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166]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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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166] 미국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
  • 이형구 주권연구소 연구원
  • 승인 2022.02.23 08: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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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13년 3월 29일 공개한 사진. '미본토타격계획'이라고 적힌 작전도가 눈에 들어온다
▲북한이 2013년 3월 29일 공개한 사진. '미본토타격계획'이라고 적힌 작전도가 눈에 들어온다

2월 8일 북한 외무성은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굴종과 맹종으로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오늘의 세계에서 미국에 제 할 소리를 다 하며 당당히 맞서나가는 나라, 미국 본토를 사정권 안에 두고 미사일 시험까지 진행하여 거대한 진폭으로 세계를 진감시키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오직 우리 국가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발표를 보니 그동안 실제로 북한이 미국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1. 멸시, 조롱, 압박

1) 2017년 북미 반관반민 회담

2016~2017년 북한과 미국은 반관반민 대화를 진행했다. 북측에선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북미국장과 최강일 북미 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 참가자인 수전 디매지오 뉴아메리카재단 국장은 2017년 11월 13일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측이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미쳤는지, 혹은 단순히 미친 척 연기를 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라는 일화를 소개했다.

북측 인사가 정말 궁금해서 이런 질문을 한 건 아닐 것이다. 이는 상대방을 모욕한 것이다. 정부 끼리의 대화는 아니더라도 나름 공식적인 대화 자리인데 상대방의 정치지도자를 이렇게까지 조롱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강도 높은 조롱이다. 북한이 미국을 완전히 깔보고 있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행동이다.

이 질문에 미국 측 참가자들이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하지만, 알려진 바가 없다. 아마 매우 당혹스럽고 표정관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훗날 인터뷰를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을 때 미국 정부나 언론은 특별히 북한의 행위에 반발하지 않았다. 자신을 모욕했다며 화를 낼 것도 같은데 조용히 넘어갔다. 뒤에 소개하겠지만, 미국이 평소에도 북한에 워낙 모욕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적응한 것일까? 의아한 일이다.

2) 1993년 북미고위급회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93년 6월 2일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로 고위급회담을 열었다. 조선중앙통신에 논평을 싣기도 했던 재일동포 김명철은 저서 『김정일 한의 핵전략』에서 이 고위급회담 일화를 공개했다. 

소개에 앞서 당시 상황을 살펴보자. 1992~1994년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빠졌다. 미국은 북한 공격 날짜와 시간까지 정해놓고 주한미군 가족을 철수시키기까지 했다. 

전쟁위기가 고조된 건 핵문제 때문이었다.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관할 속에 영변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공방이 오가다 핵안전조치협정이 체결되고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졌으며 미국이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며 긴장이 얼마간 해소됐다.

그러나 곧 미국이 태도를 바꿨다. 안전조치협정에서 합의되지 않은 시설을 추가로 사찰해야겠다고 주장했으며 중단했던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했다.

북한은 미국이 핵안전조치협정에서 합의하지 않은 시설을 특별사찰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권침해이며 한미연합훈련을 재개함으로써 침략과 전쟁의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런 과정에서 1993년 6월 2일 북미고위급회담이 열린 것이다.

회의가 시작되자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북핵특사는 “(당시 북한이 선언한) NPT 탈퇴를 취소하십시오. 3일 이내에 취소하지 않으면 무력행사 카드를 배제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북한을 위협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장을 나가려 했다. 

이때 북측의 반응은 어땠을까? ‘갈루치 특사가 이대로 회의장을 나가면 큰일 난다’라며 저자세로 달랬을까? 그렇지 않았다.

북측 대표 중 한 사람이 이야기를 듣고, 김명철 씨의 표현에 따르면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갈루치 특사에게 볼펜을 던졌다. 그러자 북측 강석주 회담 대표는 “(북측 대표의 행동을) 이해하십시오. 오늘은 여기서 회의를 마친다고 발표합시다. 3일 후에 양국이 서로 선전포고를 하고 전쟁을 한판 벌여 봅시다”라고 말했다.

