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①] 거짓의 향연 - 폭침 어뢰를 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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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항소심 제5차 공판 ①] 거짓의 향연 - 폭침 어뢰를 찾다 ?
  • 천안함의 진실 - 신상철
  • 승인 2017.05.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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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신상철] 기나긴 터널을 관통하며 이런 날이 올까 싶었지만,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망월국립묘지에 울려 퍼졌던 어제 5.18 광주민주항쟁의 날,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서관 312호에서는 7년 동안 이어오고 있는 천안함 공판(항소심 제5차 공판)이 열렸습니다.

어제의 재판은 박근혜의 구속 그리고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천안함 재판’ 이라는 점에서 많은 분들의 관심이 쏠렸고 특히 해군측과 재판부에 어떠한 변화가 감지되는지 여부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해군측의 변화는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제3차 공판이 열렸던 지난 2월 16일, 지난 7년 재판과정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재판을 앞두고 해군장교 십 수명이 방청을 와서 서로 경례를 붙이고 악수하며 반갑게 인사들을 나누는 모습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방청석에는 기무사 소속으로 추정되는 사복차림의 요원과 때로 유가족 몇 분이 와서 앉아있기는 했지만 해군장교 십 수명 그것도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으로 보아 각각 소속이 다른 부대의 장교들이 근무복까지 차려입고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말이지요. 그 현상을 제 나름대로 분석해보면 이렇습니다.

◈ 최악의 사고 그러나 징계가 빠졌던 오류

천안함 사고의 원인이 피고인 제가 주장하듯 ‘좌초 후 충돌’ 로 침몰한 ‘일련의 해난사고’ 였든, 아니면 원고인 이명박 정부와 국방부가 주장하듯 ‘북한 어뢰에 의한 폭침’ 이든 상관없이 천안함 침몰 사고는 그 자체로서 우리 해군의 역사를 통틀어 유사 이래 가장 ‘심각한 사고’ 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렇게 중대한 사고를 쳤는데 ‘징계’ 가 없다? 더구나 적이 은밀하게 고물 잠수함을 보내어 한미연합훈련 중인 서해를 뚫고 들어와 한 방에 경계중인 초계함을 작살내고 유유히 사라졌다고 동네방네 떠들면서 아무도 ‘책임’ 을 지지 않는다? 군대라는 조직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반드시 그 책임라인을 가려서 견책하고 징계함으로써 일벌백계의 규율과 위계질서를 다 잡아가는 조직 아닌가요?

딴 얘기 하나 하지요. 천안함 사건이 터지고 2년이 지난 2012년 10월, 허기를 참지 못한 북한군 병사 하나가 음식물을 훔치다 상관에게 적발돼 싸운 뒤 귀순을 맘먹고 강원도 고성군 비무장지대 전기철책선에 나무판을 대고 넘어옵니다. 

그런데 우리군 GOP에 도착해보니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비대를 찾아가 두드렸는데 반응이 없습니다. 그래서 막사로 가서 문을 두드립니다. 이른바 ‘북한군 노크귀순 사건’ 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된 줄 아십니까? 이 사건으로 14명이 문책당합니다. 합참작전본부장인 중장을 포함 장성만 5명(중장 1, 소장 2, 준장 2)이며 영관급 장교는 9명(대령 5, 중령 2, 소령 2)이 문책을 당합니다. 이것이 군 조직입니다. 아무도 죽지 않았습니다.

막사를 노크하는 북한군 귀순병사를 반갑게 맞은 우리 군 소대장이 귀순병사 손을 이끌어 라면을 먹인 아름다운 미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장군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 사건에서도 초기 군은 ‘문 두드림’ 사실을 은폐하고 ‘CCTV 확인’ 으로 발표하였으며 합참의장은 2012. 10. 8 국정감사장에서 민주당 김광진 의원의 ‘문 두드림’ 질문에 대해 ‘CCTV로 확인하였다’ 고 답변합니다. 그러나 전비태세검열단의 현장조사와 합동지휘통제체계 확인을 통해 10월11일 합참의장은 ‘노크귀순’ 으로 정정 발표합니다.

