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훈 칼럼] 미국은 왜 ‘북한 국적자’의 유학·취업을 승인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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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 미국은 왜 ‘북한 국적자’의 유학·취업을 승인했을까?
  • 박명훈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11.0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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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북한 국적자의 유학·취업 승인한 미국

북한과 강대강 대결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7년 만에 ‘북한 국적자’에게 미국 유학과 취업을 할 수 있는 학생 비자(F-1 VISA)를 발급하면서 그 의도를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9월 22일 미 국무부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국적별 비이민 비자 발급(Nonimmigrant Visa Issuances by nationality) 통계 자료에 따르면 북한 국적자 한 명에게 F-1 비자가 발급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국적자가 미국 유학과 취업이 가능한 F-1 비자를 받은 건 2015 회계연도(2014년 10월 1일∼2015년 9월 30일) 이후 7년 만이다.

F-1 비자를 발급받은 북한 국적자 한 명을 제외하고 지난 2021년 10월 1일부터 2022년 9월 30일까지 1년간 미국 비이민 비자를 발급받은 북한 국적자는 20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20명 가운데 19명은 미국 내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비수교국 정부 대표와 직계가족에게 발급되는 G3 비자, 나머지 한 명은 유엔 등 국제기구 직원과 직계가족에게 발급되는 G4 비자를 발급받았다.

지난 10월 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국적자가 미국 학생 비자(F-1)가 포함된 F 비자를 발급받은 것은 지난 2015 회계연도 이후 처음으로 매우 이례적”이라고 짚었다.

미 이민국은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사전에 입학 허가, 입학 허가 서류, 증빙서류 등을 보내도록 규정했다. 이후 외국인이 지원한 학교와 미 이민국에서 심사를 거쳐 비자를 신청한 외국인의 F-1 비자 발급 여부가 결정된다.

이런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거쳐 F-1 비자를 발급받은 사람은 미국 단기대학, 종합대학, 사립 고등학교 등에 입학해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또 미국에서 제한적이지만 취업도 할 수 있다.

F-1 비자로 미국에 들어온 사람은 대학 교정 내 업무(한 학기 기준 주 20시간 이내), 취업 연수, 경제 사정 곤란에 따른 고용, 국제기관이 후원하는 업무를 하는 등 미국 내에서 ‘정상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북한을 “상존하는 위협”으로 규정한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북한 국적자의 심사를 그 어떤 나라보다도 훨씬 까다롭게 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국적자가 F-1 비자를 신청했다는 이민국 보고를 받은 국무부, 백악관 국가안보실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현재까지 미 정부가 어떤 목적으로 북한 국적 학생의 F-1 비자를 허용했는지 그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은 미 정부와 당국에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대북 제재를 느슨하게 했을 가능성

자유아시아방송은 “이번에 북한 국적자에 발급된 미국 학생비자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를 위반한 것은 아닌지 여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미국에서 점차 대북 제재를 느슨히 하려는 것 아니겠냐는 시선도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미국의 움직임을 생각해보자. 지난 2018년 미국은 북미 정상이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상호 국가에 대사관 설립 등을 약속한 싱가포르 북미 합의를 걷어찼고, 이에 따른 파장이 지금의 북미 간 강대강 국면을 불렀다. 

현시점은 한미의 군사 행동에 북한이 곧바로 무력으로 맞대응하는 위험천만한 국면이다. 북한은 지난 9월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핵무력정책법을 채택해 “국가의 주요 전략적 대상이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을 받았거나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 선제적 핵무기 공격을 할 수 있다고 미국을 겨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갑자기 대북 정책을 뒤집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대사관 공식 비자 정보 웹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 8월 5일 미 국토안보부는 “전자여행 허가제(ESTA) 신청서에 신청자가 2011년 3월 1일 혹은 그 이후에 북한에 방문·체류한 적이 있는지 여부와 북한 국적을 포함한 이중국적자인지의 여부를 묻는 질문”을 추가했다.

또 미 국토안보부는 “2011년 3월 1일 혹은 그 이후에 북한에 방문한 적이 있는 개인의 경우 미국으로의 여행 시 비자 면제 프로그램(VWP)을 이용할 수 없다”라며 “비자 면제 여행에 대한 규제조항들은 비자 면제 가입국의 국적과 북한 국적을 동시 소지한 이중국적자에게도 적용된다”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 잠깐이라도 머무른 사람, 북한 국적을 가진 이중국적자를 대상으로 ‘미국 접근’을 철저히 경계·감시해왔다. 

정리하면 미국이 대북 제재 완화를 염두에 두고 북한 국적자에게 유학은 물론 취업까지 할 수 있는 F-1 비자를 승인해줬다는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아 보인다.

