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③] 박성균 하사만 몰랐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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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③] 박성균 하사만 몰랐던 ‘골든타임’
  • 천안함의 진실 - 신상철
  • 승인 2017.05.2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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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파 후 무려 ‘16시간22분’ 이나 떠 있었던 함수

천안함 인양.수색 및 어뢰수거의 책임을 맡았던 당시 UDT 대대장 권영대 중령에 대한 천안함 제5차 공판 결과 관련 글을 시작하면서 다섯 편 정도 쓰면 되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그 이상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중요한 내용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권 중령은 그의 저서 ‘폭침, 어뢰를 찾다’ 9쪽에서 “현장 출동 시 처음에는 생존자를 최대한 살리는 일이 급선무다. 모든 것을 떠나서 살아있는 생명을 골든타임(Golden Time)내에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골든타임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이냐?” 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생존자가 살아있는 시간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이라고 답하였습니다.

◈ 반파 후 무려 ‘16시간22분’ 이나 떠 있었던 함수

천안함 침몰사고를 상징하는 영상 가운데 가장 상징적인 것을 들라면 바로 위의 사진을 꼽을 수 있겠습니다. 2010년 3월26일 밤 천안함 침몰 소식을 속보로만 들어야 했던 국민들은 그 다음 날부터 TV나 인터넷에서 위의 사진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진은 천안함 침몰을 보도할 때 가장 대표적인 영상으로 인용됩니다.

저는 이 사진을 누가 언제 찍었으며 저 장면이 어떤 상황인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때부터 관련기관에 전화를 걸어 추적한 결과, 백령도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최◯◯’ 씨가 촬영하여 옹진군청 홍보실에 제공한 사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분과 직접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3월27일 오전 7시30분경 장촌포구 언덕에서 촬영하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었고 여러 차례 설득 끝에 저 사진을 포함 7장의 사진을 이메일로 전달받을 수 있었는데 함수 콧잔등만 드러낸 천안함 주위를 해경-253호정이 선회하고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즉, 해경정이 함수를 지키며 선회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 이 순간 국민들은 그 사실 -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지 않고 상당시간 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전혀 몰랐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언론들은 저 영상의 이미지만을 인용해서 보도했지 그 배경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어떤 매체도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정부와 국방부는 <반파되어 침몰한 함수와 함미를 찾고 있다>는 발표만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김태영 국방장관, 원태제 대변인 등 국방부 고위 수뇌부들은 공식브리핑 및 언론인터뷰에서 “3천톤급 구조함이 올라오고 있다”, “오늘은 기대하기 어렵다” 등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은 감춘 채 ‘수색중’이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그러면 국방부는 당시 함수가 떠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요?

◈ 해경-501함 유종철 부함장과 해작사 심승섭 대령의 증언

2011년 8월22일 천안함 제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해경-501함 유종철 부함장은 천안함 구조를 위해 달려가던 중 <천안함이 ‘좌초’ 되었다는 전문을 팩스로 받았다> 는 놀라운 사실과 함께 <천안함 함수가 가라앉지 않고 계속 떠 있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법정에서 증언하였습니다.

유 부함장은 천안함 함수에서 생존자 58명을 501함으로 탑승케 하였고 이송 후 오전 7시10분까지 계속 떠 있는 함수를 지키고 있다가 상부 지시에 의해 해경-253호정에 현장을 인계하고 다른 지점으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실을 해경은 국방부와 해군 측에 통보하지 않았을까요?

아닙니다. 해군측이 실시간으로 함수의 위치를 추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2011년 9월19일 천안함 제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해군작전사령부 심승섭 준장(사고 당시 대령)의 증언을 통해 밝혀집니다. 심 준장은 <천안함 사고 첫 보고는 ‘좌초’ 였고 상부에도 ‘좌초’ 로 보고했다>는 사실과 함께 <해작사에서는 천안함 함수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고 현장에 수시로 통보했다>는 놀라운 증언을 하였습니다.

즉,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해군과 해경 모두 천안함 함수가 반파 후에도 가라앉지 않고 무려 16시간22분 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오로지 국민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지요.

