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관(觀)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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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관(觀)이 문제다
  • 김용택
  • 승인 2023.08.2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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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것은 모두 진실일까?
김용택 이사장
김용택 이사장

관(觀)이란 한자로 '보다'를 뜻한다. 사람은 눈만 뜨면 많은 것을 보게(認知)된다. 내 눈에 비친 것(現像)은 사실일까? 아침에 일어나 TV나 신문을 보면 내가 ‘직접 본 것’이 아니라 공중파나 신문사의 기자가 본 것을 간접적으로 본 것이다.

내가 직접 본 것이나 기자가 본 것은 모두 사실(事實)일까? 사람들은 내가 본 것(主觀)이나 신문사의 기자가 보여준 것은 모두 사실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내가 내 눈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나의 수준으로 경험(認知)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길을 가다 잠깐 스치고 간 사람이 참 멋지고 잘 생겼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외모(現像)이지 그 사람의 전부(本質)는 아니다.

사람들은 신문에 나온 기사나 공중파를 통해 본 것은 모두 진실(眞實)이라고 믿는다. 내가 알게 된 것은 주관이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신문기자나 공중파 기자의 주관으로 보여 준 사실(事實)일 뿐이다.

 

<열반경>의 ‘맹인모상(盲人模象)>

“코끼리는 ‘기둥’이다”. “아니다 코끼리는 ‘벽’이다”. “둘 다 틀렸다, 코끼리는 ‘밧줄’이다”… 코끼리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서로 지신이 본 것이 진실(眞實이라고 우기는 모습이다. 불교의 <열반경>에 나오는 ‘맹인모상(盲人模象:코끼리 만지기) 우화에 나오는 대사다.

나는 혹시 열반경의 맹인 모상처럼 주관이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믿고 사는 것은 아닐까? 나의 수준으로 인지된 사실은 편견(偏見)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문이나 방송기자가 비춰 준 가사도 그렇다. 같은 주제를 두고 신문사에 따라 내용이 다른 경우는 흔히 본다.

대통령에 출마한 후보의 연설을 어떤 신문은 전체 연설 중 가장 매끈하고 매력적인 부분을 비춰주고, 다른 신문은 후보가 실수한 장면을 비춰주었다면 어떤 신문을 읽느냐에 따라 후보자가 좋게 혹은 좋지 않게 인지(認知)하게 될 것이다.

엊그제 나는 <15초에 1300만원… 광고료 누가 부담할까?>라는 기사를 썼다. 광고로 운영하는 언론이 광고를 준 회사가 저지른 비리를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까? 신문이나 방송의 기사는 광고주의 이해관계를 객관적인 진실을 보도하기 보다 거두절미하고 축소하거나 왜곡해 보도하기도 한다. 이런 기사야 이해관계 문제니까 몇 개 신문사를 비교해 보면 어떤 신문이 진실을 보고를 했는가를 금방 알 수 있지만 오피니언의 경우는 다르다.

 

<같은 주제의 다른 기사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같은 주제의 다른 기사. 가치관 문제가 걸려있는 기사는 아예 주제는 같지만 내용은 영 딴판이다. 낯 뜨거운 왜곡을 그것도 자신의 화려한 경력이나 학벌을 걸고 당당하게 쓴 기사를 보면 역겹기까지 하다.

권언유착의 역사... 독자들은 1988년, 민주화의 봄을 맞아 열린 언론청문회에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민족지 논쟁’을 잊지 않고 있다. 두 신문은 일제 치하에서 해마다 새해 첫날이면 1면에 일왕 부부의 사진과 함께 ‘황국을 찬양하는 기사’를 실었다. 마지막 자존심까지 팽개친 채 신문의 상징인 제호를 끌어내리고 그 위에 일장기를 버젓이 올리는 일도 저질렀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온 기사를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신문이나 방송국은 재벌회사가 만든 신문사도 있고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종교단체가 만든 언론사도 있다. 이들이 객관적인 진실만을 보도할까? 낯뜨겁게도 이들은 사시(社是)에 ‘정의옹호(正義擁護)’, ‘불편부당(不偏不黨)’, ‘문화건설(文化建設)’이니 '민족주의'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당당하게 걸어놓고 신문을 발행한다.

언론뿐만 아니다. 우리는 후보의 화려한 경력이나 학벌을 보고 혹은 뛰어난 언변이나 외모를 보고 지지한 대통령후보 혹은 국회의원 후보들이 당선된 후 본색이 드러나 얼마나 실망한 경우가 많은다. ‘상대적으로 나은 후보’, ‘덜 나쁜 놈’을 뽑았다가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쫓아낸 경우(탄핵)며 주권자가 위임한 권력을 폭력으로 행사한 독재자며 권력으로 사욕을 채우다 감옥에 보낸 사람도 있다.

“모든 국가는 그에 걸맞은 정부를 가진다”고 했던가? 새뮤얼 스마일스은 그가 쓴 《자조론》에서 “고상한 국민은 고상하게 다스려질 것이고, 무지하고 부패한 국민은 무지막지하게 다스려질 것”이라고 했다. 독재자는 주권자가 시비를 가리거나 깨어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권자가 무지할수록... 가난할수록 통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독재자 이승만이나 박정희는 그래서 반공이니 국가보안법이 필요했고 학살자 전두환은 3S정책으로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았다. 주권자가 통치의 대상에서 깨어나 주인으로 행사할 수 있는 날은 어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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