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칼럼] 아아 대한민국, 아아 나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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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아아 대한민국, 아아 나의 조국
  •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 승인 2019.04.1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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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의 땅, 살육의 땅

【팩트TV-이기명칼럼】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마오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

낙엽은 지고 눈보라 쳐도

변함없는 내 사랑아

내 곁은 떠나지 마오

서울의 찬가 가사 일부다.

 

■ 지워지지 않는 학살의 기억

나는 기억한다. 6월의 찌는 태양 아래 만삭인 채 어린 자식을 업고 손잡고 피난가던 젊은 엄마가 미 공군 무스탕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죽는 모습을 16세 소년은 80을 넘어서도 잊지 못한다.

죽은 엄마 등에 업혀 울던 갓난쟁이는 어떻게 됐을까. 길가에 시체가 널려 있던 곳은 지금의 분당이다. 지겹게 많은 시체를 봤기에 죽는 것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느끼던 소년이 80이 넘어 지금 제주 4·3사건 71주년 중계방송을 보고 있다.

집에 두면 빨갱이 자식이라고 죽을 것이 뻔한 어린 자식들을 조각배에 태워 바다로 내보내면서 어디 가서 살기만 하라고 했다는 제주도의 어머니들. 하늘도 땅도 제주도도 울었다.

제주 4·3의 추모식에서 이낙연 총리의 탄식은 국민 모두를 울린다.

“71년 전의 4월도 우리나라는 찬란한 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해 제주의 봄은 이념의 광기와 폭력에 짓밟혔습니다. 세계가 냉전으로 나뉘고 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지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참혹하게 희생되셨습니다.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양민들이 이념의 이름으로 살해되셨습니다. 젖먹이, 임신부, 팔순의 노인까지 광기의 폭력을 피하지 못하셨습니다. 7년 동안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무스탕 전투기에서 기총소사한 미군은 동족이 아니다. 그러나 제주의 4·3 학살, 거창학살, 광주의 5·18 만행은 모두 우리 동족이 저지른 학살이었다.

(이미지 - 팩트TV 영상 캡처)

 

■ 죄 없이 죽은 원혼들

이 땅은 학살의 실습장이냐. 4·3 제주 학살, 5·18 광주학살. 아니 더 올라가자. 우리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이 땅은 강대국이 벌이는 학살의 유희장이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맞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 아름다운 땅이 왜 살육의 장이 되었는가.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는 피도 섞이지 않은 타 민족이라 할지라도 빨갱이 타령을 하면서 서로 죽인 동족끼리의 학살극은 뭐라고 할 것인가.

왜군은 임진왜란 당시 장난삼아 조선인의 코를 베었다고 한다. 너무 많이 베어 코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은 어떤가. 병자 정유 난 때 이 땅의 처녀들을 잡아다가 종들에게 나누어 줬다고 한다. 하필이면 우리 조상들이 바보스럽게 강대국 사이에 나라를 세워 학살게임의 제물이 되었을까. 그러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그들에게 잘 보이려는 아부·아첨뿐이었다.

9·28 서울 수복이 된 얼마 후 어느 마을은 남자들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한 마을에 제삿날이 겹치는 집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이런 빌어먹을 세상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하늘이 무심하다. 그 하늘이 우리의 하늘이다.

5·18 학살 만행은 어떤가. 왜 멀쩡한 시민들은 쏴 죽이는가. 배가 남산만 한 임산부가 총을 맞아 뱃속의 태아와 함께 사망했다.

집에 안 좋은 일이 자주 생기면 어른들은 집터가 세서 그렇다고 고사도 지내고 무당 불러서 푸닥거리도 하고 굿도 했다. 조상 대대로 살고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갈 내 조국 대한민국. 내 조국도 터가 세서 그런가.

