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칼럼] 종전을 반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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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칼럼] 종전을 반대하는가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21.11.17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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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번도 없는 인간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br>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 갑자기 이웃집에서 통곡 소리가 들렸다. 아아. 또 온 모양이구나. 무엇이 왔단 말인가. 전사 통지서다. 6·25 전쟁을 겪은 많은 국민의 경험이다. 입대한(끌려간) 이웃 청년이 ‘전사 통지서’란 종이 한 장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용인 시골에 아저씨 한 분은 해병대로 치열했다는 도솔산전투에 참전했다. 그 얼마 후 아저씨는 실명을 한 채 지팡이를 짚고 귀향했다. 휴전(종전이 아니다)했지만, 어느 집이든 상처를 입지 않은 가정이 있으랴. 아니 있다.

전쟁이 치열하던 때 친구 한 명이 미국으로 떠났다. 들리는 소식에 그는 하버드대학에 입학했고 그 후 박사가 되어 귀국했다. 무슨 비상한 재주가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 알아봤자 소용이 없으니까. 그에게 전쟁은 남의 일이었고 휴전이나 종전도 상관이 없었다.

 

■무너지고 망가진 가정

나의 큰형님과 막내 외삼촌은 행방불명 됐다. 양평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사촌 매형은 죄명도 모른 채 총살당했다. 한마을에 남자들 씨가 말랐다는 소문이 났다. 이승만이 남겨놓고 도망친 서울시민은 빨갱이가 됐다. 눈짓 한 번에 즉결처분이다. 산아도 산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은 그런 것이었다. 전쟁에서는 죽음에 이유가 없다. 방아쇠 당기면 죽어야 한다. 서울 시내 방공호에는 썩어가는 시체가 쌓여있었다. 아무 죄도 없이 전쟁이란 이름으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을 벌였다. 내 나이가 50이 되었을 때 전쟁 당시 미국으로 떠나 하버드를 졸업하고 대학교수가 된 친구가 귀국했다. 환영인지 뭔지 식사 자리에서 난 그 친구의 얼굴을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인가. 물어보지 못했다.

 

■전쟁이 무엇인지 알기나 하느냐.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 법화산은 우리 집안의 선산이다. 1·4후퇴 당시 산 위에는 중공군, 산 아래에는 국군과 유엔군이 서로 교전을 벌였고 그사이에 마을이 있었다. 교전이 끝나고 중공군은 후퇴했다. 마을 사람들이 시체를 치우기 위해 동원됐다. 산 위에 무수한 중공군 전사자들. 그들도 사랑받는 자식이었을 텐데. 웅덩이를 파고 그냥 묻어버린다. 영원한 행방불명자가. 지금도 법화산에 묻혀서 한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 시신은 부모를 그리워할 것이다.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 집안에 행방이 묘연한 일가친척만 50여 명이 넘는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도대체 6·25전쟁으로 박살이 난 남북의 가정은 얼마나 된단 말인가. 우리나라는 왜 분단이 되었는가. 미국이 분단을 찬성했다고 한다. 원통하기 짝이 없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고 지나간 일은 아무리 탄식을 해도 소용이 없지만, 한은 맺힌다.

아직도 종전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다. 다시 전쟁을 원하는가. 죄 없는 우리 자식들이 서로 총을 겨누고 쏘아 죽여야 속이 시원한가. 개 같은 정상배들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어깨 총’도 할 줄 모르고 장탄도 할 줄 모르는 놈들이 좋은 집안 덕에 군대도 안 갔다. 6·25 때 총 맞아 죽으면서 ‘빽’이라고 비명을 질렀단다. 빽이 없어서 죽는다는 한 서린 비명이다. 군대도 안 간 자들이 지도자가 됐다.

종전을 반대한다는 윤석열에게 묻는다. 전쟁이 나면 무엇을 할 것이냐. 법전이나 뒤지면서 기피자들 잡아들일 것이냐. 종전을 반대한다는 정상배들의 병력증명을 보고 싶다. 제대로 병역을 마친 인간들이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1군사령부 사병계로 근무할 때 전 후방 교대가 있었다. 아무도 일선에 가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 노무현 병장이 자원했다. 선임하사가 미친X라고 말렸지만, 그는 한사코 소신을 접지 않았다. 모두 안 가면 누가 가느냐는 것이다. 노무현 병장과 함께 근무한 친구(KBS 아나운서)로부터 그 얘기를 들으며 또 한 번 가슴을 쳤다. 지도자의 모습이다. 3당 합당 때 ‘이의 있습니다’ 외치던 노무현 의원의 모습이 그립다.

 

■나를 던지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다.

이낙연을 지지하던 내가 지금 이재명을 지지한다. 글도 쓴다. 내게 ‘배신자’, ‘변절자’란 비난이 쏟아진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선생님, 제가 요령껏 적당히만 살았다면 전 벌써 죽었을 것입니다. 전 죽는다는 각오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죽는 한이 있어도 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전 소신껏 살겠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내게 한 말이다. 나는 그를 믿는다. 왜냐면 그가 한 행동이 증명하고 있으니까. 그가 당한 많은 모략을 알고 있다.

윤석열을 비판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한마디만 한다. 정직해야 한다. 자신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해라. 모르는 것 같아도 국민은 다 안다.

내 눈은 거짓말을 알아내는 비상한 재능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운 것이다. 세상에 완전무결이란 없다. 인간도 누구나 결함을 가지고 있다. 결함이 덜 한 인간을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검찰총장을 하면서도 자신의 주위를 엉망으로 관리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할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소신이다. 난 그렇게 살았고 죽을 때도 그렇게 죽을 것이다.

죽을 때 후회 남기지 않고 눈을 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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