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선 칼럼] 돌아온 룰라와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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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선 칼럼] 돌아온 룰라와 브라질
  • 이인선 자주시보 객원기자
  • 승인 2022.11.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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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30일(현지 시각) 저녁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이하 ‘룰라’)가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최종 당선되었다.

룰라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늘 우리는 세계에 ‘브라질이 돌아왔다’라고, ‘브라질이 따돌림받는 신세로 전락할 수 없는 큰 나라’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라며 “국제사회에서 굶주림과 기후변화에 맞선 싸움에 다시 참여할 준비가 돼 있으며, 특히 아마존 열대우림과 생태계를 보호하겠다”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룰라 당선인은 2002년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2006년 다시 한번 당선되면서 2010년까지 대통령직을 역임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당선되어 2023년 1월 1일부터 39대 브라질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한다.

 

이번 글에서는 브라질과 룰라의 행보를 살펴보며 시사점을 이야기한다.

 

혼란 속의 브라질

1959년 쿠바 혁명의 확산을 경계하던 미국은 브라질 군부를 지원하며 1964년 브라질에서 쿠데타를 단행케 했다. 그렇게 브라질은 21년간의 군부독재 시대로 흘러가게 되었다.

정권을 잡은 군부는 모든 정당을 해산한 후 여권의 국가개혁연맹당(ARENA)과 야권의 브라질 민주운동당(MDB)이라는 어용 정당을 만들어 브라질 국가의회(상·하원)를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와 협력해 반사회주의 연대를 형성했고 쿠바 혁명이 브라질까지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밀정보기관을 운영하는 등 압제 정책을 시행했다.

군부 세력은 누적된 정부 적자와 높은 물가 상승률을 잡기 위해 안정화 정책을 펼쳤다. 정책 시행 초반에는 연 90% 이상이던 물가 상승률이 20%대까지 하락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자본의 브라질 내 투자가 크게 늘어 마치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토지개혁이 단행되지 않고 특정 산업에만 중점 지원이 이뤄져 브라질 내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군부의 경제정책은 외국 자본 도입으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었기에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보다 수입해 외국에 내준 돈이 갈수록 증가했다. 그 결과 무역수지는 적자를 기록하고 브라질 경제는 국제경제의 변화에 매우 취약한 상황이 되었다.

브라질의 외채는 천문학적 수준으로 증가해 1963년 64억 달러였던 외채가 1980년에 무려 540억 달러로 늘어났다. 결국 2차 석유 위기와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침체로 인해 브라질 경제가 파국에 치닫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군부는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하지 못하고 1985년 정권을 민간에 이양하게 되었다. 다만 초대 민간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지 않고 군사정권 헌법에 따라 선거인단에 따라 간접선거로 뽑았다.

군부가 승인한 민간 대통령은 당시 브라질 국민의 존경을 받던 75세 원로 정치인인 탕크레두 네베스였다. 그러나 네베스 당선자는 취임을 앞두고 건강 악화로 쓰러져 38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사망했고 그의 대통령 자리는 조세 사르네이 부통령이 승계했다.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1989년 처음 치러진 대선에서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물가 상승률과 실업을 해결해 브라질 경제를 현대화시키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페르난두 콜로르(1989년 당시 39세)가 당선되었다. 콜로르 대통령은 화폐개혁, 민영화, 정부지출 감소 등의 안정화 정책을 펼쳤지만 불행하게도 희망에 부푼 브라질 국민을 기다리고 있던 현실은 연 1천%가 넘는 물가 상승률과 실업이었다. 정부의 방만한 행정과 소모적인 정치투쟁만 이어질 뿐 경제 개혁에 필요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인은 없었다.

콜로르 대통령은 결국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가 밝혀지면서 1992년 국가의회에 의해 탄핵당했다.

▲ 1981~1995년 브라질 물가 상승률.
▲ 1981~1995년 브라질 물가 상승률.

콜로르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이타마르 프랑쿠 부통령은 1994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페르난두 엔히키 카르도주와 ‘헤알 계획안(Real Plan)’을 마련했다. 헤알 계획안은 연간 누적 물가 상승률이 5천%를 넘는 비상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미국 달러화와의 교환 비율을 1:1로 묶는 고정환율제(특정 외화에 대한 환율을 일정 수준에 고정하는 제도)를 바탕으로 오늘날 브라질 화폐인 헤알화를 새 통화로 도입하는 방안이었다. 헤알 계획안은 물가 상승률 억제, 시장 개방 확대, 고금리 등 3가지를 핵심 내용으로 했다.

헤알 계획안은 성공적이었다. 1994년 초반만 해도 월평균 43%에 달하던 물가 상승률이 1995년에 1~2%로 급격히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기적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카르도주 재무장관은 1995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카르도주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후 브라질을 이끈 사람은, 최근 브라질 대통령으로 세 번째 당선된 룰라였다.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

▲ 2003년 1월 1일 플라날토 대통령궁에서 룰라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카르도주 전 대통령과 부인(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이 함께 있는 모습.
▲ 2003년 1월 1일 플라날토 대통령궁에서 룰라 대통령(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 카르도주 전 대통령과 부인(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이 함께 있는 모습.

