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을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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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을 아세요?
  • 김용택 세종본부장
  • 승인 2022.08.25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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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세종본부장
김용택 세종본부장

박정희·전두환 정권시절인 1975년부터 1987년. 부산직할시 일대에 위치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가 형제복지원이다.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마저도 이제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부랑인(?) 3,146명을 수용가능한 우리나라 최대의 수용시설이었다.

전두환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부랑인 단속에 나서면서부터 직원의 구타로 원생 1명이 숨지고, 이에 35명이 탈출함으로써 내부의 인권유린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사건이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된 <부산 형제복지원>은 해마다 20억 원씩 국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는 사람이나 노숙자, 기차역에서 TV를 보고 있거나, 시장에서 음식을 먹던 무고한 시민 등을 부랑인으로 취급해 아무도 모르게 무조건 끌고 가서 불법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고 여성은 강간까지 당했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거나 심지어는 죽이고 암매장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12년 동안 무려 657명이 사망했고, 일부 시신은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기도 했다. 또한 원장 박인근(당시 58세)은 자신의 땅에 운전교습소를 만들기 위해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했고,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시켰다.

형제복지원에서 원생 생활을 하던 사람이 증언한 바에 의하면, 야산에 매장된 시신이 비가 오면 쓸려 내려오는데, 진흙과 사람의 살점이 뒤섞인 것을 아이들이 뭉쳐서 '쫀득이'라고 부르고 먹으며 허기를 주린 배를 채웠다는 증언도 나왔다. 형제복지원에 갇힌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70%가 가정이 있는 일반인이었고, 해운대에 놀러온 서울대생과 일본인도 있었다고 한다.

 

<35년만에 밝혀진 진실규명>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위원장 정근식)가 24일 형제복지원 사건은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피해자들은 1987년 진상조사단의 첫 조사 뒤 35년 만에 국가 기관으로부터 ‘피해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이날 진실화해위는 1차 진실규명 결정을 발표해 전체 형제복지원 진실규명 신청자 544명 중 작년 2월까지 접수된 191명을 대상으로 피해자로 인정하며, 국가에 공식적인 사과와 피해 회복 및 트라우마 치유 지원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국민 여러분께!” 저는 9세 때 12세의 누나와 형제복지원에 끌려 들어가 지옥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를 구해준 아버지조차 86년에 잡혀오셨습니다. 25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와 누나는 20여년째 정신병원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내무부훈령 410호로 인해 우리가족은 한순간에 박살이 났습니다. 여기에 다 쓸 수 없어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검색창에 형제복지원 검색해 보시면 주욱 나옵니다.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가 “사이코패스가 되지 않기 위해”라는 책 <살아남은 아이>를 썼다. 2013년 한종선씨는 국회 앞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며 들었던 손팻말에 쓴 글이다.

12년 동안 무려 657명이 사망하고, 사망자의 시신을 300~500만 원에 의과대학의 해부학 실습용으로 팔기도 했던 천인공로할 이 기막힌 사실을 밝히는데 35년이 걸리다니... 도대체 이런 나라가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주인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민주공화국’인가? 판검사라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밥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경찰이며 변호사들은 무얼하는 사람들인가?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한국판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사건’.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피해 등을 배상하라며 80억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백주대낮에 억울하게 끌려가 혹은 죽고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공권력 비호 아래 복지원에 강제로 끌려가 인간다운 삶을 박탈당했다”며 피해 회복을 호소했다.

형제복지원 서울·경기피해자협의회 소속 피해자 13명은 20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84억 3,000만원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이날 1차 소송에 이어, 원고를 추가로 모집해 2차 소송도 낼 예정이다. 국가 공권력에 의해 당했던 폭력을 어찌 돈 몇푼으로 보상이 되겠는가?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은 직업군인 출신으로, 1948년 국방경비대에 입대하여 4·19 혁명 당시 육군모부대 특무상사로 근무했다고 한다. 1960년 부산 감만동에 형제육아원(1971년부터는 형제원, 1979년에는 형제복지원으로 각각 변경)을 설립·운영하며 매년 20억 원에 달하는 국고를 지원받아 횡령, 착복하여 고급 아파트나 콘도, 골프 회원권을 샀다. 또한 자신의 땅에 목장과 운전교습소를 세운다며 원생들을 축사에 감금시키고 하루 10시간씩 강제 중노동을 시켰다.

짐승보다 못한 이런 인간이 1981년 국민포장 석류장, 1984년 국민훈장 동백장 등 온갖 수훈을 받고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상임위원까지 역임하기도 했다. 살인마 전두환은 “박 원장은 훌륭한 사람이오. 박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라고 했다고 한다.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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