이것이 군의 생리입니다. 총소리 한 발 나지 않았고, 다친 사람 한 명 없었음에도 북한군 병사가 철책을 넘어 GOP를 거쳐 막사를 두드릴 때까지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하늘의 별이 우수수 떨어져 내려야 하는 것이 군대입니다. <전투에서 지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 '참담한 패배' 라면서 이해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

그들 주장대로, 한미연합훈련 중에 은밀하게 침투한 북 잠수함의 단 한발 공격에 반파되고 46명이 사망한 사건, 그 결말은 어떠했을까요? 물론 ‘문책’ 의 형식은 있었습니다. 군이니까요. 그런데 괴이한 현상이 벌어집니다.

2010. 6. 9 감사원은 천안함 사건 감사결과를 발표하면서 25명의 관련자에 대한 인사자료를 국방부에 통보합니다. 이때 감사원은 징계요구나 형사고발이 아닌 인사자료만 통보합니다. 그리고 국방부는 이리저리 다 털어내고 과연 이분들이 천안함 침몰사고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지 여부조차 의아한 수준의 징계를 상신하였으며 그조차도 대부분 취소되거나 감경됩니다.

◈ 천안함 사건 징계 마무리… ‘봐주기’ 지적

항고심 대상자 절반 이상 징계 취소 또는 감경

【서울=뉴시스】오종택 기자 = 천안함 피격 1주기를 앞두고 이 사건으로 징계위에 회부됐던 지휘관과 영관급 장교들에 대한 징계처분이 마무리됐다.

11일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천안함 사건으로 징계 받은 9명에 대한 항고징계심사위원회에서 4명은 항고가 기각됐고, 2명은 감경됐으며, 3명은 무혐의 처리됐다.

항고심에서 징계가 취소된 장교는 류모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정모 전 합참 지휘통제실장, 백모 전 지휘통제반장 등이다. 무혐의 처리에 따라 이들의 인사기록에 처분 내용이 남지 않게 된다.

또 황모 전 합참 작전본부장과 박모 전 해군 2함대사령부 작전참모는 근신에서 견책으로 징계처분이 감경됐다.

1차 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인 정직처분을 받았던 김모 전 해군 2함대사령관과 경징계 처분을 받았던 박모 전 해군작전사령관, 김모 전 합참 작전부장, 천안함 소속 부대장 등의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군 관계자는 “(징계가 취소된)당시 위기소집반을 정식 소집하지는 않았지만, 해당자가 모두 출근해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었다는 점이 고려됐다” 고 설명했다.

이로써 천안함 피격과 관련된 국방부와 합참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가 마무리됐지만 항고한 9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징계가 취소되거나 감경돼 결국 봐주기식 처분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항고가 기각된 4명과 징계처분이 감경된 2명 모두 항고징계심사위원회의 결과에 불복하고 징계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장성 6명과 영관장교 5명 중 최원일 천안함 함장은 징계유예처분을, 양모 전 합참 작전처장에겐 혐의없음 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9명 전원은 징계처분에 불복해 항고했었다. ohjt@newsis.com

이 솜방망이 처벌의 압권은 최원일 천안함 함장입니다. 최 함장은 국방부가 징계하겠다고 하자 서초동으로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였고, 그러자 국방부는 “최 함장에 대해 사고 당시 평시여서 전투대비태세가 소홀했다는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 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달아 ‘징계유예판정’ 을 내립니다. 군의 경계임무가 평시에는 소홀해도 된다는 새로운 교범이 작성되는 순간입니다.

