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이 동아시아를 순방하면서 일본은 동맹국 ally 이며, 한국은 협력자 partner 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즉, 그들의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한국은 일본보다는 그 순위가 크게 밀려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태극기와 더불어 성조기까지 들고 흔들었던 분들의 마음이 어떨까 싶기도 합니다.
틸러슨은 중국에 가서 사드 배치에 관한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국내 언론이 예상했던 것은 그저 한국 정부가 바랬던 것일 뿐이고, 미국은 자기들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이른바 팩트폭력을 한국에 시전한 셈입니다.
팩트는 아픕니다. 미국이 우리를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미국을 사랑하는 것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이 말로는 혈맹을 외쳐도, 한국과 일본의 특수한 관계 같은 것은 전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나라이고, 해방된 한국에 점령군으로 진주할 때 해방된 조국에서 사는 기쁨을 누리려는 이들에게 '포고령 1호'를 선포했고, 일제에 부역했던 이들을 주요 포스트에 앉혀 버린 것도 미국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이 한국을 지키려고 했던 것도 사실은 일본까지 공산화되는 것을 막겠다는 그들의 전략 의도 때문이었고, 한국이 그 참화를 겪을 동안 일본은 패전의 폐허를 딛고 다시 강국으로 일어날 수 있는 토대를 쌓았었습니다.
미국은 그 이후 이른바 미쓰야 계획의 수립을 통해 월남전이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경우 바로 북한을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웠었고, 그러면서 일본이 다시 전쟁 전에 가졌던 동북아 패권 야욕을 다시 키워줬습니다. 그리고 아베는 지금 이걸 바탕으로 해서 일본을 다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그들은 이걸 '정상적인 국가'라고 합디다만)로 만들려 하는 겁니다.
이게 미국, 더 정확히 말하자면 워싱턴 정치권의 실체입니다. 그들은 월 스트릿의 자본과 결합하여 가장 이익이 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들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은 그저 장기판의 졸인 것이고, 2차 대전때 그들의 주적이었던 일본은 이제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고, 한국은 그저 그들의 정책을 받치기 위한 '파트너' 일 뿐입니다. 이게 팩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에게 '노'라고 말할 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겁니다. 한미 관계를 말 그대로 대등한 주권국과의 관계로 만들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런 정책과 철학이 분명한 사람이 한국의 국가적 이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렇게 정책을 만들어 추진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겁니다. 20세기의 동맹관계는 이미 정리됐고, 미국과 일본이 가장 가까운 동맹이 됐고, 우리는 그저 그들에겐 '파트너'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들의 장기판의 말로서 쓰여질 뿐입니다.
만일 전쟁이 발발한다는 끔찍한 상상을 해 본다면, 저들은 다시 불바다가 될 전장이 한반도로 제한되기를 바랄 겁니다. 사드 배치 같은 것도 미국의 이익인거지, 우리의 이익과는 상관 없는 겁니다.
20세기에 이미 폐기된 오래된 이데올로기에 붙잡혀 미국을 우리 상전처럼 모시고 시위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명청교체기에 명나라의 대의를 잇는다며 소중화라는 쓸데없는 이름을 고수하다가 결국 병자호란의 참화를 겪었던 조선시대의 비극을 이 시대에 다시 보려 합니까?
<시애틀에서 권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