통한의 역사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은 학살의 명당이 되어 버렸다. 대국으로 섬기던 중국에 바치는 조공은 금은보화뿐이 아니고 꽃 같은 여성도 포함됐다. 왕도 중국이 도장을 찍어줘야 제구실했다. 이른바 호란(胡亂)이라 불리는 그들의 침략은 이 땅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지금도 북은 중국의 눈치를, 남은 미국의 심기를 살피며 할 말을 못하고 산다.

배고픈 설움과 집 없는 설움이 제일 크다고 하지만 힘없는 나라에 태어나 겪는 설움은 어떤가. 이놈도 건드리고 저놈도 건드리고 이놈도 한 입 집어 먹고 저놈도 한 숟갈 떠먹고 심심풀이 땅콩 신세다. 우리 민족이 바로 그런 신세가 아니었던가. 잘못 태어난 원망이나 하면 그만일까.

 

■ 장자연의 죽음도 학살이다

인간은 죽으면 모두 끝이 나는가. 죽음이 인생의 끝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고통을 견디기 힘든 인간은 차라리 목숨을 끊는다.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통을 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는가. 하루에 피죽 한 끼를 먹고 살아도 세상을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이다.

학살을 당한 인간의 죽음과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의 죽음은 어떻게 다른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목숨을 잃는 것이 학살이라면 장자연의 죽음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장자연이 생전에 겪는 그 많은 사연을 들었는데 그렇다면 그가 남겼다는 것이 과연 유서인가? 장자연을 가장 잘 아는 윤지오는 유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럼 무엇일까.

길지 않은 인생을 산 장자연이 겪은 인생을 무엇이라고 해야 하는가.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본 윤지오가 전하는 장자연의 인생은 차마 옮기기가 무섭다. 장자연은 이 사회의 지도급 인간들이 다 함께 소유하는 공유물이었다. 그가 남긴 글 속에 인물들이 몇 명인가. 빨리 공개되기를 바란다.

장자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있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장자연이 계단에서 스스로 목을 맬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슴이 아파 생각이 끊어진다.

눈을 감아라. 귀를 크게 열어라. 들리는가. 통곡 소리가 들리는가. 혀를 깨물며 참는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아 아 들린다. 들린다. 가슴을 쥐어짜는 피울음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누구의 울음인 줄 아는가. 바로 장자연의 울음소리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쏟아놓은 통곡 소리다.

 

■ 우리는 모두 장자연을 죽게 한 공범

윤중천·김학의를 비롯한 별장이라는 이름의 별천지에서 마약과 수면제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적 노리개로 삼은 인간들은 이들 여성의 정신을 학살한 범죄자들이다. 육체적 학살과 정신적 학살은 어느 것이 더 중죄인가.

힘없는 신인배우 장자연은 성 접대의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의 친구 윤지오가 생명의 위협을 견디며 증언한다. 장자연의 유서라는 것은 유서가 아니라 고발장이다. 술상 위에 올라가 춤을 춰야 하고 사내들의 무릎 위에 앉아 추행을 당해야 하고 밤마다 겪어야 하는 성폭행. 좋은 연기자가 되고 싶어 고향을 떠나온 장자연은 온몸이 망가졌다. 몸을 지탱할 힘도 없었을 것이다.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자들의 성추행을 고발한 문건으로 끊임없이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한겨레’는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가 장자연과 자주 통화하고 만났다’는 방정오 지인의 진술을 보도했다. 방정오 고백해라.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다음 대목을 보자.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 개 월 후 김성훈(김종승의 가명) 사장이 조선일보 방 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살롱 접대를 시켰습니다.”

패륜이다. 아무리 미쳤기로 이게 인간의 짓이냐.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에서 탈출하는 길은 세상을 떠나는 것뿐이다. 목숨을 끊는 것이다. 장자연은 그렇게 떠났다. 타살됐다. 학살이다.

장자연 양. 우리 모두가 당신을 학살한 공범입니다.

아아 대한민국, 아아 나의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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