권 중령은 사고 다음 날인 3월27일 TV화면을 통해 함수가 떠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자신의 휘하에 있는 5대대 이준수 중사와 김근환 소령 등 9명이 해난구조대와 합류하여 헬기로 백령도에 들어갔으며 본인은 그 다음 날인 3월28일 백령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스스로 해군사관학교에서 항해를 전공하고 함정 생활만 10년 이상을 하였으며 천안함과 동급의 초계함인 여수함의 함장까지 역임한 항해장교로서 반파되어 침몰한 함선의 함수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데 함수를 유실하지 않도록 부이(BUOY)를 설치하라고 다그치거나 왜 그것을 확인하지 않았는지 그런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간과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더구나 그는 천안함 인양·수색을 전담하는 UDT대대장으로서 TV화면을 통해 천안함 함수가 떠 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어떻게 그 안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을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그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미 현장에 급파된 UDT, SSU, EOD등 해난구조 전문요원들에게 ‘함수에 생존자가 있는지 수색하라’ 는 지시를 내리는 것이 당연했을 터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권 중령이 언급한 ‘골든타임’ 을 놓치는 중대한 결과로 나타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더구나 군 당국은 함수가 떠 있는 것을 해작사 보고를 통해 알고 있었으면서 그 사실을 덮어두었던 것은 과실여부를 넘어 그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할 중대사안인 것입니다.

◈ 함수 자이로실에서 발견된 박성균 하사의 시신

2010년 4월23일 해상크레인에 의해 함수가 바로 세워지고 다음 날인 4월24일 함수가 인양되어 바지선 위에 탑재되는데 이때 함수 자이로실에서 보수하사인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천안함이 반파되어 104명의 승조원 가운데 58명만이 생존하는 비극의 참사에서 함미에 이어 함수에서도 희생자가 발견된 것입니다.

함미는 선체가 반파된 직후 수중으로 가라앉았습니다. 함미는 선체에서 가장 무거운 부분인 기관실이 있고 여유부력을 확보해 줄 수 있는 공간이 적기 때문에 불과 수 분 이내에 완전히 해저에 가라앉게 되지만 함수는 상황이 다릅니다. 함수는 비교적 빈 공간이 많아 여유부력 확보가 가능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16시간 22분간 가라앉지 않고 떠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박성균 하사가 발견된 자이로실은 함수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공간입니다. 선체가 반파되어 물이 차고 들어오는데 왜 가장 낮은 위치로 갔을까요. 기관실등 하부가 무거운 함미와는 달리 함수는 상부구조(선실과 포탑)가 무겁기 때문에 반파이후 함수는 완전히 뒤집히게 됩니다.

함수가 뒤집혔지만 16시간 이상 떠 있었다는 사실은 내부에 공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부력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며, 정상 시 가장 낮은 위치인 자이로실은 전복 후 가장 높은 위치가 되어 공기가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박성균 하사의 시신이 발견되었던 것이지요.

권 중령은 자신의 저서 112쪽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함수 쪽에는 실종자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보수하사가 자이로실에서 발견되었다. 함 내 안전 순찰 중에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함수는 일정시간 수면상에 떠 있었는데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악을 쓰고 빠져나오지 그랬어? 이 바보야!’”

저는 이 대목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리고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악을 쓰고 빠져나오지 못한’ 것을 다그치는 그의 말 속엔 함장출신 UDT대대장인 자신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대응했더라면 소중한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함이나 일말의 죄책감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더욱 서글펐습니다.

그리고 생존자들과 함께 천안함에서 해경정으로 옮겨타면서 “제가 마지막이다. 더 이상 없다”고 말한 천안함 함장 최원일 소령의 과실 또한 중대합니다. 그는 ‘자신이 마지막’ 이라고 말함으로써 수색을 저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히 수색과 구조의 임무를 다했어야 할 군 당국의 총체적 과실은 그 어떤 이유에서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3월27일 오전 7시10분경 해경-501함은 현장을 해경-253정에게 인계하고 현장을 벗어납니다. 이후 해경-253정이 천안함 함수를 지키고 있었는데 오후 13:37분경 천안함 함수는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집니다. 해경-253호정이 최종 순간까지 함수 곁에 있었는지 아니면 상부지시에 의해 함수를 내버려두고 이탈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해경-253정장을 법정에 증인으로 신청하였으며 차회 제6차 공판의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입니다.

저는 UDT대대장인 권 중령에게 묻습니다. “당신과 군 당국은 ‘골든타임’ 즉 ‘생존자가 살아있는 시간에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 내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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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①] 거짓의 향연 - 폭침 어뢰를 찾다 ?

2. [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②] 암초 충돌했다고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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