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저지른 폭력 33년만에 진실 드러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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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저지른 폭력 33년만에 진실 드러나다
  • 김용택 세종본부장
  • 승인 2022.12.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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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부터 '이혼종용'까지… "국가가 전교조 탄압"
반성 없이 되풀이되는 역사”이제 끝나야
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세종본부장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 과정에서 11개 국가기관이 총동원돼 전교조 참여 교사들을 탄압한 사실이 33년만에 드러났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진실화해위)는 8일 "국가가 전교조 참여 교사인 신청인들에 대해 사찰, 탈퇴 종용, 불법감금, 재판부 로비, 사법처리, 해직 등 전방위적 탄압을 가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진실화해위는 1년 7개월간의 조사를 거쳐, 당시 국가가 안기부(현 국가정보원) 총괄 기획 하에 문교부(현 교육부), 법무부,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경찰 등 11개 국가기관을 총동원한 전방위적인 탄압을 가했음을 밝혀낸 것이다.

진실화해위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989년 5월 28일 전교조가 창립되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전교조를 '체제 수호 차원'에서 인식하고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안기부 등 11개 국가기관이 총동원됐다. 문교부는 전교조 결성 전부터 교원 사찰 기구를 만들어 교사는 물론, 교사 가족과 학부모의 동향을 파악하고 이를 청와대와 정보·수사 기관에 제공했다. 전국적으로 제기됐던 전교조 교사들의 위헌법률심판 등에 대응하기 위해 헌법재판소와 법원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로비도 벌였다. 진실화해위가 입수한 1990년 '문교부 회의 결과 보고' 문서에는 "재판관 9명에 대한 집중 로비 활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안기부 등 전 국가기관을 동원해 사찰, 탈퇴 종용, 불법감금, 사법처리, 해직 등 전방위적 탄압으로 신청인들의 교육권, 사생활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 중대한 인권을 침해했으므로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며 "국가는 피해자들의 피해가 회복될 수 있도록 배·보상 등을 포함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전교조는 9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가족까지 빨갱이로 낙인찍혀 파탄에 이른 일상, 자식이 빨갱이라는 학교장의 청천벽력 같은 말에 이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린 아버지, 해직 이후 오랜 투쟁으로 지친 몸에 찾아온 병마와의 싸움, 국가 폭력은 1,500여 명 해직 교사의 삶에 아로새겨져 있다"고 밝혔다.

 

<1989년 해직교사 그들은 누구인가?>

1989년 5월 28일 결성 당시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들은 10만명에 가깝게 늘어났다. 당시 노태우대통령은 12·12쿠데타와 광주학살 세력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전방위적으로 전교조 가입교사를 찾아 해직 파면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문교부는 전교조 탈퇴교사 처리기준」을 마련, ▲오는 15일까지 노조 탈퇴 각서를 제출하는 교사는 일체 불문에 부치되 ▲16일 이후 각서 제출교사는 일단 징계위에 회부, 정상참작에만 반영하며 ▲각서를 제출한 뒤 실제로 노조활동을 계속하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으면서 노조활동을 할 경우에도 가입교사와 똑같이 파면·해임토록 전국 시·도 교위에 시달했다.

 

<전교조 교사 식별법을 아십니까?>

“촌지를 받지 않는 교사, 학급문집이나 학급신문을 내는 교사,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과 상담을 많이 하는 교사, 지나치게 열심히 가르치려는 교사, 반 학생들에게 자율성, 창의성을 높이려 하는 교사, 직원회의에서 원리 원칙을 따지며 발언하는 교사, 한겨레신문이나 경향신문을 보는 교사, 아이들한테 인기 많은 교사….”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창립됐을 때 당시 문교부(현재의 교육부)가 일선 교육청에 내려보낸 공문에 나온 ‘전교조 교사 식별법’이다. 전혀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정부가 공인해 준 셈이다. 전교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은 탈퇴만 하면 없던 일로 해주겠다며 온갖 회유와 협박으로 ‘탈퇴각서’에 날인할 것을 강요해 왔다.

그러나 끝내 교육자로서 ‘옳다고 한 일을 거짓각서를 쓴다는 것은 교사의 양심으로 불가능하다’며 거절한 교사 1,527명을 교단에서 몰아냈다. 교육대학살이라는 이 사건 후에도 사립학교에서 학원민주화를 하던 교사들, 재단의 눈엣가시가 된 교사 1800여명을 교단에서 몰아냈다.

<빨갱이로 내몰린 해직교사들의 비참한 삶>

광주학살의 주범 전두환·노태우는 국민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전교조 교사들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교단에서 내쫓긴 교사들은 삶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교사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운전기사로 혹은 막노동도 감수해야 했다.

더구나 중·고등학생의 자녀가 있는 해직교사들은 자녀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 아내까지 온갖 잡역에 내몰리기도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더 힘겨웠던 것은 동료교사나 이웃의 시선이었다. 하루아침에 빨갱이가 된 교사들은 전염병환자처럼 동료교사나 사회로부터 격리 당해야 했다.

1994년 3월, 전교조 해직교사들은 김영삼정부가 출범하면서 특별법을 제정, 신규채용이라는 형식을 거쳐 학교로 돌아온다. 경력을 인정받는 복직이 아니라 신규채용이었다. 해직기간의 호봉은 물론 임금이며 그 어떤 보상도 없는 교직경력 2~30년의 경력교사를 신규교사로 특별 채용한 것이다.

4년 6개월의 해직 기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더이상 견딜 수 없었던 해직교사들은 울며겨자먹기로 신규교사로 교단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교단으로 돌아 온 신규교사들은 '요주의 인물이요, 위험인물(?)'이었다. 교장이나 교감이 이들의 학교생활은 물론 사생활까지 샅샅이 감시하고 정보를 수집해 교육청에 보고 당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신규채용된 전교조 교사들은 그동안 수차례 원상회복을 위한 법적투쟁을 벌여왔으나 묵살당하고 2000년 1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 공포함으로서 ‘민주화운동관련자증서’를 받았다.

해직기간의 원상회복도 없이 달랑 종이 한장, 그게 전부였다. 그로부터 33년만인 2022년 12월 8일, 19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결성과 해직과정에서 공권력의 가해행위가 국가폭력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전교조교사. 그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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