에서 생성되는 모든 데이터’라고 풀이해 전문용어에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국립국어원이 일상에서 흔히 쓰는 외래어나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를 대신할 순화어를 일반인을 대상으로 공모한 결과 '빅데이터'(big data)의 순화어는 '거대자료'를 선정했다. 하긴 알파고 시대 전문용어를 일일이 왜래어로 공모해 바꿔쓰자는 주장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은 문화지체현상을 불러올지도 모르겠지만 한 총리의 경축사에 "변화하는 언어환경에 맞춰 우리의 말과 글을 더욱 아름답게 가꿔 나가겠다"면서 한 말이 ‘빅데이터’라니 앞 뒤가 맞지 않아 하는 말이다.

한덕수 총리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도어스테핑’, '거버먼트 어토니', '메가포트', ‘휴먼 캐피털’, '패밀리 비즈니스‘, '글로벌 스탠더드', '커뮤니케이션', ’‘피플스 하우스’... 윤석열 대통령이 즐겨 쓰는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초청해 가진 오찬 회동에서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National Memorial Park)’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버먼트 어토니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고도 했다.

 

<한글날이 부끄러운 대한민국>

길을 가다 도시의 상가건물을 쳐다보면 ‘여기가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가 아니라 미국의 어느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착각이 들 정도다. 아파트 이름은 온통 영어 투성이다. 여기가 대한민국의 어느 도시가 아니라 미국의 어느 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다. 아파트 이름은 온통 영어로 노인정은 ’시니어 클럽‘이 되고 공중화장실조차 영어로 ‘Toilet’라고 써놓았다. 관리사무소는 매니지먼트 오피스(Management Office), 주민 공용공간에는 커뮤니티센터(Community Center)라고 적혀있어 영어를 모르는 사람은 아파트 한복판에서 미아가 될 지경이다.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은 ‘스터디 카페’로 프랜차이즈 카페인 랭스터디카페, 하우스터디 등도 공부가 아닌 ‘스터디’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주차장의 입구는 ‘인(in)’ 출구는 ‘아웃’(out)으로만 표기하고 있다. 카페의 계산대는 오더(Order)로 버스터미널의 매표소는 티켓(ticket)으로만 표기되어 있다. 영어를 모르면 식당찾기조차 어려운... 우리말이 이제는 아예 누더기가 됐다.

몇 년 전 경기 이천시의 한 아파트 단지의 이름은 ‘이천증포3지구대원칸타빌2차더테라스’라고 해 무려 19자다. 인천광역시에는 ‘영종하늘도시유승한내들스카이스테이’로 17자였고, 경기 평택시 ‘평택고덕국제신도시고덕파라곤2차’는 16자), 서울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아파트는 서울 서초구 ‘한신양재신동아파밀리에더퍼스트’로 15자였다.

<한글파괴에 앞장선 언론과 정부>

방통위 방송심의소위원회는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 MBC TV '놀면 뭐하니?', SBS TV '박장데소', 채널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시즌2', JTBC '장르만 코미디', tvN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 등 7개 프로그램에 대해 모두 '법정제재(주의)'를 의결하고 전체회의에 상정하기로 결정했다.

이들이 쓴 표현을 보면 '가리지널', 'Aㅏ'(옥탑방의 문제아들), '노우 The 뼈'(놀면 뭐하니), 'ma싯겠어'(박장데소), '운빨러', 'GA-5'(도시어부), '딥빡'(장르만 코미디), 'sh읏 알아'(도레미 마켓) 등 불필요하게 영어를 섞어쓰거나 뜻도 모르는 신조어를 남발하고 있었다.(시사주간)

교육부가 시행 중인 제도와 사업들 중 영어와 정체불명의 합성어를 조합해 일반인들이 뜻을 알 수 없는 용어들 투성이다.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 K-에듀테크(교육+기술 합성어), GKS(정부 초총 장학생), Wee프로젝트(위기학생 상담지원 사업), 매치業(산업-교육간 직무교육 프로그램), 블렌디드 러닝(온오프라인 혼합교육),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 활용 역량 강화 교육), 스마트 그린 스쿨(미래 첨단 학교)... 한글을 다듬고 가꿔 지키고 보급해야 할 교육부조차 이 지경이다.

한글학회 한글사랑지원단이 전국 16개 시·도와 17개 정부부처 및 산하공공기관들이 운영 중인 누리집(인터넷 홈페이지)의 우리말 사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한민국 지자체가 영어범벅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했다. 상징얼굴(상징말)을 가리키는 말로 ‘MI’ ‘CI’ ‘BI’ ‘심벌/심볼/심벌마크/심볼마크’ ‘캐릭터/마스코트/캐리커처’ 등 아무렇게나 뒤섞어 쓰고 있다”면서 “교육과학기술부는 ‘ㄱ’ 셋을 붙인 상징을 만들었지만 이를 가리킬 때에는 ‘MI’와 ‘Symbol Mark’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고 했다. 이러다 ‘한글날’까지 영어로 쓰겠다는 사람까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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