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피의 역사... 5·18광주민중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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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피의 역사... 5·18광주민중항쟁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2.05.17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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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고을 광주를 빼놓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 역사는 4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부산과 마산 일원에서 터지기 시작한 부마항쟁은 유신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었다.

유신독재 박정희가 김재규 손에 사살당한 후 유신시대 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고 있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은 12.12 쿠데타로 군부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한다. 이후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신군부는 5·17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다.

<‘민주화의 봄’ 신군부세력에 짓밟히다>

전두환을 비롯한 하나회출신들이 정권을 장악하자 이에 항거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전두환일당들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한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숨죽이며 지켜보고 이을 때 오직 빛고을 광주는 계엄령상황에서도 멈출 줄 모르고 저항하게 된다.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 대한민국의 주인인 국민들은 동학혁명에서 3·1혁명, 그리고 4·3제주민중항쟁, 부마항쟁, 4·19혁명, 518광주민중항쟁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성난 파도처럼 멈출 줄 모르고 저항한다.

5·17 쿠데타에 항거한 5·18광주민중항쟁에 대해 학살과 진압으로 강경 대응했다. 전두환은 8월 22일에 육군 대장으로 예편, 유신헌법의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득펴율 93.1%로 대한민국 제 11대 대통령이 되었다.

권력의 맛을 본 이들은 1987년 4월 13일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호헌조치를 발표하자 민중의 분노는 민주화라는 역사의 요구를 안고 식을 줄 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개헌논의는 미루어지고 유신헌법에 따라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한다는 내용의 ‘호헌조치’는 불에 기름을 붓고 민중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전두환, 노태우시대로 이어지게 된다.

 

<빛고을 광주 피로 물들이다>

사망자 165명, 사망인정 실종자 70명, 사망비인정실종자 300여명, 상이후 사망자 376명, 부상자 3139명, 구속 및 구금 피해자 1589명, 사망자 수천명.... 전체 희생자 가운데 여성이 21.1%, 10세 이하의 어린이가 5.6%, 61세 이상의 노인이 6.2%를 차지하고 있다.

가해자인 전두환, 노태우일당은 김영삼정권 때 '12·12, 5·18 재판'으로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등의 혐의로 사형, 무기장역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반란수괴 반란모의 참여, 반란중요임무 종사, 상관살해, 내란수괴범 전두환 노태우 일당들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추징금 2205억원)과 징역 17년(추징금 2628억원)으로 감형되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7년 12월 이들을 모두 특별 사면시켰고 1998년 복권됨으로서 5·18광주항쟁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피고인 14명 모두 복역 8개월 만에 특별 사면됐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1995년 7월 검찰이 전두환의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에 대해 "5.18 고소·고발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지검 공안1부(장윤석 부장검사)는 18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이 사건 피의자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5개월 만에 신속하게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되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결국 전두환은 1심 법원에서 사형, 2심 법원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법도, 시민의 상식도 성공한 쿠데타 역시 처벌해야 한다는 데는 더 이상 이견이 없다.

 

<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 “(전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단임을 이뤄서 지금 대통령들은 5년만 되면 더 있으려고 생각을 못하지 않느냐” 1997년 법원이 2000억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했을 때 일부를 납부하고 "예금이 29만원밖에 없다"던 전두환은 그 후 골프를 치며 자서전을 쓰며 41년을 더 살다가 죽었다. 이런 전두환을 전씨의 아내 이순자는 남편 전씨를 ‘민주화의 아버지’라고 추켜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내란수괴 공범 중의 한 사람인 노태우는 같은 해 죽어 “12·12 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등과 관련된 역사적 과오가 있으나 직선제를 통한 선출 이후 남북기본합의서 등 북방정책으로 공헌하고, 형 선고 뒤 추징금을 납부한 노력 등이 고려”했다며 촛불정부 김부겸 국무총리가 국가장 장례위원장을,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국가장으로 치러졌다. 학살자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군사반란의 주모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나라가 민주공화국인가?

 

오 광주여! 민주주의여....

