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간소한 추석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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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소한 추석 명절
  • 김철홍 문화유산국민신탁 충청지방사무소 명예관장
  • 승인 2023.09.27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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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자유기고가
김철홍 자유기고가

얼마 전 스마트폰에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가 와서 현관문을 열어 보니 퇴직동인회에서 보내온 10kg햅쌀이 포장된 박스였다. 반가웠던 것은 예전부터 추석에는 햅쌀로 차례를 지냈고 우리네 정서상 집에 쌀독이 차 있으면 든든하다고 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음력 8월 15일을 추석·한가위·중추절(仲秋節)·가배일(嘉俳日)·팔월 대보름 등 다양하게 부르며, 농경사회였던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연중 최대 명절이다. 전 국민의 75%가 고향을 방문하여 전국의 고속도로가 정체되고 열차표가 매진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다. 중국은 대개 중추절(中秋節), 일본은 추석과 비숫한 쓰키미(月見)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큰 명절로 여기는 나라는 없다.

추석은 가을을 축하한다는 원래 의미에 더해 수확, 신라의 ‘삼국통일 승전기념일’설 등이 있으나 흔히 추석을 추수와 관련짓지만, 옛날의 쌀농사 추수는 양력 10월 중순 전후라 거리가 있다고 한다. 아무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처럼 먹을 것이 풍요로운 시기이다.

성묘를 하고 차례를 지내는 것은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수로왕이 돌아가시자 대궐 동북쪽 평지에 빈궁(殯宮)을 세우니 높이가 한 길, 둘레가 300보로 거기에 장사 지네고 ‘수릉왕묘’라고 했다. 그 아들 거등왕부터 9대손 구충왕까지 그 사당에 배향(配享)하고, 매년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에 푸짐하고 깨끗한 재물을 차려 제사를 지내어 대대로 끊이지 않았다.”고 되어 있고 김수로왕 제사는 신라로 전해져 추석의 성묘와 차례는 김해 김씨들이 창안한 셈이다.

그러나 명절에 지내는 차례를 포함한 제사에 대한 종교별 입장은 제각각으로 가족 간의 갈등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교의 핵심은 '효' 사상으로 효의 근본정신은 가장 귀한 생명을 조건 없이 주고 극진한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준 부모와 선조에 감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는 부모 생시뿐 아니라 사후에도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를 통해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계실 때 섬기듯이 함(중용 19장)”이라는 정신으로 이어진다.

천주교(가톨릭교)의 경우, 전파 초기에 신자들에 대한 박해와 더불어 조상제사는 하느님 숭배에 반대되는 미신이라는 교황청의 지침에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승인한 「중국 예식에 관한 훈령」이후 여러 번의 우리 세시풍습 인정 등의 지침 승인을 거치고 2012년 주교회의는 조상에 대한 효성과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차원에서 제례를 지낼 때는 유교식 조상 제사를 답습하는 대신 천주교회가 재해석한 「한국 천주교 가정 제례 예식」을 승인한 제례 내용은 시작예식, 말씀예절, 추모얘절, 마침예식으로 구성하고 추모예절에서는 분향과 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바치는 한국교회의 전통적인 위령기도(연도)가 주요 예식이다. 상차림은 형식을 갖추기보다 평소에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소박하게 차리되 음식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제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100년이 훌쩍 넘은 오늘날까지도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차례법과 제사를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차례법과 제사를 둘러싼 문화적 혹은 종교적 충돌은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면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 날 수밖에 없다.

제사 문제를 두고 가장 보수적인 개신교도 절과 관련해선 고인의 사진에 절을 하는 건 개신교 내부에서도 우상숭배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많다며, 개신교 내부에선 추도식 등과 관련해 전통 문화와 종교 문화의 절충 등 변화의 움직임도 일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있다.

