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대백제전, 유왕산 추모제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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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대백제전, 유왕산 추모제 봉행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3.10.07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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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은 2023대백제전을 맞아 유왕산추모제 선양위원회 주관으로 6일 오전 11시, 부여 양화면 유왕산에서 제27회 유왕산 추모제를 봉행했다.

유왕산 추모제는 백제 31대 의자왕, 태자 효를 비롯한 왕자 3명, 대신 88명과 백성 12,807명이 포로가 되어 망국의 비통을 안고 당나라로 끌려간 백제왕과 유민들의 영혼을 기리는 제례 의식이다.

양화면 금강변 기슭에 자리한 유왕산은 660년 백제가 멸망하고 의자왕과 태자 효를 비롯한 왕자와 대신 그리고 백성들이 백제를 떠나기 전 잠시 머물렀던 장소이다.

당시 소정방은 이곳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석별의 정을 나눌 수 있도록 의자왕 일행이 잠시 머물렀다 8월 17일 이곳을 떠나자 백제왕이 머물렀다는 의미로 후세 사람들은 ‘유왕산(留王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송찬휘 선양위원의 집례로 초헌관에 김경수 양화면장, 아헌관 박남순 양화면 노인회장, 종헌관 박춘규 양화면주민자치회장이 맡았다.

이날 제향순서는 ▲헌관입장 ▲분향례 ▲강신례 ▲참신례 ▲초헌례 ▲독축 ▲아헌례 ▲종헌례 ▲내빈제례 ▲사신례 ▲망료례 ▲음복례 순으로 진행했다.

해마다 음력 8월 17일이 되면 이곳 유왕산(옛지명 남당산)에서 부녀자들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눠 먹고 정담을 나누며 이별의 한을 노래로 읊조리던 풍습이 오랫동안 전해졌던 장소로 백제 말기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유왕산추모제 역사와 유래 그리고 희망 (글 : 선양위원 송찬휘)]

서기 660년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하고, 그해 음력 8월 17일 당나라에 강제로 끌려가면서 금강을 따라 내려갈 때 암수리 강가 일대와 유왕산 마루턱에 올라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백성들 12,800명이 끌려가는 모습을 한맺힌 이별과 단장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그날이 되면 매년 1백리 이내의 가족, 친지, 친구, 시집간 딸 등 부녀자들이 떡과 밥, 음식을 준비해와 시집살이 때문에 만나지 못했던 여인들의 이별에 아픔이 만남의 장이 되어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하루 중 반나절 걸어 와 만나고 또 반나절 걸어서 돌아가야 하므로 반보기라 했습니다.

옛일을 회상하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산에 올라가 제(祭)를 올리고 “이별 별자네 서러워마소 만날 봉자 또 다시 있네. 명년 8월 17일에 악수논정(握手論情) 다시하세”라는 노래를 부르며 반나절 놀다 보니 놀이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렇게 많은 부녀자들이 모이다 보니, 많은 상인들이 모여 난장이 펼쳐지고, 만남의 장, 애환의 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1947년까지 긴 세월동안 이어지다가 1948년에 좌익의 준동을 막기 위해 금지되고, 한국전쟁 이후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그 후 50년이 지나 1997년 김정은 위원장이 향토문화를 발굴하며, 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백제 멸망의 역사 배경과 반보기의 세시풍속을 바탕으로 하여 향토축제인 유왕산 추모제로 부활하게 된 것입니다.

8월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 동안 진행되는데 금강에 10여 척의 배를 띄워 포로가 된 의자왕과 태자 대신 백성들이 탄 대규모 선단을 재현하여 유왕산을 지날 때면 암수리 강가에 양화 주민들과 부녀자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눈물을 흘리며 손수건을 흔들었고, 또 상여를 메고 이산의 아품을, 백제의 산유화가 노래 부르며 통곡으로 재현했습니다.

그리고 유교식 제사와 원혼을 달래는 망자의 천도굿도 함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행사의 주제가 “그리움의 꽃, 유왕산놀이”였습니다.

이뿐만 아니었습니다. 풍물놀이와 톱스타 연예인, 가수 등을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고 성대한 축제의 한 마당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정은 위원장께서 밤낮으로 발로 뛰며 발굴하고 섭외하여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손발이 되어준 그 시대의 양화 면민과 청년, 부녀자 등 각 사회 단체회원들과 단체장님들 너무나 고생하고 수고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계셨기에 지금에 유왕산추모제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유왕산추모제는 단순히 제만 지내는 제례행사가 아니라 이산의 아품에서 출발하여 반보기의 정통성을 바탕으로, 만남의 즐거움으로, 승화된 지역축제로, 이어져 왔던 것입니다.

지금은 백제문화제로 통합되어 부어군의 지원을 받아 대략 10월 5, 6일경에 제례의식만 행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크나큰 행적과 업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도 규모는 축소됐지만 외부 인사를 초대하고 면민이 하나로 되는 우리 지역의 민족문화 제례행사입니다.

해마다 정성을 다해 준비하고 조상의 얼을 이어받아 뜻깊게 본행사를 치루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큰 다양하고 풍성한 민족문화행사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다음은 백제유민정한불망비 비문이다.

 

백제유민정한불망비(百濟流民情恨不忘碑)

임금님이 머물렀다 떠난 유왕산

찢어지는 감슴 억새풀로 동여매며

떠나가는 배를 향해

마지막 절을 올렸던 망배산!

 

그들이 두고 간 정은

유왕산 자락에 낙엽되어 떨어지고

핏빛 한은 그렇게 세월속으로

묻혀져 갔습니다.

 

이제!

남편이 죽으면

눈들어 볼 수 있는 앞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버릴 곳 없어 가슴에 묻고 산다는

우리 어머님들이

 

백제 의자왕 이십년 여름

억겁의 악연으로 맺어진

당나라 장수 소정방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남편과 자식조차

만리타국 낯선 땅으로 끌려간 이후

 

팔월 열이렛날

금강변 작은 산위에서 마지막 보았던

그 서러운 눈빛 지우지 못해

눈물젖은 저고리 앞섶 쥐어 뜯으며

이 산에 오르길 수백번 ....

 

그리고 천삼백여년 세월!

그리움과 슬픔에 젖어

울음 울어 더 서러워 지기 보다는

차라리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

잊으려 하셨던

 

그 처절한 몸부림을 잊을 수 없어

가슴을 찢어 글을 새기듯

이 돌에 차마 거두어 가시지 못한

정과 한을 새겨 기억하고자 합니다.

 

이제 그 아픈 천삼벽여년

세월이 흐른 다음에야

저승길 가시지 못해 유랑하시던

넋을 달래어 드림을 용서 비오며

삼가 명복을 비옵니다.

 

서기 1998년 10월 7일

유왕산추모제 추진위원장 김정은 글

가원 신준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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