<광주항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항쟁은 처음부터 ‘민주화운동’이니 ‘5·18광주항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5·18이 재조명되었던 1996년, 대법원은 계엄군의 사실상의 국헌문란의 폭동행위로 간주했다. 심지어 지만원씨는 “북한이 600명의 특수부대를 침투시켜 광주를 점거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으며 시위를 지휘하고 계엄군을 폭행했다”고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언론은 없었다. 대다수 언론은 계엄군이 1980년 광주 시민들을 폭력 진압했을 때 현장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계엄사령부 등 당국 발표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 전두환 신군부는 모든 언론 매체에 계엄군의 검열이란 재갈을 물려 국민의 눈과 귀를 막기도 했지만 스스로 알아서 학살자의 비위를 맞췄다.

사진출처 : canadaazumma
사진출처 : canadaazumma

1980년 5·18광주항쟁은 1988년 제6공화국 출범 직후 국회에서 '무장 폭도들의 난동'에서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식 규정되고, 1988년 11월 사건 규명을 위한 국회청문회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에는 '5․18 특별법' 제정, 1997년 5월 18일에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저항권으로 인정되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에 이런다.

전두환은 12·12군사반란 후 스스로 ‘건국훈장대한민국장, 태극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일지무공훈장, 보국훈장 삼일장, 보국훈장 천수장, 보국훈장 국선장, 수교훈장 광화대장’... 과 같은 셀프훈장을 받는다. 그를 사모하는 사람들이 전사모를 만들고 그의 고향 합천에는 국민의 세금으로 민든 일해공원이 그대로 남아 있고 대전현충원에 걸린 현판은 42년이 지난 이제야 교체됐다.

 

<“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 법원은 광주학살 피의자 58명 전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려 풀려났지만, 문민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형→무기징역→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살인마 전두환은 그 후 골프를 치러 다니면서 회고록을 쓰며 여생을 즐기며 살다 지난 해 11원 23일 9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놀랍게도 살이마의 아내 이순자는 “내 남편은 민주주의 아버지”라며 공공연하게 떠벌이고 다니기도 했다.

 

<광주항쟁의 전개과정>

오늘은 5·18광주 민중항쟁 42주년이 되는 날이다. 광주지역을 피로 물들였던 42년 전 오늘 광주. 광주민주화운동, 광주항쟁...정도로 알려진 5·18광주민중항쟁의 피해자는 있어도 가해자는 없다. 학살자도 전두환, 노태우정도로 알고 있을 뿐,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대부분의 학살자들은 호의호식하며 잘살고 있다. 5·18 유공자단체를 ‘괴물집단’이니 ‘폭동’이라고 막말을 쏟아 붓던 사람들은 아직도 대한민국 제 1야당에 몸담고 있고 5·18을 폄훼하던 사람이 당대표를 맡고 있다.

사진출처 : canadaazumma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윤석열은 후보 유세에서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광주 민주화운동)만 빼면 잘못한 부분이 그런 부분이 있지만,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정의와 공정과 상식을 말하면서 학살자 전두환을 추켜세우고 군사반란의 우두머리 박정희를 따라 배우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유신정권에 복무하고 전두환정권에 몸담았던 학살의 공범자들이 큰소리치며 사는 나라에 민주주의와 정의는 어디 있는가?

 

<“5·18만 빼면 정치를 잘했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장윤석 당시 부장검사는 인사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검찰 조직을 떠났지만, 이듬해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 이후 18대, 19대 연속으로 금뱃지를 달며 3선 의원 자리에까지 올랐다. 장윤석검사뿐만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에 충성을 바쳤던, 검찰 조직 인사 상당수가 정계에 입문해 금뱃지를 달고 "전두환 전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했다는 분들이 많다"는 사람이 피흘려 지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의 후예들은 이름만 ‘국민으로힘’으로 바꿔 검찰공화국을 수호하겠다며 ‘검수완박(?)’에 저항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가?

 

‘5월의 정신’이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제42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피로써 지켜낸 오월의 정신은 국민 통합의 주춧돌”이라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라고 했다.

윤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사에서 '통합'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의식한 듯, 이날 6분 분량의 기념사에서는 통합을 두 차례 거론했다. 5월의 정신이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이라니 헌법 어느 조항 몇조에 그런 정신이 있는지 알 수 없다.

6분동안의 기념사에서 두차례나 언급한 ‘통합’이란 ‘하나로 모아 합치는 것’을 뜻한다. 통합이니 사회통합이란 말을 가장 많이 한 대통령은 전두환이나 노태우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사회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했고, 노태우는 한술 더 떠서 지구촌 '화합의 場'을 만든다는 명분으로 88 올림픽 유치했다. 문재인대통령도 지난해 말 ‘국민 통합’이라는 대의와 박근혜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해 특별사면했다. 사회통합이 이루어졌는가?

