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신평은 신돈인가, 정도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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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안 칼럼] 신평은 신돈인가, 정도전인가?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3.02.0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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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국회사진기자단
  © 출처=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의 멘토로 통하는 신평이 또 논란이다. 신평은 지난 대선 때 이낙연 후보를 지지했으나, 이낙연이 이재명 후보에게 지자 윤석열 캠프로 건너가 자칭타칭 멘토가 되었다. 신평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자 자신이 마치 권력을 쥔 듯 호가호위하며 아무 말이나 해댔는데, 최근엔 메가톤급 발언을 해 보수층에서도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신평은 나경원이 당대표 지지율 1위에 오르자 온갖 험한 말을 쏟아내더니 나경원이 사퇴한 후 안철수가 대신 1위에 오르자 이번에는 “안철수가 당 대표가 되면 윤석열 대통령이 국힘당을 탈당하고 신당을 차릴 수 있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신평의 이 말에 대통령실에서 아무런 반박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윤석열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할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이례적이고, 그런 말을 듣고도 비판 한 마디 못하는 국힘당 지도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집권여당이란 정부를 보조하고 때론 경계해야 하는데, 국힘당은 대통령실의 노예 상태로 전락해 있다. 당대표 선거에 윤석열이 노골적으로 개입해도 비판은커녕 초선들이 나서 비윤을 찍어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정계개편 속내 드러난 신평

윤석열 탈당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신평이 8일엔 “야당에서 여당으로 넘어올 의원들이 두 자리 수는 될 것이다.”라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사실상 정계 개편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역시 윤석열의 의중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엄청난 말을 신평 혼자 했다고 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신평은 "여든 야든 (정개개편에) 상당히 취약하다. 언제 어디서 정계개편의 신호탄이 울릴지 모르고 특히 야당이 더 취약하다"고 주장했다. 이 말은 민주당이 ‘이재명 사법 리스크’로 분열될 것이란 말이다.

신평은 이어서 "(민주당에 비대위가 들어서면) 야당 정치 세력을 다 포섭할 수 없는 그런 체제로 된다고 보여지며, 상당 부분은 여권으로 들어가거나 아니면 무소속으로 남을 것"이라고 민주당 분열을 조장했다.

신평의 말인즉 이재명이 기소되고 구속 영장이 청구되면 민주당이 분열할 것이고, 민주당 수박들 중 상당수가 국힘당으로 건너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필자가 오래 전부터 예상했던 것이긴 하지만, 윤석열의 멘토가 이 말을 함으로써 현실화되었다.

 

비윤 축출의 역설

그러나 국힘당 내에서 유승민, 이준석, 나경원, 안철수가 축출되거나 축출될 위기에 놓인 것을 고려할 때, 과연 민주당 내 수박들이 국힘당으로 가려할까? 자신들도 언젠가 저 신세가 될 것인데 하고 걱정하지 않겠는가?

민주당 내 소위 수박들이 국힘당으로 건너간들 차기 총선에서 당선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서울 강남3구와 영남은 윤핵관들이 모두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윤들이 축출되는 것을 보고 민주당 수박들도 겁을 먹고 국힘당에 가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것을 ‘비윤 축출의 역설’이라 하면 어떨까.

 

신평은 신돈인가, 정도전인가?

최근 신평의 말이 논란이 되자 신평에 대한 연구 아닌 연구가 시작되었다. 신평을 고려 말 공민왕 때 활약한 신돈으로 비유한 사람도 있고, 조선 건국의 밑그름을 그린 정도전이라 말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 신평은 신돈도 아니고 정도전도 아닌 그저 배신자에 불과하다. 신돈이나 정도전 같은 개혁적 면모도 없고 또 깜냥 자체가 모자란 사람이다.

고려말 공민왕이 등용시킨 신돈은 원래 승려로 처음엔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신돈은 신분이 승려였지만 신진 유학 세력을 등장시키고 과거제도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신돈은 원 침략시기에 불탄 성균관 건물을 복구하고 100명의 유생을 두었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도 그 개혁 정책에 따라 큰 인물이었다.

