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안 칼럼] 돌담의 시학- 눈물로 지킨 이 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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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안 칼럼] 돌담의 시학- 눈물로 지킨 이 땅을!
  • 유영안 서울의소리 논설위원
  • 승인 2023.02.08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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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편제’ 촬영지 청산도 

지도를 펼치면 다도해 섬들이 마치 꽃씨처럼 펼쳐진 그곳에 내 고향 청산도가 있다. 영화 <서편제>, <그 섬에 가고 싶다>, 드라마 <봄의 왈츠>, <해신> 등으로 유명해져 지금은 관광객들이 몰려오지만 그 전엔 그야말로 절해고도의 조용한 섬이었다.

청산도는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지금도 황소가 쟁기를 끌고 해녀들이 ‘숨비소리’를 내뿜으며 바다에서 전복이며 소라를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천혜의 자연경관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될 정도로 아름답다.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다 하여 ‘청산도’라 명명되었다.

그곳에서 태어난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해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그려 친구들에게 보여주곤 했다. 담임선생님이 “넌 숙제는 안 해 오고 만화만 그리냐?”라고 핀잔을 주었지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미대에 가서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격동의 80년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다 보니 몇몇 대학을 전전하다가 국문과에 입학해 겨우 졸업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신춘문예에 시, 소설, 동화가 당선되었고, 수필과 시나리오는 현상문예에 당선되어 문학 5대 장르에 모두 등단했다. 하지만 ‘재주가 많으면 굶는다’는 말처럼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해 일가를 이루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엔 취업하지 못하고 어느 중견 교육 기업에 들어가 편집장을 하다가 대학 입시 학원에 뛰어들어 한때는 스타강사로 돈도 많이 벌었다. 하지만 2009년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허망하게 가신 후 모든 것을 접어버렸다.

그때부터 다음 아고라에 ‘coma’라는 닉네임으로 수구들을 질타하는 글을 쓰기 시작해 소위 스타 논객으로 통했다. 그러나 아고라가 일베의 방해로 폐쇄되자 문팬과 서울의 소리에 칼럼을 썼다. 지금까지 온라인에 발표한 글이 원고지로 치면 20만 장, 장편소설로 200권이다. 물론 대부분 원고료가 없는 글이라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필자도 인간인지라 간혹 고민해 본다. 과연 내가 하고 있는 이 길이 옳은 것인가, 하고 말이다.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고 자식들에게 잘해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내 오랜 조상은 조선 초기 예문관 대제학을 하다가 조정에 밉보여 지금의 청산도로 유배를 와 자손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소위 ‘저항기질’이 후손들에게도 흘러 할아버지는 사재를 털어 지금의 초등학교를 세워 교육에 앞장섰고,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하셨는데, 선거 때 한 번도 수구들을 지지하지 않았다. 형님은 경찰로 정년퇴직을 했고 조카들은 다수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 집안이야말로 정통 보수 집안인데, 선거 때는 단 한 사람도 수구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이 땅의 보수들은 보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땅의 보수들은 보수가 아니라 정신을 보수해야 할 집단이다. 진정한 보수란 친일파를 미워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하지만 이 땅의 보수들은 대부분 친일 매국 세력의 후예들이다.

▲ 청산도 마늘밭과 유채꽃   

내 고향 청산도에 가면 돌담이 아주 많다. 제멋대로 쌓여 있는 돌담 안에 집이 있고, 전답이 있다. 그 안에서 청보리가 자라고 마늘이 자란다. 그러다가 왜적이 침입하면 돌담은 무기가 된다. 지금도 청산도 곳곳에는 왜적을 막는 성이 허물어진 채 놓여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성을 점령하려 하자 아낙네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운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앞치마에 묻어 있는 피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 눈물로 지킨 이 땅이 지금 풍전등화다. 윤석열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분을 참지 못해 혼자 노랫말을 지어 불러보았다. 그렇게 지어진 노랫말이 어느덧 3500곡이고, 몇 년 전에는 노무현 대통령 추모 노랫말 시집 <밀짚모자 보고 싶은데>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고통의 시간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접 시위에 참여해 수구들을 응징하는 방법도 있고, 글을 써서 온라인에 발표하는 방법도 있으며, 혼자 담벼락에 대고 욕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TV를 안 본지 오래 된 필자는 하루 대부분을 글 쓰고, 책 읽고, 음악 듣고, 노랫말을 짓는 것으로 소일한다. 혹자는 팔자 좋다고 비웃겠지만 그것이 취미로서의 글쓰기나 독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기 위한 한 방법이니 즐거운 일만은 아니다.

김정희도 제주도로 유배 가서 그 유명한 ‘세한도’를 남겼고, 정약용도 강진으로 유배가서 지금의 여유당 전서를 남겼다. 이열치열, 그들은 고통을 이기는 방법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청산도 돌담길을 걷다 보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저 돌들이 왜적이 쳐들어올 때는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청산도에는 ‘범바위’가 있는데 내부에 엄청난 자기장이 흘러 왜적들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을 모티프로 하여 노랫말을 지어 보았다. 작곡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작곡해서 노래로 불러보기 바란다.

돌담의 시학(詩學)

모양도 다르고 크기도 다른 삶들이 길이도 다르고 높이도 다르게 놓여 있는 돌담 옆을 지나다 보면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청보리와 마늘이 고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숨구멍 하나 보이지 않는 도시의 아파트 벽과 시골 마을 돌담이 내준 틈은 검사의 공소장과 늙은 판사의 겸손한 판결문 같기도 해서 간혹 우두커니 서서 웃는 것이다.

 

진달래 피는 날엔 집을 나서

돌들이 멋대로 쌓여 있는

정겨운 시간 속을 걸어본다.

 

저 돌들은 어디서 살다가

무슨 뜻을 모아 모아서

이곳으로 와 담이 되었나.

 

진달래 피는 이 터전을

지키려 앞치마에 붉은 빛

흠뻑 품고 누워 있는가.

 

눈물로 지킨 이 땅에

던지다 다 못 던진 한들이

이렇게 착하게 쌓여 있는가.

 

눈물로 지킨 이 땅에

부르다 다 못 부른 노래가

이렇게 슬프게 쌓여 있는가.

우리가 눈물로 지킨 이 땅을 친일 매국 세력에게 내 줄 수는 없다. 동학혁명, 3.1운동, 4.19, 5.18, 6월 항쟁, 촛불 혁명을 보듯 우리 민족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유전자가 있다. 수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무기다.

▲ 청산도 청보리와 유채꽃  

착하게 쌓여 있는 돌담이 분연히 일어서면 검찰공화국이나 무속공화국 따위는 한 줌 재로 날아가고 말 것이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칼럼도 쓴다. 문득 내 고향 청산도에 가고 싶다. 봄이 되면 서울의 소리 가족들과 함께 청산도로 연수를 가면 어떨까? 4월에 청산도는 유채꽃이 그림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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