‘사회통합’이란 ‘이질적이고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지는 사회 구성원이 정체성을 갖도록 통합하는 일’이다. 역대대통령 특히 정당성이 부족한 대통령일수록 강조한 ‘사회통합’은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갈등과 대립이 폭동과 소요로 나타나는 것을 막기 위해 꺼내든 카드다. 대한민국을 ‘갈등 공화국’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갈등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떤 특징이 있을까? 갈등을 불러온 가장 큰 이유는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군사반란을 일으키거나 친부자 정책으로 나타난 양극화 그리고 ‘ 5·18광주민중항쟁을 5·18 폭동'으로 만든 정치인들이 만든 결과다.

5·16을 혁명이라고 하고 5·18광중민중항쟁을 폭동이라고 갈라치기를 한 사람이 누군가? 우리사회의 양극화와 차별화를 불러온 기득권세력들이 만든 사회적 갈등을 대통령이 사회통합을 외친다고 해결되는가?

중산층이 몰락하고 소득불평등이 OECD 국가중 1위라는 오명을 두고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또 광주를 찾아 가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는 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의 철학"이라고 한다고 해서 갈등문제가 해결되는가? 우리나라 갈등은 민초들이 아닌 기득권세력 그리고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장악한 정당성이 없는 대통령이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만든 결과다.

 

<’사회적 갈등‘...누가 만들었나>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앞서 문재인 후보는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묘역은 물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했다. 이승만이 누군가? 주권자를 주인으로 섬기기는커녕 반민특위 무력화를 시도하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어 수많은 양식적인 지식인을 빵갱이를 만들어 처형한 사람이다. 4·3제주항쟁에서 수많은 인민을 학살하고 남한만이 유일한 합법정부를 만든 장본인이 이승만 아닌가?

부산으로 임시정부를 옮겨 장기집권을 위해 두차례나 개헌한 이유가 무엇인가? 6·25전쟁 중 ‘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10만 명에서 30만 명 이상, 혹은 최대 12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한 사람은 누군가? 자국민을 독가스로 집단학살한 이라크 후세인은 '반인륜범죄'로 사형을 당했지만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하와이로 피신했다 죽음으로 돌아온 그를 국립현충원에 모시고 역대 대통령들이 참배하며 대한민국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 문재인후보는 국립현충원의 이승만 묘역을 참배 후 방명록에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라고 쓰고 서울 동작구 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기 전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방명록에 적었다.

2012년 김대중·김영삼 대통령 묘소만을 참배했던 문 후보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묘소도 참배한 뒤 "역대 대통령들은 공과가 있었다. 우리가 안아야 할 우리의 역사고, 공과도 우리가 넘어야 할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1700만 촛불이 세운 문재인대통령은 당선 첫 행보로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과 함께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그는 "이 땅에서 좌우를 나누고 보수·진보를 나누는 분열의 이분법을 이제 쓰레기통으로 보내야 한다.

분열의 시대와 단호히 결별하고 정의로운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국론 분열과 역사 바로세우기는 어느 것이 먼저일까? 문재인대통령은 이승만의 한 일을 몰라서일까? 변호사 출신 문재인대통령이 이승만을 긍정하면 4·19혁명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몰라서일까?

<광주의 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이다>

한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만들고 양극화사회를 만들어 놓고 대통령일 취임사에서 혹은 기념식에서 통합을 외친다고 갈등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사회, 차별공화국을 덮어놓고 사회통합을 주장하면 갈등문제l 통합되는가? 5월의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정신이 아니고 불의에 저항하는 저항정신이다. 5·18항쟁으로 부상을 당한 분들에게 물어보자. 그들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12·12군사반란 세력들을 축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인지를...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로 시작한다.

헌법 전문 어디에 기득권의 자유, 재벌의 자유, 그리고 양극화와 차별을 정당화하라는 문구가 어디 있는가? 4·19민주이념과 518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은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이다. 헌법을 부정하는 ‘좋은게 좋고 우리가 남이가?’라는 패거리 문화는 518광주항쟁정신과는 적대적인 관계다. 불의에 분노하라고는 하지 못할망정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광주영령들을 욕되게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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