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지금] 모스크바에 세워진 카스트로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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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지금] 모스크바에 세워진 카스트로 동상
  • 이인선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12.06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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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함께 2022년 11월 23일(현지 시각) 모스크바 피델 카스트로 광장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피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루스(이하 피델 카스트로)는 체 게바라와 함께 중남미 혁명을 이끈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쿠바 지도자였던 인물이다. 그는 1959년부터 1976년까지 쿠바 총리를, 1976년부터 2008년까지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국가원수)을 역임했고 2016년 11월 25일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을 기리는 동상이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세워졌다는 것은 러시아와 쿠바의 관계를 넘어 러시아와 중남미의 관계에 있어 의미 깊은 일이다.

이번 글에서는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과 관련한 이야기부터 러시아가 중남미 국가들과 어떠한 관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지 살펴본다.

 

푸틴 대통령 “뛰어난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

▲ 푸틴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의장은 2000년 쿠바에서 처음 만났다.

푸틴 대통령은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에서 피델 카스트로 의장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카스트로는 평생을 선, 평화, 정의, 억압받는 민중의 자유, 평범한 이들의 존엄한 삶, 그리고 사회적 평등을 위해 헌신했다”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피델 카스트로 의장은 격동하던 20세기를 이끈 밝고 뛰어난 지도자 중 한 명”이라며 “민족 해방 운동의 시대와 식민지 체제의 붕괴를 선도하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새로운 독립국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한 상징적이고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존경심을 표했다.

푸틴 대통령은 2000년 쿠바를 방문해 피델 카스트로 의장을 처음 만난 후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물려준 러시아와 쿠바 간의 우정은 양국의 공동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 동상은 양국 우정에 바치는 헌사 같은 것”이라며 “피델 카스트로 동지는 세계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국민의 용기 등을 존경해왔다”라고 화답했다.

▲ 푸틴 대통령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함께 2022년 11월 23일 모스크바 피델 카스트로 광장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 푸틴 대통령은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함께 2022년 11월 23일 모스크바 피델 카스트로 광장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두 정상은 이후 크렘린궁에서 회담을 진행하며 미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함께 냈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러시아와 쿠바 양국이 부당한 제재를 받는 것은 세계의 많은 부분을 조종하는 ‘양키 제국(yankee empire)’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항상 금수, 국경봉쇄 등 다양한 제재에 반대해 왔다”라면서 “국제회의 등지에서 서방 국가들의 대(對)러시아 제재에 반대 목소리를 내준 쿠바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라고 공감했다.

두 정상은 회담을 통해 정치, 경제, 무역, 문화, 인도주의 분야들에서 양국 사이의 전략적 협조의 현 실태와 전망을 분석하고 중요한 국제문제들에 대한 의견이 교환했다. 그리고 2030년까지의 사회경제발전을 위한 양국 사이의 공동 계획 실현 등 러·쿠바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문제들을 토의했다.

 

중남미 지도자들 이름이 붙은 광장과 거리가 러시아에 있다?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가 아닌 모든 국가가 평등하게 주인인 다극적 세계질서 형성을 위해 중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특히 미국이 중남미를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여기며 온갖 공작을 펼쳐 친미 정권을 세웠다는 점에서 러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의 관계가 가까워지는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오늘날 러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모스크바에 있는 중남미 국가 지도자들의 이름이 붙은 광장과 거리다.

▲ 살바도르 아옌데 거리라는 것을 알려주는 표지판

먼저 들여다볼 곳은 살바도르 아옌데 거리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1970년 중남미 최초 민주 선거였던 칠레 대통령 선거에서 선출된 첫 사회주의자 대통령이다. 그러나 1973년 9월 11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육군 총사령관이 군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아옌데 대통령은 쿠데타에 대항해 직접 권총을 들고 끝까지 투쟁하다 9월 13일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선물한 AK-47 소총으로 자결했다.