브라질에서 군부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던 무렵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대변해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는 인물이 바로 룰라였다.

룰라는 북동부 지역 빈민가에서 태어나 금속공장 선반공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이끌며 전국적인 인물로 성장했고 대중으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룰라는 정당을 통해 사회 변혁을 이뤄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전국을 누비며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1980년 2월 10일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노동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정당’을 표방한 노동자당의 등장은 브라질 국민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았다. 소수 엘리트, 군부 세력만의 무대로 여겨졌던 정치권에서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세 차례의 대선 도전 실패 이후 2002년 대선에 다시 출마한 룰라는 공약으로 은행 국유화, 외채 동결, 토지개혁, 거대 언론에 대한 통제 등을 내걸었다. 그러면서 최대 섬유 기업을 소유한 주제 알렌카르 자유당 당수를 부통령 후보로 영입했는데 이는 진보 정권에 대한 재계와 금융시장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이에 노동자당을 비롯한 진보 진영에서 ‘변절자’라는 비판이 쏟아졌으나 룰라는 “선반공과 기업인이 나라를 함께 꾸려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룰라의 결정은 시장의 불안을 해소하며 대선 승리라는 결실을 맺었다.

프란시스쿠 올리베이라 브라질 사회학자는 룰라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을 두고 ‘네 번째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1880년대 노예제도 철폐와 군주제 폐지, 1930년대 국가산업화 정책에 이어 브라질에 거대한 변화를 가져온 네 번째 혁명적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룰라는 대통령직을 역임했던 2003~2010년 동안 식량 무상 지원, 최저임금 인상, 최저 생계비 지원 등 강력한 빈곤 퇴치 정책을 펼쳤다. 그 결과 8년 동안 모두 2,20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빈곤층의 소득 증가율은 부유층의 소득 증가율을 세배나 앞서 3,600만 명이 절대 빈곤에서 벗어났다.

룰라 정부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고 사회보장 정책을 확대했다. 기간시설 투자와 주택·은행신용·병원·교육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확대됨에 따라 민중을 위한 민주주의도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2.7%에서 7.5%로 급상승했다.

또한 룰라 대통령은 급진적 변화보다는 온건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는 점진적 변화, 다양한 계급 및 이해집단과의 사회적 대타협, 서방 세계와의 대화와 교섭 등 기존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개혁 노선을 펼쳤다. 이로 인해 서구에서는 수용할 수 있는 진보 정권의 바람직한 형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룰라 대통령은 서방에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룰라 대통령은 2010년 4월 8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를 방문한 아마두 투레니 투레 말리 대통령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선진국들은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보호무역주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룰라 대통령은 특히 “다자간 무역체제는 정당하고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우리의 일관된 입장”이라면서 “세계무역의 왜곡을 가져오는 선진국들의 농업 보조금을 철폐하는 것이 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말했다.

룰라 대통령은 2010년 4월 9일 브라질리아를 방문한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도 “브라질은 보호무역주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호무역주의는 이웃을 ‘불만족의 바다’에 팽개쳐둔 채 자기만 ‘번영의 섬’이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본의 투기성과 탐욕을 제어하는 방향으로 세계 경제·금융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룰라 대통령의 잇따른 보호무역주의 비판 발언은 미국 정부의 면화 보조금 지급 정책을 둘러싼 미국-브라질 간의 무역분쟁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룰라 대통령은 2006년 재선 후 2010년 임기를 마쳤을 때 지지율이 87%에 달했고 브라질은 신흥강대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에 합류할 정도로 성장했다.

반면 사회자유당을 중심으로 한 브라질 우익 세력들은 룰라 정부와 노동자당에 대한 공세를 가했다. 이들이 장악한 언론, 검찰, 사법부는 국가 정책의 수혜자를 부유층에서 민중으로 전환하려는 노동자당 정부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데 앞장섰다. 룰라 대통령의 후임자로 재임에 성공한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국가의회의 탄핵은 그 정점이었다.

브라질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는 다국적 기업을 앞세운 미국 등 외세도 한몫했다. 미국 정부의 관심사는 브라질에서 친노동 진보 정권의 연속 집권을 좌절시킴으로써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정권을 다시 완전한 친미·친자본 성향으로 장악하는 것이었다.

우익 세력은 2016년 4월 국가의회에서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하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을 내세워 정권을 장악했다. 테메르 부통령은 과거 군부 정권이 만든 어용 정당인 브라질 민주운동당에서 활동하며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대통령직을 맡으면서는 보건, 교육 등의 서민예산을 대폭 삭감한 데 이어 국영기업을 헐값에 팔아넘겼다.

이후 2018년 대선에서 사회자유당 후보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되어 2019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극우 성향의 군인 출신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브라질의 트럼프’를 자임하며 아마존 개발을 허용하고 혐오와 분열의 정치를 펴다가 국내외에서 냉대받고 있다.

