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행사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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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행사 가져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4.05.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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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군수 박정현)은 9일 오전, 내산면 지티 의병 기념공원(지티리 132)에서 “제1회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행사”를 가졌다.

기념행사는 1906년 5월 9일, 지티리에서 홍주 의병이 재봉기했던 날에 “홍주의병 지티봉기 기념행사”을 실시함으로써 118년 전, 국난 극복을 위해 떨쳐나섰던 이곳 출신 조상들의 공헌과 숭고한 뜻을 기렸다.

이날 행사는 식 행사로 부여군충남국악단 공연, 내빈소개, 국민의례, 헌화, 경과보고, 기념사, 축사, 의병의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박정현 부여군수
박정현 부여군수

박정현 군수는 축사를 통해 “단재 신채호 선생님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라고 말씀하셨다.”는 어록을 상기시키며 “이렇게 애써서 선조들이 다시 찾은 나라가 오늘날 대한민국입니다. 우리는 매국 세력에 대한 단죄가 없었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군수는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나치에 부역자 6천763명을 사형시키고 2만6천 529명을 징역에 처한 후 ‘프랑스가 다시 외세의 지배를 받더라도 또 다시 민족반역자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는 드골의 어록을 소개했다.

박정현 부여군수

이어 박 군수는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후손들이 안고 가야 할 아주 큰 암 같은 그런 과제가 우리 앞에 아직도 놓여 있습니다.”라며 “제가 군수가 되어서 한 일이 있습니다. 독립 유공자 애국지사를 모시는 충의사를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부여 출신 독립운동가 애국지사 425명을 발굴했습니다. 그중에 국가보훈부에서 35분의 애국지사를 추서 받았고 34개 마을의 독립운동가 표지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지티 의병 봉기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갖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가 단죄하지 못했던 매국 세력 때문에 묻혀있던 애국자 또는 애국 세력의 진정한 가치를 바로 세워 독립된 대한민국을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함”이며 “진정한 애국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부여 지티 의병봉기 장소에서 새롭게 다짐을 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역설했다.

지티 의병 공헌위원회 홍승우 위원장

지티 의병 공헌위원회 홍승우 위원장은 기념사를 통해 “118년 전 이곳 지티에서 많은 군중들이 모여 홍주의병 봉기 결의를 다졌다.”면서 “2024년 5월 9일, 오늘 이곳에서 제1회 홍주의병 지티 봉기 기념행사를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기념공원 조성에 도비 3억 원과 군비 8억 원을 확보하는 데 큰 노력을 해 주신 박정현 군수님과 충남도의회 조길연 의원님, 그리고 부여군의회 의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2021년 11월 홍주의병 지티 봉기 기념비를 세울 수 있게 되었고, 금년에 홍주의병 지티 봉기 기념공원을 조성하여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고 의병들이 순국 정신을 후세에 알리는 데 큰 의미가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고 밝혔다.

이어 “일제의 폭압에 맞서 싸운 많은 의병과 여러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아름다운 세상에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구국의 일념으로 초개와 같이 산화한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좋은 나라, 행복한 부여군이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주의병 지티 재봉기는 합천전투 이후 흩어진 의병들은 1906년 5“월 9일, 지티리에 모여 민중식을 중심으로 다시 봉기하여 홍산군 관아를 점령하고 이후 서천, 비인, 남포, 보령, 오천 경성을 거쳐 5월 19일 홍주에 진입했다.

5월 20일 일본군과 산발적 전투가 있었고 5월 25일, 의병부대를 재 편성하여 일본군에 저항했지만 5월 31일 새벽 3시, 일본군은 홍주성 조양문 폭파를 시작으로 아침 7시, 의병부대의 패배로 전투가 종료되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한 의병 봉기였지만 전국적인 무장투쟁과 국내외 애국 계몽운동 등 다양한 독립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축사(장성용 의장)
축사(장성용 의장)
부여군의회 의원들
부여군의회 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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