갈루치 특사는 이런 상황이 펼쳐질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기야 미국 대표인 자기한테 누군가가 볼펜을 던지며 미국에 전쟁을 해보자고 할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상상했겠는가. 의기양양하게 회의장을 나가려던 갈루치 특사는 오히려 당황하여 “아닙니다. 이 회의는 평화를 위한 회의입니다. 절대 깨지면 안 됩니다”라며 자리에 앉았다고 한다. 

▲제네바합의에 서명하는 갈루치 특사(왼쪽)와 강석주 전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제네바합의에 서명하는 갈루치 특사(왼쪽)와 강석주 전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3) 1976년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을 보자. 

사진출처=KBS
사진출처 : KBS

당시 미군은 판문점에 있는 미루나무의 가지를 자르는 작전을 폈다. 이에 북한군이 나타나 이 나무를 자르려면 정전협정에 따라 사전에 합의가 되어야 한다면서 미군을 저지했다. 북한군이 약 30분 동안 말렸으나 미군은 작업을 강행했다.

이때 북한군 장교는 섣불리 달려들면 미국을 상대로 큰 군사·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우려해 상부의 조치를 기다리며 일단 물러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북한군 장교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육탄전을 벌였다. 

미군은 나무를 베기 위해 가져온 도끼와 곤봉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전투 중 미군은 북한군에 무기를 빼앗기고 2명이 사망했다. 북한은 미군이 북한군에게 던진 도끼를 북한이 되던져 미군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미군은 데프콘2(전쟁 바로 직전 단계)를 선포하고 F-111 전략폭격기 20대, B-52H 전략폭격기 3대를 비롯한 전투기와 항공모함 미드웨이호를 한반도로 전개했다. 

이때 북한은 압박에 굴하지 않고 “군사분계선을 제2의 6.25전쟁 도발의 발화점으로 만들어보려고 피눈이 되어 날뛰고 있는 호전광들의 무모한 책동부터 단호히 제압해야 한다”라며 전군을 전투태세로 돌입시키면서 전면대응에 나섰다.

미국은 금방이라도 전쟁을 할 것 같이 무기를 끌어들였지만 북한을 공격하진 못했다. 베려다 실패한 미루나무를 마저 베는 것에 만족하고 돌아가야 했다.

4)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68년 1월 23일, 북한이 원산 앞바다에서 영해를 침범한 미군 첩보함 푸에블로호를 단속했다.

미국은 다른 나라의 영해를 수시로 침범하며 첩보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도 그 어떤 나라도 미군에게 대항하지 못했다. 푸에블로호는 아예 ‘공공연히 활발하게 정탐행위을 벌여 소련과 북한이 각각 어떻게 반응할지 확인”한다는 임무를 받고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

푸에블로호는 먼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련 기지를 정찰했다. 소련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푸에블로호는 이어서 원산 앞 북한 영해를 침범했다. 북한은 달랐다. 거듭 경고해도 응하지 않자 북한 해군 7명이 푸에블로호에 올라 미군 1명을 사살하고 82명을 생포했으며 푸에블로호를 원산항으로 끌고 갔다.

푸에블로호 선원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자기는 미군 소속이라며 물러가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함정인 걸 알면 그냥 보내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턱도 없었다. 

미국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 항공모함 3척과 전함 25척, 각종 전투기 200대를 보내 승무원과 푸에블로호를 송환하라고 북한을 위협했다.

북한은 위협에 굴복하지 않았다. “미제국주의자들의 보복에는 보복으로, 전면전쟁에는 전면전쟁으로 대답할 것”이라며 ‘준전시상태’를 선포하였다. 전쟁을 할 테면 한번 해보자는 것이었다.

미국은 전쟁을 하지 못했다. “앞으로 다시는 어떠한 미국 함선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해에 침범하지 않도록 할 것을 확고히 담보”한다는 사과문을 쓰고 푸에블로호 선원을 송환받았다. 배는 끝내 돌려받지 못했다. 

북한은 동해에 있던 푸에블로호를 1998년 평양 대동강으로 옮겼다. 24시간 감시를 받는 북한이 어떻게 미국 몰래 푸에블로호를 옮겼는지 논란이 무성했다.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북한은 푸에블로호를 바다를 통해 한반도를 삥 돌아 옮겼다고 한다. 

