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늑장 리콜 통보에 쥐꼬리 보상...한국 환자 ‘하등민’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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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늑장 리콜 통보에 쥐꼬리 보상...한국 환자 ‘하등민’ 취급
  •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
  • 승인 2018.11.2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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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기업 존슨앤드존슨메디칼의 자회사 드퓨(DePuy)는 지난 2010년 8월 전세계 시장에서 유통, 판매하던 일부 인공엉덩이관절(이하 인공고관절) 제품의 자발적 리콜을 시행했다. 실제 시술 후 결과가 제품 출시 당시 예상 재수술 비율보다 훨씬 높게 나왔기때문이다.

미국 내 해당 제품 이식 환자 1만여 명은 드퓨 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지난 2013년 1인 당 25만 달러, 당시 환율로 우리 돈 2억 원에 달하는 정신적∙신체적 손해 배상을 받았다.

그러나 리콜이 진행된 지 8년이 지난 현재, 이 제품을 이식받아 아직도 몸 속에 안고 살아가는 한국인 환자들은 의료진에게서 제대로 된 의학적 안내도, 업체에서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부작용에 시달리고, 각종 합병증 발명 우려에 시달리며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와 국제탐사언론인협회 ICIJ의 국제 협업 취재 결과, 지난 2010년 8월 24일 드퓨 사의 자발적 리콜 이후 한국 환자들에게는 제품의 리콜 또는 부작용 정보가 제대로 공지되지 않았고, 리콜 제품 이식 환자에 대한 보상 또한 영미권 환자들에 비해 부실하게 지급됐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호주에서 퇴출 전력 인공고관절 …국내에서 리콜 직전까지 이식 수술

인공고관절 이식은 엉덩이뼈 관절에 피가 통하지 않아 골반과 다리를 잇는 뼈가 썩어들어가는 대퇴골두 무혈성괴사라는 질환의 치료법이다. 골반과 다리 뼈에 인공 관절을 심어 서로 맞물려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과거에는 세라믹 등으로 만든 인공관절이 보편적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드퓨 등이 금속 재질의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리콜된 드퓨 금속 인공고관절은 금속 부품끼리 맞물리며 마모돼 중금속 가루가 나오는 부작용이 확인됐다. 이는 골용해와 주변 세포의 괴사를 일으키고, 혈중 중금속 농도를 상승시킨다. (출처: 유튜브 Walkup Law Office)

2010년 리콜 대상이었던 드퓨 제품은 ASR XL Acetabular System(수허 05-936)과 ASR Hip Resurfacing System(수허 05-961)으로 금속과 금속이 바로 맞부딪히며 움직이는 금속 대 금속 제품이다. 제조업체가 기기 수명이 20년 가량이라고 밝혀 활동이 많은 젊은 환자들에게 주로 이식됐다. 이들 제품은 국내에서 2006년 10월 처음 시술됐다.

드퓨 사는 지난 2010년 8월 24일 자발적 글로벌 리콜을 발표했다. 제품 출시 때는 재수술률을 8~9%로 예상했지만 실제 재수술률은 12~13%로 보고됐기 때문이다.

영국고관절학회의 2011년 연구에 따르면 해당 제품의 재수술률은 49%에 이른다. 파손되기도 하고, 금속과 금속 면이 맞물리며 크롬과 코발트 등 중금속 성분이 떨어져 나와 주변 근육을 괴사시키거나 뼈를 녹인다.

▲리콜된 드퓨 인공고관절 제품의 마모로 크롬과 코발트가 검출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특히 크롬은 1급 발암물질이라 위험하다. (출처: 시드니모닝헤럴드)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크롬의 경우는 혈중 농도가 정상 수준보다 높게 유지되면 장기적으로는 암을 발생시킬 수도 있고, 코발트 또한 여러가지 질환을 야기한다. 호주 시드니모닝헤럴드 기사에 따르면 드퓨 인공고관절을 이식받은 환자를 연구한 퀸즈랜드 의대 연구팀은 혈중 코발트 농도가 상승하면 손 떨림, 우울증, 현기증, 청력 상실, 심장 질환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세계적으로는 93,000여 명이 문제의 드퓨 ASR 인공고관절 제품을 이식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0년 8월, 글로벌 리콜이 실시될 때까지 드퓨 제품을 이식받은 국내 환자는 모두 321명이다.

뉴스타파와 만난 환자 정상호 씨는 글로벌 리콜이 시작되기 불과 12일 전인 2010년 8월 12일 해당 제품으로 재수술을 받았다. 정 씨는 재수술 때 이식 받은 제품과 동일한 인공고관절을 이미 2008년 이식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2년 만에 재수술을 받은 것이다.

 

제품 위험성∙리콜 정보 더디게 확산돼

2010년 8월 글로벌 리콜 발표 후, 영미권 국가에 비해 국내에서는 이 제품을 이식받은 환자들에 대한 조치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해당 제품을 시술했던 의료기관과 업체의 소극적인 대응 때문이다.

▲드퓨 ASR 인공고관절은 호주에서 2007년 위험성이 최초로 제기된 이후 식약청의 조정을 거쳐 2009년 호주 국내 시장에서 회수됐다. (출처: 호주 식약청)

이 제품은 이미 2007년 호주에서 위험성 가능성이 처음 제기돼 호주 식약청 조정 이후 2009년 12월 호주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리콜이 실시됐다.

부작용에 대한 새 연구 결과가 보고되자 드퓨 본사는 영국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에 보고하고, 영미권 의료기관과 의료진에게는 글로벌 공식 리콜이 있기 5개월 전인 2010년 3월부터 긴급 서한을 보내 위험성을 고지했다.