신돈이 과거제도를 개혁하자 좌주와 문생들이 결탁해 부정으로 합격자를 내는 폐단이 사라졌다. 신돈은 권문세가와 공신 자제들에게 베풀었던 벼슬길의 특혜도 없앴다. 오직 과거를 통해서만 벼슬길에 오르게 한 것이다. 과거제 개정은 기득권 세력의 팔다리를 자른 획기적인 조치였지만 그런 만큼 반발도 거셌다.

​신돈은 집권하면서 가장 먼저 최영을 비롯한 무장 세력을 축출하고 왕권을 강화했다. 아울러 기존 정치 세력 모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하였다. 또 신돈은 토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민왕 15년(1366)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 이 기구를 중심으로 부당하게 빼앗긴 토지와 강압에 의해 노비가 된 백성들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감한 개혁 작업을 추진했다.

 

​공민왕 신돈을 치다

공민왕과 신돈의 개혁정치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신돈 자신의 행실에 꼬투리가 잡힌 것이다. 신돈은 여자를 좋아하고 뇌물을 챙기는 데 급급했다. 기득권 세력은 신돈의 이러한 부적절한 행실의 틈을 파고들어 공민왕과 이간질 시켰다.

신돈의 개혁정책이 권문세족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신돈은 왕이 되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모함을 받고 반역죄로 처형되었다. 신돈이 처형된 후 공민왕은 더 이상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그 자신도 결국 1374년에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

 

조선을 디자인한 정도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를 멸망시키자 정도전은 조선 건국의 밑그림을 그렸다. 당시 고려는 남쪽으로는 왜구가 끊임없이 침입하여 노략질을 일삼았고, 북쪽으로는 홍건적이 떼로 몰려와 민가를 들쑤셨다.

이성계는 당시 함흥에서 동북도도지휘사로 있으면서 침입해 온 야인을 물리쳐 큰 명성을 얻고 있었다. 정도전은 그런 이성계를 찾아 나섰다. 정도전은 한나라를 세운 한 고조의 군사 전략을 일러 준 장량(張良)을 자처했다.

이성계 일파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뒤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새 왕으로 세웠다. 이성계는 쿠데타에 성공하여 정권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이성계는 맨 먼저 정도전을 중앙으로 불러올려 대사성으로 삼았다.

새 왕조가 들어선 뒤 7년 동안 정도전은 눈부신 활동을 해냈다. 그는 맨 먼저 국가이념을 정립하고 통치체제를 정비했다. 또한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고 성리학을 정통의 교학(敎學)으로 내세웠고, 도교와 불교를 현실성이 적고 공허한 이론이라고 비판했다.

정도전은 개혁파였다. 그가 비록 고려 왕조를 저버렸지만 조선조로서는 정도전이 없는 새 나라의 건설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을 ‘장량’으로 비유했는데, 장량은 나라를 세운 뒤에 “사냥개는 써먹힌 뒤 늙으면 주인에게 잡아먹힌다”며 조정에서 물러나 야인생활을 한 탓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하지만 정도전은 끝까지 일을 벌이다가 이방원 세력에게 죽임을 당했다.

 

신돈도 정도전도 아닌 신평

신돈과 정도전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당대 기득권 세력을 축출하고 개혁에 앞장섰으나 결국 정적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이다. 혹자는 신평을 신돈에 비유한 사람이 있으나 어불성설이다. 그는 민주진영에서 보수꼴통 당으로 건너간 배신자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윤석열이 집권하고 있으니 지록위마 할 수 있으나 권력은 무상한 것, 말년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살 것이다. 어느 시대나 지도자의 눈을 흐리게 하고 아첨하는 간신이 있는 법이다. 최근 국정 지지율이 다시 내려간 이유가 뭐겠는가? 바로 신평 같은 자들이 권력에 줄서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항상 개국공신을 가장 먼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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