2005년 7월 19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53m 길이의 큰 배가 움직이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면서 자몽만 한 플루토늄 덩어리의 밀반출을 막는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라면서 자조했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미국에 엄청난 굴욕을 가져다줬다. 미 해군 함정이 나포당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푸에블로호는 아직도 나포 상태에 있는 유일한 해군 함정이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가 훗날 미국 4성 장군에게 푸에블로호 이야기를 꺼내자 그 장군이 “그 빌어먹을 배 이야기는 하지 말라”라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건이었다.

 

5) “미제의 각을 뜨자”

북한은 2015년 6월 25일 발표한 국방위원회 성명에서 “미제의 각을 뜨기 위한 범세계적인 반미대결전에 떨쳐나설 것을 세계에 호소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각을 뜬다는 건 동물 고기를 조각내어 떼어낸다는 뜻이다. 이런 북한 지도부의 의지는 최근에 생긴 게 아니라 김일성 주석 시절부터 있었다. 

김일성 주석은 1960년 12월 체 게바라 쿠바 상공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에도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작은 나라들도 단결하여 도처에서 미제에 타격을 주고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 분산약화시켜야 합니다. 우리 조선식으로 말하면 미제의 각을 뜬다는 소리입니다”라고 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1968년 9월 7일 건국 20돌 기념 경축대회 보고에서도 “혁명하는 모든 나라 인민들이 세계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미국놈들의 팔다리도 뜯어내고 머리를 잘라버려야 합니다. 미제국주의자들이 강한 것 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여러 나라 인민들이 사면에서 공격을 들이대고 모두 달라붙어 각을 뜨면 그들은 맥을 추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 가서는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식 외교 자리에서 ‘미제의 각을 뜨자’라고 강도 높게 미국을 규탄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김일성 주석은 탄자니아 연합공화국, 캄보디아, 아랍연합공화국, 이라크 등의 수많은 인사들을 만나 이런 반미투쟁 방침을 설파했다고 한다.

6) 한국전쟁에서 무시당한 미군

북한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미국과 전면전을 벌였다. 북한군과 미군이 처음 조우전을 한 것은 7월 5일이었다. 이날 스미스 중령이 이끄는 특수임무부대는 오산에 도착해 전투태세를 갖추고 북한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세등등하게 세계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런 미군의 눈에 일제강점에서 벗어난 지 5년, 건국한 지 2년밖에 안 되는 동방의 작은 후진국 북한은 만만한 상대로 보였을 것이다. 스미스 부대는 “미국 사람 얼굴만 봐도 (북한군이) 도망칠 것”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얼마 후 북한군 선두에 선 전차부대가 스미스 부대 앞에 나타났다. 미군은 포격을 가하고 총을 쏘았다. 그런데 북한군 전차는 미군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방어선을 돌파해 지나갔다.

미군은 어리둥절했다. 미군은 자기가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자신을 한국군으로 착각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그래서 진군하는 북한군 전차 행렬에 대고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한국군이 아니다. 우리는 미군이다!”

하지만 전차부대는 그냥 지나가 버렸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이 철저히 무시당하는 굴욕을 겪은 것이다. 

스미스 부대는 그 후 1시간 뒤에 나타난 북한군 본진과의 전투에서 3시간 만에 부대원 540명 중 전사 120명, 포로 및 실종 36명, 부상자 120명을 내고 도망갔다. 스미스 부대 뒤에 배치되어 있던 미34연대는 참패 소식에 전의를 상실하고 천안으로 후퇴했다.

이렇게 북한이 미국을 깔보고 모욕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리영희 선생은 저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에서 엘리트로 꼽히던 미군 장성들이 주한미군 사령관에 임명되면 북한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지속해서 받는 바람에 하나 같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증상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북한은 미국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조롱하고 멸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참으로 특이한 모습이다.

2. 북한 태도의 의미

1)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선언

미국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압박하는 걸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미국은 스스로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하며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하지만,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무너져야 하는 나라이고 자신이 무너뜨리고야 말겠다는 표현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구축되어있다고들 한다.

냉전 시기 미국과 세계를 양분했던 소련도 미국의 눈치를 봤다.