◈ 천안함 침몰사고 발표 후 진급파티를 벌인 군인들

국방부가 2010년 5월 20일 천안함 침몰사고 결과를 공식발표하고 나흘 후인 5월24일 이명박은 전쟁기념관에서 비장한 표정으로 ‘남북교류 단절’을 선포합니다. 이른바 ‘5.24 조치’ 입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일구어 낸 6.15와 10.4 선언의 결과로 얻어진 개성공단을 비롯하여 남북경제협력과 교류에 철벽이 쳐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오던 개성공단마저 박근혜 정권 들어 완전히 차단되기에 이릅니다.)

이명박의 ‘5.24 조치’ 선포 열흘 뒤인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가 열렸습니다. 3.26 천안함 침몰사고 - 5.20 북한어뢰폭침 공식발표 - 5.24 조치발표로 이어지는 일련의 ‘북풍몰이’ 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권은 6.2지방선거에서 참패를 면치 못합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서울의 경우 25개 구 가운데 21개 구에서 민주당에게 싹쓸이 당하는 패배의 쓴맛을 봅니다. 당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발표를 믿는 국민이 32%에 불과하다는 발표가 보여주듯 국민의 의식 수준을 과소평가했던 결과이지요.

6.2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대패로 끝났음에도 천안함 사건 조작 관련자들의 논공행상은 끝나지 않았고 조용한 가운데 진급파티를 벌입니다. 중장은 대장으로, 준장은 소장으로, 대령은 준장으로… 군 역사상 최악의 사태를 겪었음에도 그 사건 혹은 조사와 관련된 사람들이 줄줄이 진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지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관통하며 박근혜 정권이 탄핵의 위기에 몰리고 야권의 주자들에 대한 경선의 장이 펼쳐졌을 때 천안함 사건 조작에 연루된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가늠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정권이 바뀐 후 자신들에게 다가올 운명의 그림자가 어떠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일이겠지요.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까.

영전파티를 벌여 각 군의 주요 지휘관의 자리에 오른 그분들은 천안함 사건 재판의 추이에 대해 대단히 궁금하고 불안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휘하의 장교들을 법정에 보내 천안함 재판 진행상황을 체크해 보라는 지시를 한 것이 아닐까.. 저는 ‘추정’ 합니다. 제가 각 장교들을 붙잡고 물어볼 형편은 아니어서 ‘추정’ 이라는 점을 확실히 밝혀둡니다.

그것이 지난 2월 16일 제3차 천안함 항소심 재판 때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십 수명의 해군장교들이 법정에 와서 서로 반갑게들 인사를 나누고 방청석에 앉아 열심히 듣고 메모하는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UDT 권영대 대령의 '거짓의 향연' 법정증언대에 서다

어제의 재판에는 권영대 대령이 법정 증언석에 섰습니다. 그분은 천안함 사고 당시 UDT대대장으로서 천안함 수색, 인양, 어뢰수거 전 과정에 참여한 당사자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폭침, 어뢰를 찾다’ 라는 타이틀의 책 속에 천안함 인양과정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누구에게든 책을 출판한다는 것은 상당한 작업임에 틀림이 없으며 커다란 부담을 안게 됩니다. 진실을 담아야 한다는 것, 만에 하나 잘못된 거짓이 기록될 경우 바로 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그래서 출판 자체가 ‘무게감’ 을 갖게 되고, 출판을 통해 펼쳐진 내용은 상당한 ‘신뢰감’ 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였는지 지난 제3차 공판에서는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자신의 책을 증거로 제출하였으며 검사와 함께 그 주장을 법정에서 펼쳤습니다.

책 속에 담아 넣은 상당수 ‘거짓의 기록’ 이 마치 사실인양 고착화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어서 그 분을 이번에는 피고인측 증인으로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어제 그 재판이 열렸습니다.

앞으로 5회에 걸쳐 증인 권영대 대령에 대한 공판과정과 함께 그가 펼쳐놓은 ‘거짓의 기록’ 들을 찬찬히 짚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진실은 결코 침몰하지 않습니다.

위 사진클릭-모두진술 PT '버전 3.3' 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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