가족 간 화합의 장이어야 할 추석 명절의 갈등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가정폭력 등의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배경으로는 부부 갈등이 가장 많이 지목된다.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지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명절에는 유독 여성만이 음식을 만드는 등 전통적 성역할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히고 고부갈등이나 부부를 중심으로 시댁·처가 방문을 두고 벌어진 다툼이 폭력으로 이어지고 장시간 귀향 과정, 가사노동 등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이른바 명절 증후군으로 나타나 연휴 이후 상당 기간 부부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현실이다.

이런 세태를 보다못해 유림들까지 나서 차례상 간소화를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유교 제례문화 지침서인 '주자가례'에도 없는 이른바 '상다리 휘어지는 차례상'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는 차례와 제사를 구분하지 않고 차례를 제사상처럼 차렸고 음식을 높이 쌓아 올리고 크게 지내는 걸 가문의 영광으로 느꼈던 문화가 있었고 치솟는 물가에 경제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일반 가정의 차례 음식이 예서(禮書)와 종가에 비해 평균 5~6배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교 제례문화의 지침서인 '주자가례'에 따르면 추석 차례에는 기제사와는 달리 밥과 국을 비롯한 제물을 차리지 않고 계절 과일을 담은 쟁반과 술, 차를 올린다. 평균 25~30가지의 음식이 올라가는 현재의 일반 가정 차례상과 확실히 다르다. 전통적인 예법을 지키고 있는 대표적인 종갓집 추석 차례상에는 제철 과일, 송편, 차, 대구포나 명태포, 술만 올릴 뿐 전도 굽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차례상 차리기'메뉴얼인 어동육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조율시이, 홍동백서 등이 전통적 유교 예법과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추석 명절 차례상 표준화 방안'을 마련했는데, 추석 차례상의 기본은 송편, 나물, 구이(적), 김치, 과일(4가지)과 술을 포함해 9가지이다. 여기에 조금 더 올린다면 육류, 생선, 떡을 놓을 수 있다. 이것 역시 가족들이 서로 합의해 결정하면 된다.

“명절에 선조들께 정성스럽게 올리는 상차림을 ‘차례(茶禮)’라고 하는데, 한자뜻 그대로 ‘차’를 올리는 의례이기 때문입니다. 예법 지침서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차한잔, 술한잔, 과일 한 쟁반 세 가지면 차례상에 오를 음식으로 충분하다고 쓰여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이제 차례상과 제사상은 조금 더 간소하고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차례상 우리차 올리기‘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러한 차례상 간소화는 시대적 변화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제례 문화의 전통을 복원하는 것이며, 차례상 음식에서 거품을 걷어내고 원래 모습을 되찾아 명절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상당 부분 해소되는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하는 것은 가족의 소중함과 서로 떨어져 지냈던 가족이 모여 마음을 추스르는 계기와 공간에 대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고생을 무릅쓰고 민족 대이동 프로젝트를 매년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내대학의 도쿠나가 일본인 교수가 “효사상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전통 가족제도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고 반드시 지키고 보존하고 확산시켜야 할 보물”이라고 극찬한 것도 우리의 가정이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안정되고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천주교의 우리나라 선교 초기 박해로 많은 순교자 중의 한 분인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성인의 순교177주년이 되는 역사적인 날인 지난 16일 김홍신 소설가께서 필자에게 로마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서 영화 “탄생”의 안성기 배우, 유시윤 배우 등 제작진과 함께 천주교대전교구장을 지낸 유흥식 추기경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성상 축성을 기념하는 웅혼한 특별미사와 성상 제막식 참석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 소식을 전하면서 교황께서 “한국인들은 모두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입니다”라는 말씀을 유흥식 추기경께 하셨다고 전해 들은 얘기와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영광이라는 생각과 모든 한국인들의 긍지와 자랑임을 천하에 공개할 수 있어 기뻤으며 ”600년간 비워두었던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에 우리나라 최초 사제 김대건 신부님 성상을 축성하는 한민족의 영롱한 디엔에이가 지구를 빛나게 하는 장엄한 행사였습니다”라는 참관기를 사진과 함께 보내주신 그 기쁨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면서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를 기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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