소련 당국은 아옌데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1973년 모스크바 북부 소콜 구역에 있는 거리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그 후 매해 아옌데 대통령의 기일에 이 거리에서 추모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 우고 차베스 거리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 우고 차베스 거리임을 알려주는 표지판

두 번째로 볼 곳은 우고 차베스 거리다.

러시아 정부는 2013년 6월 25일 모스크바 북부 호로쇼프스키 구역에 있는 한 거리에 ‘우고 차베스’의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우고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서 생전에 푸틴 대통령과 각별한 우호 관계를 유지하며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의 협력 관계 발전과 반미연대 형성을 위해 노력해 왔던 인물이다.

차베스 대통령은 중남미 국가인 쿠바·볼리비아와의 사회주의 무역 체계 형성, 이란과의 다수 협정 체결, 북한의 미사일 발사 옹호 등의 행보를 보이며 미국과 정면으로 맞섰다.

차베스 대통령은 2006년 7월 27일 모스크바 전러시아 외국문학도서관에서 열린 중남미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 흉상 제막식에 참석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은 바로 미국 제국”이라면서 “미국은 세계와 인권, 인간미, 문화, 이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생각이 없고, 근시안적이고 우둔한 거인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또한 “미국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가난으로 채우려 하고 있다”라면서 “이는 이라크, 중동, 중남미에서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과 에너지, 정치, 안보, 국방 관련 다수의 협정을 체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차베스 대통령은 2013년 3월 5일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당시 차베스의 사망 소식을 들은 베네수엘라 주민들은 거리로 쏟아져나와 울먹이며 “우리가 차베스다”, “차베스는 살아있다”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2013년 3월 6일 차베스 대통령 애도 전보에서 “차베스 대통령은 미래를 내다본 비범하고 강한 사람이었다”라며 양국 관계에 “견고한 기반”을 마련해 준 그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 피델 카스트로 광장에 세워진 피델 카스트로 동상

마지막으로 볼 곳은 피델 카스트로 광장이다.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사망했을 때 푸틴 대통령은 조전에서 “피델과 동지들이 건설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나라 쿠바는 많은 국가와 국민에게 영감을 주었다”라고 쓰며 “피델은 러시아의 진실한 친구였으며, 모든 분야에서 전략적 이해관계를 공유했다”라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부는 2017년 2월 15일 아옌데 거리와 차베스 거리 사이에 피델 카스트로 의장의 이름을 붙인 광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2017년 8월 13일 피델 카스트로 의장의 생일을 맞아 에밀리오 로사다 가르시아 러시아 주재 쿠바 대사와 알렉세이 샤포시니코프 모스크바 시의회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카스트로 광장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2022년 11월 23일 2,000만 루블(약 4억 7,000만 원)을 들여 약 3미터 높이의 피델 카스트로의 동상을 피델 카스트로 광장에 세웠고 제막식에 푸틴 대통령과 디아스카넬 대통령이 참석했다.

 

러시아, 중남미 국가들과 힘을 합쳐 미국에 맞서다

중남미는 정치·경제는 물론 전략적인 면에서도 미국의 요충지다.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유럽과 아메리카 대륙 간에 상호 불간섭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외교적 고립정책) 선언 이후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세력이 중남미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도록 해왔다. 지리적 근접성, 문화적 유대 및 무역 관계로 인해 중남미에서 미국의 입지는 흡사 철옹성이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남미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21세기 중남미 국가들에 진보 정권이 속속 들어서며 미국의 통제력은 점차 약해졌다.

한편, 러시아는 진보 정권들이 들어서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확대하며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미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2008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는 페루, 브라질, 베네수엘라, 쿠바 등을 찾으며 “소련 시절 강력한 동맹 관계를 맺어온 중남미 국가들과 ‘특별한 관계’를 되살릴 때가 됐다”라고 밝혔다. 특히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대통령을 비롯해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도 만나 눈길을 끌었다.