한편, 노동자당은 호세프 대통령 탄핵 위기 이후 룰라를 다시 호명했고 룰라는 이를 받아들여 대선 준비에 돌입했지만 검찰 측이 터뜨린 부패 의혹으로 발목이 잡혔다. 국영 에너지기업과 관련해 건설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룰라는 2016년 3월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데 이어 2017년 7월 12일 9년 6개월 실형 선고를 받으면서 출마 자체가 좌절되었다. 이는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던 룰라와 노동자당을 사회적 악으로 낙인찍으려는 의도적인 일이었다. 판결 전날인 2017년 7월 11일 브라질 상원이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룰라는 2018년 2심에서도 12년 1개월의 징역형을 받으며 정치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 2019년 11월 연방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으로 1·2심 선고가 모두 무효가 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룰라 대통령 당선과 시사점

▲ 룰라와 보우소나루 대통령.
▲ 룰라와 보우소나루 대통령.

2022년 10월 30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룰라는 득표율 50.87%로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득표율 49.13%에 앞서 당선됐다고 브라질 최고 선거법원이 공식 발표했다.

이번 대선은 극심한 분열 속에서 치러졌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많은 사망자(68만 8천 명)를 내며 지지율이 급감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룰라 당선인의 낙승이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달 4일 1차 투표 결과 룰라 당선인은 과반을 득표하지 못해 결선을 치르게 됐고 결선투표에서 직선제 도입 이후 가장 적은 득표 차로 당선됐다. 

이는 보우소나루 대통령 집권 이후 국민 사이에서 분열의 씨앗이 싹 텄고 사실상 중도·보수 지지층이 총결집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룰라의 대통령이 당선된 것은 보우소나루와 기득권 세력의 동맹 집권 4년 동안 브라질에서 더욱 깊어진 분열과 경제 양극화,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에 크게 실망한 브라질 유권자가 변화의 열망을 표현한 결과로 풀이된다.

룰라는 앞서 집권기에 브라질의 빈곤율과 영아사망률을 크게 낮추고 빈곤층 교육을 확대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보우소나루 집권 4년 동안 코로나19 방역 실패와 신자유주의 정책 확대로 실업률과 물가가 치솟고 빈부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리우데자네이루의 한 투표소에서 룰라에게 표를 준 도서관 사서 스테파니(30)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룰라가 모든 문제의 해답은 아니지만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룰라는 선거운동 중 자신의 비전을 담은 ‘내일의 브라질을 위한 헌장’을 발표했다. 헌장은 “새 정부의 우선적 정책은 3,300만 명 국민을 굶주림으로부터, 그리고 1억 명 넘는 국민을 빈곤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국민이 빠짐없이 존엄한 삶을 누릴 때만 참다운 것이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 “재정 건전성, 사회적 책임, 지속가능한 발전의 조화는 가능하며 바로 그것이 우리가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2010년 룰라는 87%라는 경이적인 지지율로 퇴임하면서 “왜 부자를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면서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 하는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2년 뒤 다시 중책을 맡게 된 룰라는 여전히 그런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또한 룰라는 2022년 11월 16일 이집트에서 진행된 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에 참여해 “아마존 보호 없이는 전 세계 기후도 없다”라며 “브라질은 2030년까지 삼림 벌채와 생태계 파괴를 무(無)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브라질, 콩고민주공화국, 인도네시아 세 국가의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협의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세 국가 내 열대우림은 전 지구 열대우림의 52%를 차지한다.   

세 국가는 함께 삼림 벌채 감축에 나서고, 탄소배출권을 획득할 수 있는 레드플러스(REDD+) 등을 통해 선진국으로부터 열대우림 보호를 위한 지원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열대우림 국가들의 합심은 석유 생산 및 판매를 협업해서 관리하는 석유수출기구(OPEC)에 빗대 ‘열대우림을 위한 OPEC’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협의체의 탄생으로 브라질은 아마존 유역에 있는 다른 국가들과의 협력도 지속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자벨라 테익세이라 브라질 전 환경부 장관은 11월 14일 로이터 통신에 “브라질은 다른 국가들에 열대우림 보호를 함께하자고 촉구할 수 있는 국가”라며 룰라 정부가 브라질 인근 9개 국가와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 동맹을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도 룰라의 당선을 축하하고 우호·협력을 기대하는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다만 브라질의 친미 적폐 기득권이 여전히 국가의회, 언론, 사법부 등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룰라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브라질 곳곳에서 극우 세력들의 무장 시위가 더 거세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이번 대선을 두고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은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대형트럭으로 전국 주요 고속도로 및 상파울루 공항 등 300여 곳을 점거해 통행을 막기도 했다.

이러한 룰라 대통령과 브라질의 행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론, 검찰, 사법부를 장악한 보수 적폐 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은 대한민국의 상황은 과거 브라질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룰라 정부가 이를 돌파하려면 민중의 힘을 믿고 흔들림 없는 적폐 청산과 사회대개혁를 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이번에 돌아온 룰라와 브라질의 미래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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