 

역공격과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

돌아보면 북한 국적자가 미국에 학생비자 발급을 신청했더라도 미 정부가 ‘미국의 위험’을 구실로 사전에 미국 유학을 차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예를 들면 지난 2016년 3월 미국이 주도해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된 안보리 결의 2270호는 북한 국적자에게 미사일 개발, 핵 활동 등과 관련한 교육과 훈련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위 제재를 활용하면 북한 국적자의 입국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 국적자의 미국 유학과 취업을 승인한 미국의 선택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아 보인다.

지난날 미 정부가 대북 제재와 관련한 발표에서 관련 기관·선박·개인의 이름까지 세세하게 공개했던 점을 돌아봐도, 7년 만에 북한 국적자에게 F-1 비자를 발급해놓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미 정부의 의도에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미국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북한 국적자에게 F-1 비자를 발급했는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역공격과 포섭, 물밑 탐색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기해 볼 수 있다. 북한의 의도를 모르는 미국이 마지못해 F-1 비자를 발급했을 가능성도 있을 법하다.

이런 일이 영화에서나 일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상대방을 겨눈 역공격과 포섭은 실제로 사용돼온 전략이다.

북한의 유학생을 받는 미국의 의도에 관해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2012년 2월 7일 「북한, 냉전 중에도 미국에 유학생 보냈다」라는 시사인 보도에서 “미국의 초청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북한 학생이 있을 것”이라며 “미국은 과거에도 제삼세계 국가의 인재를 육성한 경험이 있는데 이런 조치는 미국의 전략적인 행보로 보인다”라고 짚은 바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북한 국적 유학생에게 미국식 자본주의·자유주의를 주입해 포섭, 북한을 역공격·염탐하려 했을 수 있다는 취지다. 

위 보도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이후까지 적어도 수백여 명을 훌쩍 넘는 북한 국적자가 미국 여러 대학교에서 유학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리노이 대학의 학적 자료에 따르면 1967년부터 2011년까지 일리노이 대학에 등록한 북한 국적 유학생만 187명이었다고 하니, 북한 국적 유학생이 상당히 많았을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2001년 당시 한 해에만 미 국무부가 북한 국적 유학생에 발급한 F-1 비자만 300건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미국에 F-1 비자를 신청한 북한은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북한의 관점에서 볼 때 ’학문 연구‘를 위해 미국 유학을 추진했을 수 있다. 과거 북한은 미국과 거리를 두는 제삼세계뿐만 아니라 미국과 가까운 유럽 각국에도 유학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당과 집단의 결정을 중시하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2022년 들어 한 명만 미국에 F-1 비자를 신청했을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위험성도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상황인 만큼, 북한에서는 미국에 F-1 비자를 대거 신청했을 수 있다. 

북한의 의도가 파악이 안 된 미국의 관점에서는 어쩌면 ‘북한 국적자를 받아들이되 통제·포섭하기 쉽게 한 명에게만 F-1 비자를 발급하고 상황을 지켜보자’는 식의 전략을 세웠을 수 있다.

그런데 위 같은 미국의 전략이 만약 사실이라면 도무지 이룰 수 없는 망상, 헛된 희망에 가까워 보인다.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2020년 5월 28일 시사인에 보낸 「헛다리 짚는 CIA의 평양 분석」이라는 글에서 CIA 분석관 출신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이 한 북한 분석을 소개했다. 

문 이사장은 정 박 연구원이 ‘북한에 대한 비밀공작’, ‘국제사회의 정보를 북한 내부에 확산시키기’ 같은 전략을 통해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고 전했다. 올해 북한 국적자에게 F-1 비자를 내준 미국의 의도 또한 이런 차원에서 짐작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 이사장은 “CIA 출신과 정보분석이라는 이름을 달고 상당한 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미국의 대북정책은 앞으로도 계속 혼돈 속을 헤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미국이 CIA에서 군불을 지피는 ‘북한 붕괴론’ 등 철 지난 대북 적대 정책에 매달리면 결코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로 풀이된다.

문 이사장이 2년 전 미국을 향해 보낸 경고는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 현재 미국의 대북정책은 ‘혼돈’을 넘어 북한과의 대결에서 패배로 치닫고 있는 모양새다.

 

짙어지는 미국 패배 가능성

최근 들어 서방 진영에서는 북한을 주시해온 전문가와 유력지의 입에서 다음과 같이 미국의 패배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겼다.”

-지난 10월 9일(현지 시각) 앙킷 판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핵정책 담당 선임연구원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자.”

-10월 13일(현지 시각) 제프리 루이스 미국 미들베리 국제학연구소 동아시아 핵 비확산프로그램 책임자가 뉴욕타임스에 쓴 기고문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길밖에는 없다.”

-10월 2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 칼럼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결에서 패배한다는 가능성은 예전 같으면 도저히 상상조차 못 했을 일이다. 하지만 정전협정 이후 70년 가까이 지나 현실은 극적으로 바뀌었고,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자꾸만 미국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의 북한 유학생 허용 논란이 어떻게 번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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