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출입처 없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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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출입처 없앤 KBS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19.11.1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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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력 약화? 기사는 땀으로 쓴다

【팩트TV-이기명칼럼】‘김형. 부탁 하나 있는데. 오늘 내가 집에 일이 좀 있거든. 기사를 못 쓸 것 같으니 대신 기사 하나 적당히 써 줘.’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기자가 출입처의 직원과 하는 소리다. 기사를 대신 써 달라는 것이다. 어떤 기사가 나올 것인지 물으나 마나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있었다.

출입처의 직원이 대신 써 주는 기사를 읽어야 하는 독자나 부탁한 기자나 출입처 직원이나 불쌍하기는 매한가지다.

한 꼭지의 기사를 쓰기 위해서 땀을 흘리는 기자의 수고는 말할 것도 없다. 아니 기사를 쓰기 위해서 기자는 생명까지도 던진다.

포탄이 작렬하는 전쟁터에서 종군기자는 언제 생명을 잃을지 모른다. 아니 자신의 생명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장으로 달려가는 것이 기자다. 그래서 존경을 받는다. 집회 현장에서 쫓겨나는 조·중·동 기레기와는 다르다.

(이미지 출처 - KBS 홈페이지 영상 캡처)

 

■ 체르노빌 원전 보도 기자

이고르 코스틴 기자.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나고 그곳은 죽음의 땅이었고 누구도 접근할 생각을 못 했다. 그때 취재를 나선 기자가 바로 이고르 코스틴이었다. 연인이 있었다.

‘당신 가면 죽어요. 난 어떻게 살아요.’

‘내가 보도를 안 하고 산다면 난 평생을 후회로 고통을 받을 거요. 그런 나를 보면서 당신은 살겠소.’

체르노빌 현장 최초 보도였고 그는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했다. 연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보낼 수 있었냐고.

‘기자의 양심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 사는 그를 보며 사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이었을 거에요.’

연인을 두고 죽음의 체르노빌로 떠난 기자와 죽음의 땅으로 연인을 보낸 두 사람. 지금도 기자정신을 말하면 떠오르는 기억이다. 요즘 기자정신을 말하면 무슨 대답을 듣는가. 기자는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정답인가.

지금 체르노빌 사건이 터졌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그보다도 내년 일본 올림픽 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알고 있는 기자들이 얼마나 몰릴까. 후쿠시마를 취재하는 기자는 얼마나 될까. 해 보는 생각이다.

‘정읍환표 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자유당 시절 투표함을 통째 바꿔치기한 사건이다. 당시 투표함 운반을 감시하던 박재표 순경이 이를 고발했다. 말 못 할 고통을 당했다. 그에게 직장을 마련해 준 것은 동아일보였다. 동아일보는 그런 언론사였다.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기자들이 있었다. 해직되어 밥을 굶는 기자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존경한다. 지금은 어떤가. 존경을 받고 있는가. 기레기(기자쓰레기)란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쓴웃음을 짓고 마는 오늘의 기자상은 어떤가. 자신이 쓴 기사를 다시 읽으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가.

문득 국회 대정부 질문이 생각난다. 한국당의 박대출 의원은 기자 출신이란다.

박대출 의원 “최근 MBC나 KBS, 불공정한 보도, 기억나거나 보신 적 있습니까?”

이낙연 총리 “음... 잘 안 봅니다.” (장내 일부 웃음)

박대출 의원 “안 보십니까? 뉴스 좀 보십시오. 그래야 세상 돌아가고...(중략).”

이낙연 총리 “꽤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 보고 있습니다.” (또 웃음)

어떤가. 이낙연 총리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다. 기사를 잘 안 본다는 총리. 오래전부터 좀 더 공정한 채널을 보고 있다는 답변을 들으며 기자들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아니 자칭 일등신문의 편집국장 출신 의원의 기분은 어떤가.

영국의 지식인들은 아침에 ‘더 타임스’를 읽지 않으면 그날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축에 못 낀다는 자책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편파·왜곡·불공정하면 떠오르는 신문이 있다. 기레기도 한국에만 있는 말이다. 조·중·동은 또 뭔가. 기자의 자부심은 이제 개도 안 물어간다. 대학생 시절 동아일보, 경향신문을 열심히 읽던 기억이 새롭다. 언론민주화투쟁을 하던 친구들은 죽고 또 늙었다.

 

■ 출입처는 왜 필요한가

단골식당에선 돈 없어도 외상으로 먹기도 했다. 단골 술집도 있었다. 출입처는 무엇인가. 기자가 매일 들리는 단골집이다. 출입처에는 책상도 있다. 출입처 간사가 있다.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많이 있는 모양이다. 출입처가 아닌 거래처인가.

인간이라는 게 오래 지내다 보면 정도 들게 마련이고 정이 들면 서로 할 말 못 할 말 다 하고 서로 편의도 봐준다. 기자도 인간이다. 보도되면 거북한 기사는 빼 달라 사정도 하고 좋은 기삿거리는 널리 알려 달라고도 한다. 그러나 기사는 달라야 한다. 정을 따질 거 없다. 출입처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만하자.

 

■ 출입처 없애는 KBS

출입처 폐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KBS 엄경철 신임 보도국장이 ‘출입처 폐지’를 선언했다. 삼복더위에 시원한 냉수를 마신 기분이다. 다른 언론은 아직 아무 소식이 없다. 따르는 언론사가 많기를 바란다.

조국 교수의 가정은 파탄 났다. 잘 벼른 도끼로 장작을 잘게 쪼개 불쏘시개를 만들었다. 그의 가정은 황무지가 됐다. 그는 자신이 원한대로 검찰개혁에 불쏘시개가 됐다고 생각한다. 기레기들의 기사를 보면서 인간과 기레기를 구별하는 것을 배웠다.

상식을 뛰어 넘는 보도. ‘알려졌다’ ‘전해졌다’ ‘생각된다’ 따위의 기사, 바로 검찰이 뿌려주는 모이였다고 믿는다. 검찰이라는 출입처가 아닌 거래처가 없었다면 모이를 받아먹지 못한 병아리들은 굶어 죽었을 것이다.

검찰이 나경원 자녀 관련 비리를 수사한다고 언론이 전한다. 조국처럼 불쏘시개가 될 것인가. 황무지가 될 것인가. 70여 차례 압수수색의 기록은 깨질 것인가. 나경원 아들·딸은 얼마나 소환조사를 받을 것인가. 국민들은 검찰을 지켜볼 것이다. 얼마나 모이를 뿌려 주고, 받아 먹을 것인가.

출입처를 없앤다니까 반발이 심한 모양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편하게 살자는 거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사를 쓰는데 출입처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다.

몸이 편하면 정신이 썩는다. 늘 쓰레기 냄새를 맡고 살다 보면 코가 마비되어 썩은 냄새를 모르고 산다. 이제 발로 뛰며 땀 흘려 쓰는 기사의 향내를 맡아보라. 절로 신바람이 날 것이다. 힘내라 KBS 기자들. 정연주 때처럼 존경받고 살자.

이번 조국 문제로 검찰의 신뢰는 어떻게 되었는가. 언론의 신뢰는 어찌 되었는가. 가장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할 검찰과 언론의 신뢰는 자신들의 소망과는 너무도 다르게 땅으로 떨어졌다. 뼈를 깎는 노력을 해도 힘들 것이다. 자부심을 상실한 검찰과 언론의 모습은 슬프다.

이제 출입처를 폐지한 KBS 기자들이 어깨를 펴고 취재 현장에서 땀 흘리는 당당한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빨리 보고 싶다. 조·중·동을 비롯해 모든 기레기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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