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철 칼럼] 조선일보의 변신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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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철 칼럼] 조선일보의 변신은 무죄인가 유죄인가
  • 진실의길(재미동포 박명철)
  • 승인 2018.07.04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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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6월 26일자에 반공을 넘어서는 새로운 ‘북한알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해괴한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朝鮮칼럼 The Column] ‘반공’과 ‘종북’을 넘어서는 새로운 ‘북한 지능(知能)’필요하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은 트럼프와 한국 정치인들의 對北 시각이 고정되거나 편협하며,‘北에 대한 無知’를 깨닫고 글로벌 안목·보편적 가치에 바탕한 자유롭고 비판적인 ‘북한 바로 보기’를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알고있는 조선일보의 칼럼이 맞는지 의문까지 들도록하는 충격적인 주장이다. 특히 ‘반공을 넘어선 새로운 북한지능’이 필요하다는 지점에서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질수가 없는 노릇이다. 이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의 기명으로 실린 이 칼럼은 비록 외부필진의 이름을 빈 것이기는하나 언론사 칼럼이 그 언론사의 관점을 관성적으로 대변한다는 사실에서 볼때 경천동지할 사건이 아닐수 없다.

더군다나 이 칼럼의 그 어느 부분에도 <이 칼럼의 내용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수도 있습니다>라는 그 흔한 면피성 안내문조차 없다는 것에 주목할 만하다.

◈ 이 칼럼의 내용을 한번 들여다 보면,

<북한이 바싹 다가오자, 북한이 바싹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평양냉면이 군사 분계선을 넘고, 미·일·중·러가 요동치는 혼란스러운 최근의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 있다면, 북한에 대한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닫게 해 준 것이 아닐까.>

<지능이란 사태를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긴박할수록, 북한의 요구와 우리의 상식이 맞부딪칠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반공’과 ‘종북’을 넘어서는 새로운 ‘북한 지능’이다. (과거) 북한을 새로 보자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이제 다시 그걸 뛰어넘는 새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 ‘내재적 접근’이 아니라 국제정세 역학 속에서 이해하는 글로벌 안목, 그리고 인류 보편적 가치(價値)에 바탕을 둔 우리만의 시각이 필요하다. 새 패러다임은 글로벌 사회의 일원인 자유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반공’의 시각도, ‘내재적 접근’도 아닌, 나만의 자유롭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렇게 뇌 근육을 훈련시켜야 나의 '북한 지능'이 높아질 것이고, ‘북한 치매’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주장은 제법 지금까지 있어왔던 북에 대한 남측사회의 맹점을 지적하고 북을 제대로 알기위해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논지로 관심을 끌기에 족했다.

물론 글에서는 반공도 넘어서야하지만 종북도 넘어서야 한다는 묘한 물타기, 즉 양비론이라는 그 특유의 모호한 안전장치를 대동하고 있음은 말할나위 없다.

어쨋건 조선일보가 이렇듯 이제 대한민국의 대북시각을 바꾸어야 한다는 논지를 펴는것은 무슨 연유에서 일까? 중이 제머리 못깎는다는 말처럼 조선일보 자체필진이 할수없는 말을 이처럼 외부필진의 입을 빌어 가려운 부분, 스스로 하고싶은 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조선일보의 일부 ‘좌경주의적’ 시각의 필진들이 이같은 글을 실어도 더 이상 막을수 없는 사내역학관계 때문일까. 참으로 궁금해 지는 부분이다.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어쨋든 조선일보의 변신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반북 반공을 먹고 자라난 사회적 독버섯이 조선일보가 아니던가.

이것은 과연 조선일보의 자기사명에 대한 수정주의적 입장의 표현인가, 아니면 사회적 여론에 눈치보기식으로 따라가려는 변신의 천재다운 또 다른 변실술인가.

나는 조선일보의 이런 이중적인 입장이 기회주의적 여론눈치보기의 또 다른 연출이라 본다. 북에대한 개체의 시각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없으며 그들에게 반북 반공논리는 중세기의 경전처럼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북한(조선)바로알기’를 말할 자격이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태양을 손바닥으로 가리려했고, 북에대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만행과 왜곡을 자행한 반민족 반역사 매문지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이들이 북을 바로알고 민족이 함께 갈 길을 찾자고 했을때 마녀사냥에 탐닉해온 그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안탄압으로 내몰릴때 가장 앞에서 그들을 공격하고 손발을 묶은 것이 조선일보 이다.

수많은 이들이 미국의 신식민지통치에 반대해 나섰을때 그들을 종북 친북 반미주의자들로 몰아갔던 것이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조중동이다. 그들의 DNA는 결코 쉽게 변치 않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보여주는 지금의 태도는 또다른 면피성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무슨 거창한 깨달음이나 목적의식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니다. 조선일보에게는 사실상 이데올로기가 없다. 무슨 거창한 사상이라도 있는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1950년 6월 28일 조선일보 호외

조선일보는 일제시대에는 천황을 찬양했고, 일제패망 이후에는 미국에 부역하다가 다시 6.25당시에는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북의 군대를 ‘위대한 김일성 수령의 해방군’이라며 온갖 찬양일색의 호외를 뿌린 전력을 가진 아주 이상한 집단이다.

그때 그때마다 강자에게 붙는 것이 바로 조선일보의 전통이고 그들의 사상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일보의 얼굴이자 실체이다. 그것이 바로 비굴한 대한민국 친미보수적폐들의 본질이다.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조선일보가 제대로 변신할려면 아직 차례 멀었다. 그동안 무고하게 북을 몰아댔던 수많은 제2의 제3의 현송월 숙청보도와 모함왜곡 사건들을 사죄해야 한다. 북이라는 실체에 아예 가깝게도 가지못한 허위 찌라시기사들에 대해 민족의 재단앞에 사죄해야 한다.

멀쩡한 해양사고를 북에 의한 폭침으로 몰아간 천안함사건 등 수많은 조작사건들에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그들은 ‘잘못된 지능’을 가진 자신들의 머리를 더 감싸쥐고 자학해야 한다. 그들이 민족분단사에 행한 씻지못할 죄악을 제대로 고백하지 않는 한 그 찰라적 변신은 모두 가짜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변신은 유죄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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