2009년에는 아르헨티나, 니카라과,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쿠바 정상들이 모두 러시아를 다녀갔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 중남미 국가 간 가스와 석유 등 에너지 자원 협력, 차관 제공은 물론이고 러시아제 무기 수출 계약도 이뤄졌다.

이후 메드베데프로부터 정권을 이어받은 푸틴 대통령이 2014년 7월 중남미 국가를 찾아가면서 러시아와 중남미 간 관계는 더 가까워졌다.

푸틴 대통령은 7월 11일 쿠바를 찾아 카스트로 형제(피델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 카스트로)를 만난 자리에서 “중남미 국가와의 협력은 러시아의 핵심적이고 전도유망한 외교 노선이 될 것”이라며 강조했다.

러시아와 쿠바는 우주 공간 비무장화와 국제 정보보호 분야 정부 간 협력을 약속한 데 이어 쿠바 근해 유전을 공동 개발하고 200메가와트급 발전소를 함께 짓기로 했다. 푸틴은 쿠바 방문에 앞서 쿠바가 소련에 진 빚 352억 달러의 90%를 탕감해 줬다.

또한 러시아 국가원수론 최초로 니카라과를 깜짝 방문해 농업기술과 이곳 주식인 팥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고 7월 12일 아르헨티나를 방문해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합의했다. 당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에게 “미국 등 서방이 크림반도 독립 문제에 위선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며 러시아와 뜻을 같이하고 있다는 의중을 보이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7월 13일 브라질을 찾아가 “강력하고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브라질이 다극화하는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라며 미국 주도의 일방주의적 국제 질서와 강제적 민주주의 수출에 맞서는 데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러시아의 노력으로 소련 시기 중남미 동맹국이 쿠바와 니카라과 정도였던 것에서 발전해 오늘날까지 러시아와 함께 미국에 맞서 싸우려는 중남미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군사·안보 원칙, 경제·문화 유대와 거리를 두며 미국의 정책 결정을 중남미 재식민지화로 이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 여러 중남미 국가와 러시아는 미국을 다른 나라의 주권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최근 들어 중남미에 넘실거리고 있는 ‘분홍색 물결(진보 정부 집권)’도 이와 맞물려 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온두라스, 콜롬비아, 브라질, 수리남 등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며 이 물결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에 자국의 스푸트니크 V 백신을 공급해 도움을 주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백신을 사재기했던 것과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도 중남미 국가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있다. 즉, 다극적 세계질서 구축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러시아와 중남미 국가들이 함께 하면서 중남미 지역에선 내정 간섭과 제재를 일삼는 미국의 독단과 전횡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22년 1월 18일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며 그의 네 번째 연임 성공을 축하했다. 이어 1월 20일에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1월 24일에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통화했다. 2월 3일에는 모스크바에서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직접 만났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때 푸틴 대통령에게 “전 세계가 우리를 외면할 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부채 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만 한다”라면서 “그래서 러시아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1월 23일엔 모스크바를 찾은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과 만나 피델 카스트로 동상 제막식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이처럼 러시아가 중남미 국가가 가까워지는 것은 올해 2월부터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과도 연결되어 있다. 미국이 러시아의 서쪽 국경에 인접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 러시아를 위협하는 것에 대응해 미국의 앞마당이라던 중남미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의미에서 말이다.

특히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1월 13일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 등 나토의 동진으로 러시아 안보가 위협당하면 쿠바나 베네수엘라에 군사 인프라를 배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라디미르 루빈스키 콜롬비아 이세시 대학교 교수도 “푸틴 대통령은 중남미가 미국에 아주 중요한 지역이라고 본다”라면서 “따라서 러시아가 중남미와 가까워지는 것은 오늘날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나는 일과 연관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브라질에서 룰라 대통령이 당선되고 미국과 유럽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 어려워지는 상황들로 미뤄 보았을 때 중남미 국가들과 러시아의 관계는 반미연대와 다극적 세계질서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더 긴밀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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