드퓨의 인공고관절 제품을 집중 시술해온 국내 의료진과 병원이 이런 해외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다.

2010년 8월의 공식 리콜 발표 이후에도 국내에서는 리콜 사실이 환자들에게 제대로 통보되지 않았다. 드퓨 제품 한국 판매회사인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은 드퓨 ASR 공식 리콜 발표 이후 즉시 병원에 고지했다고 주장했다.

경희의료원의 경우도, 2010년 8월 30일에 리콜 사실을 인지해 같은 날 환자들에게 전화와 우편으로 리콜 사실을 고지했다고 말했다. 연락이 되지 않는 환자들의 경우 정기 외래진료 때 구두로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업체와 병원은 2010년 리콜 직후 해당 사실을 환자들에게 알렸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환자들은 그로부터 3년 후 사실을 접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만난 환자들은 모두 리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때가 2013년 10월이라고 증언했다. 공식 리콜 발표 뒤 무려 3년이나 지난 시점이다.

경희의료원 측은 존슨앤존슨에서 리콜 사실을 통보받은 즉시 환자들에게 전화와 우편을 통해 고지를 시작했고, 이 방식으로 연락이 닿지 않으면 정기 외래검진 때 구두상으로 안내했다고 주장했지만 이것을 뒷받침할만한 어떤 자료도 제시하지 못했다.

병원 측은 뒤늦게 2011년 6월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리콜 고지 서한 샘플을 뉴스타파에 보내왔지만, 이 서한이 환자들에게 실제 발송됐다하더라도 공식 리콜 발표보다 10개월 가량 늦은 시점이다.

경희의료원 정형외과 과장이었던 조 모 교수는 리콜 사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며, 리콜 통보를 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환자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드퓨 ASR 인공고관절의 부작용 사례를 감추려다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지난 2013년 5월 식약처에 의해 고발당하기도 했다.

한편, 리콜 전까지 드퓨 사의 인공고관절 제품을 수입해 유통한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은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은 환자 사례를 감추다가 적발된 적도 있다.

식약처는 존슨앤드존슨이 2011년 실제 국내에서 드퓨 ASR 부작용으로 재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수술비만 대주고, 이상 사례는 식약처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로 2013년 5월 이 업체를 고발했다. 검찰은 존슨앤드 존슨에 벌금형 처분을 내렸지만 이듬해 법원은 선고 유예했다.

글로벌 리콜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리콜을 진행했고, 보상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에 따르면, 23일 현재까지 국내에서 리콜 제품을 이식받은 환자 총 321명 중 216명이 리콜 보상프로그램에 등록돼 있다고 한다. 이 중 제품을 제거하는 재수술을 받은 환자는 32명에 불과하다.

 

2차례 이식 수술에 병원비만 천4백만 원...보상은 고작 68만 원

국내에서는 리콜 사후 관리 및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영미권 국가에선 리콜 직후 드퓨 ASR 이식 환자들이 변호인을 선임해 집단 소송을 시작했고, 보상이 실제 진행됐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측도 글로벌 리콜 직후부터 보상 프로그램 운영 사실을 병원에 고지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식약처가 대한의사협회 등에 공문을 보내 보상프로그램 정보를 환자들에게 통보하라고 권고한 시점은 2013년 5월 27일로 확인된다. 리콜 발표 후 3년이나 지난 시점이며,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이 부작용 사실을 은폐하려다 식약처에 고발당한 시기와 일치한다.

보상 규모도 영미권 환자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었다. 존슨앤드존슨 본사는 2013년 집단소송에 나섰던 미국 환자 만여 명에게 1인 당 25만 달러, 당시 환율로 우리 돈 2억 원 넘게 손해배상을 했다.

반면에 뉴스타파가 만난 환자 정상호 씨의 경우, 첫 수술과 재수술 모두 문제의 리콜 제품을 이식받았지만 지금까지 업체에서 받은 보상금은 고작 68만 원에 불과하다. 또 다른 환자 정모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 씨는 2016년 재수술 당시 병원비가 1400만 원 정도 나왔지만 정작 미국 드퓨 본사에서 받은 보상금은 겨우 220만 원이었다.

 

“한국의 허술한 피해 구제제도와 사법시스템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한국 환자 우습게 봐”

뉴스타파 취재진은 한국에서는 보상 프로그램이 왜 이런 식인지 존슨앤드존슨메디칼 본사와 드퓨의 한국 판매회사인 한국존슨앤존슨메디칼에 물었지만 리콜 관련 모든 결정은 미국 본사에서 하는 것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후 보내온 서면 답변서에서는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리콜 후 환자들에게 합리적인 보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리콜 제품을 사용하고도 부작용이 없는 사례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의료기기 업체가 이 같은 태도로 나오는데는 피해 구제 제도가 허술한 국내 법 체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기기로 인한 피해의 중대성이라든가 어떤 특성을 충분히 고려했는지 의문입니다. 우리 법원이 소극적이다보면 의료기기 회사라든가 다국적 기업들이 계속 우리나라의 허술한 이런 부분들을 계속 악용할 수가 있는 것이죠. 특히 우리나라의 사법 시스템이라든가 피해 구제 제도가 허술한 이런 측면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우리나라 국민을 조금 더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호균 변호사∙의사 / 법률사무소 히포크라>

 

취재 : 김지윤, 김용진, 김성수, 홍우람, 연다혜, 임보영, 촬영 : 김기철, 신영철, 정형민,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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