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이재명의 눈물과 윤석열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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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안 칼럼] 이재명의 눈물과 윤석열의 눈물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2.01.2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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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살다보면 눈물을 흘릴 때가 많다. 가족의 죽음, 친구나 이웃의 불행을 목도하거나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이 눈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외부의 물리적 작용, 가령 바람이나 먼지, 눈 때문에 저절로 흘리는 눈물이 있는 반면에 감정이 북받쳐 흘리는 눈물이 있다. 보통 눈물을 말 할 때 후자를 일컫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쩔 때 감정이 북받쳐 울게 될까? 바로 현재에 자신의 과거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그래, 나도 전에 그랬어, 하는 감정의 공유가 이루어질 때 마치 자기 일인 듯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금은 볼 수 없는 부모님에 관한 회상이 눈물을 흘리게 한다. 가난한 시절, 당신들은 먹을 것 못 먹고 입을 것 못 입어가면서 오직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다.

필자의 어머니도 종가로 시집 와 오형제를 기르고 교육시키느라 당신의 온 생애를 바쳐 섬인데도 불구하고 오형제를 모두 도시로 보내 대학을 냈다. 어느 날 어머니 손을 보니 마치 나무 등걸처럼 거칠고 손등에는 퍼런 정맥이 산맥처럼 솟아 있었다.

그래도 당신은 자식들의 사각모가 다섯 개나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보람인 듯 웃으셨고, 간혹 집을 들른 관광객들이 다섯 개의 사각모를 보고 놀라면 또 슬픈 장편 소설을 쓰시곤 했다.

그런데 감정이 복받쳐 흘리는 눈물이 다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을 최근 느꼈다. 윤석열의 눈물이 그렇다. 윤석열은 처인 김건희가 경력 위조로 대국민 사과를 하자 그날 밤 유튜브에 출연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대선 후보가 아닌 자연인으로 흘린 눈물은 소중하다. 그러나 윤석열 장모와 처의 사기와 검사들의 뒷배로 3년 옥살이를 하고, 그 억울함을 20여 년간 호소하는 정대택 처지는 모르쇠 하면서 자기 아내의 딱한 모습에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자 묘한 분노가 일었다. 이런 걸 누군가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했다.

평생 검사를 하면서 ‘갑’으로 살았던 윤석열의 눈물과 지금은 치매 증세로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고 필자가 흘리는 눈물이 같을 리 없다. 하물며 자식의 죽음 앞에 흘리는 부모의 눈물은 어쩔 것인가.

시인 김현승은 자식이 죽자 ‘눈물’이라는 시를 썼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 제,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김현승, <눈물>(1957)

이 작품은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잃고 그 슬픔을 신에 의지해 잊어 보려는 아픔에서 썼다고 한다.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변하기 쉬운 웃음이 아니다. 오직 정직하고 진실한 눈물이 있을 뿐이다.’라고 하여 눈물을 신께 바치는 진실이라고 보았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경기도 성남시에 가 연설을 하다가 가족과 어머니를 떠올리며 오열했다. 이재명 후보가 연설 도중 눈물을 참지 못하고 울먹이자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며 “힘내세요!” 하고 외쳤다.

이재명 호보는 "이곳이 이재명과 그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했던 곳"이라며 가난했던 유년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지난 1976년 2월23일 비 오는 새벽에 이곳을 걸어 올라왔는데 길이 진창이라 신발이 자꾸 벗겨지고 걸어 다닐 수가 없는 곳이었다"며 "아버지는 청소 노동자로, 어머니는 공중화장실에서 대변 20원, 소변 10원을 받으며 제 여동생과 함께 화장실을 지켰다"고 말했다.

이어 "정말 열심히 살았다. 어머니께서 화장실에 출근하기 전에 제 손을 잡고 공장에 바래다주셨다"며 "그래도 행복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 후보는 북받쳐오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말을 잠시 멈추고 하늘을 응시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화장실을 지키며 아들이 잘되기만 바랐던 어머니께 거짓말하고 스물다섯 나이에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며 "열심히 일했고 깨끗하게 사려고 노력했고 그래서 이 자리까지 왔지만 상처가 많다"며 끝내 삼켜오던 눈물을 흘렸다.

또 "이곳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여전한 숨결이 남아있다"며 "제가 우리 가족, 형제, 또 나와 함께 공장에서 일한 수많은 사람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 다해 일한 그 많은 사람을 위해서 지금보다 몇 배, 수십배 더 열심히 하겠다"고 흐느꼈다.

이 후보는 '형수 욕설 논란'과 관련해선 "친형의 시정 개입을 막다가 벌어진 일이지만 공직자로서 욕하지 말고 끝까지 참았어야 했다. 제 잘못이다"라면서도 "이제는 어머니도, 형님도 세상을 떠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가족의 아픈 상처를 그만 좀 헤집었으면 좋겠다"고 절절하게 호소했다.

이재명 후보가 무상 교복을 실시한 이유도 학교에 가지 못한 자신의 어린시절이 투영된 것이고, 청년 기본금을 주었던 것도 주경야독을 했던 시절이 투영된 것이며, 사후조리원을 지은 것도 가난한 시절 아이를 낳다가 죽은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투영된 눈물과 그저 억울해서 흘린 눈물은 다르다. 이재명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거짓 눈물이 이 세상을 속인 것이 분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아니,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성남에 오자 지금은 볼 수 없는 어머니, 아 그 간절한 눈빛이 그리워 울었을 것이다.

윤석열은 온갖 못된 짓은 다 해놓고 공정과 상식을 외치며 대선에 출마했다. 본부장 비리는 다 열거하기도 힘들다. 그런 그가 아내의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참으로 ‘잔인한 눈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집단지성이 그에게 진짜 눈물을 흘리게 할 것이다.

윤석열은 시장 바닥에 앉아 좌판을 하는 할머니의 눈물을 모른다. 분단 70년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들의 눈물도 모르고 선제타격 운운한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주도로 일하러 가셨다가 김대중을 찍는다며 배타고 고향으로 온 어머니가 그래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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