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북·중·러 앞에서 ‘무기력’한 미국…희망회로만 돌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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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북·중·러 앞에서 ‘무기력’한 미국…희망회로만 돌리나?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3.09.1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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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감정 섞인 북러정상회담 대응

최근 미국이 북·중·러에 말로만 대응하며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커진 북·중·러를 향해 자신이 바라는 대로 해달라며 ‘희망회로’만 돌리고 있는 모습이다.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다’는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되길 바라지만 실제 현실은 정반대라는 신조어)

 

1. 미국의 감정 섞인 북러정상회담 대응

북러정상회담을 앞두고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북러를 겨눠 경고성 발언을 쏟아냈다.

그 내용은 대체로 ‘북한이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하지 않기를 경고한다’, ‘북러정상회담을 주시하고 있다’, ‘북한에 추가 제재를 할 수도 있다’, ‘러시아는 대북 제재를 계속 이행할 것이다’ 등이었다.

한발 더 나아가 9월 11일(현지 시각)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러시아가 국제적 왕따인 북한에 군사적 지원을 구걸”했다며 극단적인 비하 표현을 썼다. 같은 날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도 북러 무기 거래설을 사실로 단정 지으며 “악마의 거래”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미 정치권의 거친 입과는 다르게 눈에 띄는 미국의 실제 행동은 없었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뭐라고 하든 말든 실제 행동으로 자신의 갈 길을 가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월 13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진행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미국을 겨눠 “인류의 자주성과 진보, 평화로운 삶을 침탈하려는 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 위협과 도발, 강권과 전횡을 짓부수기 위한 공동전선”을 강조하며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 하고 강력히 지지·연대”할 뜻을 밝혔다.

러시아 역시 대북 제재와는 상관없이 북한과 폭넓은 협력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북러정상회담 이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를 떠나기 전 “지역 현안과 양자관계에 대한 진솔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라면서 ‘북·중·러 국경 지대에서의 삼국 경제 협력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를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미국은 자신을 겨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행보에는 아무런 언급 없이 오로지 무기 거래설만 띄우고 있다. 이에 관해 일부에서는 북러 협력 강화를 막을 길이 없는 미국이 ‘북러 악마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실제로 북러정상회담이 확정되자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9월 13일 “북러가 무기 거래를 진행하기로 한다면 우리는 조처를 하고 적절히 다룰 것”이라면서 “북한은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후과를 치를 것”이라며 경고 수위를 끌어올렸다.

또 “북한의 군사적 역량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어떤 합의도 우리에게 심각한 우려가 될 것”이라면서 “두 나라는 다른 나라와 잘 협력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믿음과 신뢰도 없다”라며 사실 관계가 불분명한 발언과 함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같은 날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다른 나라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양측 거래를) 방해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라면서 “현재 진전되고 있는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당연히 여러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위반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필요에 따라 (북러에) 비용과 결과를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들여다보고 있다”라며 “(북러정상회담은) 두 나라를 세계 다른 국가들로부터 더욱 고립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최대한 방해”, “더욱 고립시키는 효과” 같은 표현 역시 미국의 외교를 주도하는 국무부 장관이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도 미 정부의 기조를 따라 보도에서 “두 왕따”라는 표현을 쓰며 북러를 비난했다.

만약 미국이 북러와의 대결 국면을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면, 여유롭고 절제된 태도로 판을 주도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북러를 향한 미국의 반응에서는 초조함이 느껴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 그래도 미국은 이전부터 북한의 눈치를 살피며 한미연합훈련의 수위를 낮췄고, 우크라이나에 막대한 지원을 퍼부어도 전쟁에서 별 성과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미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탄 열차가 어디로 향하는지 지켜보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국의 관점에선 북러 군사 협력에 의해 판세가 더더욱 밀리게 될 ‘공포’가 현실로 다가왔을 법하다. 북러를 겨눈 미국의 원색적인 비난은 이런 배경 때문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존 볼턴은 9월 13일 CNN 보도를 통해 “두 정상의 만남이 상당히 중요한 사건으로 잠재적 무기 거래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며 “협상의 최대 승자는 김정은(위원장)으로 북한이 (옛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며 경제, 기술적 이익을 추구할 기회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상반된 평가를 내놨다.

앞으로 북·중·러 간 폭넓은 협력과 연대가 이뤄지게 된다면 미국은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다가 북한에 당했다’는 비판을 맞닥뜨리게 될 듯하다.

 

2. 매달리는 미국, 답 없는 중국

북러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미국의 저자세는 중국을 향해서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은 올해 6월 블링컨 장관이 방중해 중국 외교부장의 미국 답방을 “합의”했다며 조만간 미중정상회담도 열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까지 미국에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블링컨 장관 방중 이후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존 캐리 미 대통령 기후특사,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 등 미국의 고위급 인사들이 줄줄이 중국을 찾았다. 이는 중국이 국방수장 간 대화를 복원하자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며, 미국에 고위급 인사를 보내지 않은 것과 비교됐다.

중국의 무대응에 미국은 올해 9월 열린 아세안, 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회의에는 시진핑 주석을 대신해 리창 국무원 총리가 참석했고, 미중정상회담 홍보에 열을 올리던 미국의 체면은 구겨졌다. 

미국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오는 9월 18일 미국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를 계기로 블링컨 장관과 만나 미중 정상회담을 조율할 수 있다는 관측도 꺼냈다. 왕이 외교부장과 조율을 미리 해두면, 오는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펙 회의를 통해 미중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9월 9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한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유엔 총회에는 왕이 외교부장이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로써 미국의 기대가 또 한 번 어그러졌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9월 1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당신을 일부러 안 만나주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지금 꼼짝할 수 없을 만큼 바쁘다”라며 중국 대신 군색한 해명(?)을 하는 상황도 있었다. 중국이 시진핑 주석의 아세안, G20 불참에 관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외교적 결례’였지만,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이를 살필 경황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미국은 중국이 외교부장의 답방을 약속한 만큼, 왕이 외교부장의 ‘올해 내 방미’가 이뤄질 것이라며 희망을 부여잡고 있다.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9월 11일 “바이든 대통령이 말했듯 늦가을(아펙 회의)에 시 주석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라면서 “정상들의 일대일 만남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으며, 우리는 그것을 성사시키려고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왕이 외교부장이 유엔 총회에 불참하면 미중정상회담도 없던 일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국은 미중정상회담을 바라는 미국에 아무런 확답도 주지 않고 있다. 이를 봐도 현재 미중관계 개선에 누가 더 열을 올리고 있는지 드러난다. 최근 미국은 ‘중국은 북러와 다르다’라며 북·중·러 갈라치기 전략을 시도 중인데 이와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왕이 외교부장은 다음 달로 예정된 중러정상회담을 조율하기 위해 오는 9월 18일 러시아를 찾을 예정이다. 북러정상회담과 중러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리면 미국에 맞서는 북·중·러 연대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북·중·러 갈라치기 전략이 불발된 셈이다.

정리하면 현 정세는 국제사회에서 북·중·러를 따돌리겠다고 공언하던 미국이 오히려 북·중·러에 의해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제사회에서 북·중·러의 영향력과 공동 행보가 강해질수록 ‘아무 말 대잔치’로 일관하는 미국의 처지가 두드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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