1962년 소련은 쿠바에 미국을 겨냥한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다가 미국의 위협에 굴복해 철회했다. 소련은 자국 선박을 검사하게 했고 쿠바 사찰까지 수용했다. 소련은 푸에블로호 사건 때도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선원과 함정을 반환하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소련이 붕괴한 뒤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옐친 대통령 시기 러시아는 아예 친미로 돌아서 대북 압박에 적극 동참했다.

중국도 미국의 눈치를 보았다. 

소련이 변질되어 가자 중국과 소련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1969년 국경을 두고 전투를 하게 될 정도로 갈등이 심각해졌다.

중국과 소련 사이를 이간질한 건 미국이었다. 중국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미국의 농간에 넘어갔다. 중국의 몇몇 정치지도자들이 ‘미국이 중소갈등을 이용하고 소련도 중미 갈등을 이용하니 우리도 미소 갈등을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을 편 것이다. 그 결과 미국의 의도대로 중소갈등이 고조됐고 중국은 미국과 수교를 맺고 미국에 포섭됐다.

그후 중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2001년엔 미국의 정찰기가 영공을 침범하면서 중국 전투기와 충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 조종사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그 정찰기를 나포하고 승무원을 생포했다. 미국은 자기가 영공을 넘어놓고 오히려 중국의 잘못이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결국 중국은 승무원과 정찰기를 미국에 돌려주었다.

북한은 중국, 소련과 달랐다. 미국이 푸에블로호를 반환하라고 압박해도 북한은 전리품이라며 반환하지 않고 전승기념관에 전시해 자랑하고 있다. 북한은 1969년 4월 미군 정찰기 EC-121, 같은 해 8월 미군 OH-23 헬리콥터가 영공을 넘어오자 격추했다. 미국이 영해와 영공을 침범하면 가차 없이 공격한다. 

북한은 미국을 이길 수 없는 초강대국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미 제국주의를 싸워 없애버리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2) 체제우월감

미국을 멸시하는 건 북한이 미국이란 나라와 그들의 제도를 하찮게 여기고 얕잡아 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작년 12월 27일 북한 외무성은 홈페이지에 “인간 증오 사상과 약육강식의 생존 방식이 지배하고 극심한 인종차별, 무시무시한 폭력 범죄, 인신매매, 썩어빠진 갱 문화가 성행”하는 것이 미국의 실상이라며 “비인간적이고 반인민적인 자본주의 사회는 인민의 버림을 받기 마련이며 그런 사회가 사멸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법칙”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 12월 10일 노동신문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사회적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을 합법화하고 사람들을 돈밖에 모르는 속물로 만들어 인간적인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여기에 역사상 가장 반동적이고 반인민적인 사회인 자본주의가 사멸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본이유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 북한은 미국을 인간을 파멸시키는 나쁜 나라로, 미국의 체제를 사멸할 수밖에 없는 열등한 체제로 본다. 미국보다 자신의 사회주의 제도가 우월하며, 사회주의 승리는 진리이자 역사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북한이 미국을 쓰레기 보듯 경멸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을 이렇게 대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북한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3. 미국을 멸시하는 배경

오늘날 북한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하고 극초음속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 군사력이 강하다는 것을 공인받고 있다. 

하지만 과거 북한은 군사력, 경제력 모두 미국에 열세였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만주에 핵무기를 투하할지 고민하는 동안 북한은 소총이 부족해 전쟁에 차질을 빚을 지경이었다.

북한은 이렇게 국력 차이가 클 때도 미국을 멸시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북한에 가서 물어도 보고 자료를 찾으며 연구하면 그 배경이 뭔지 입증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저 유추해볼 따름이다.

1) 국민에 대한 믿음

북한이 미국을 멸시할 수 있는 배경엔 국민에 대한 믿음이 있는 듯하다. 

국민에 대한 믿음이란 지도부와 국민 사이의 일심단결이다. 북한이 미국과 맞서려면 전쟁위기, 경제제재 같은 난관을 이겨내야 한다. 지도부가 국민을 믿지 못하면 미국과 맞서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또한, 국민이 지도부를 믿지 못하면 지도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사회 혼란이 조성될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10월 10일 열병식 연설에서 “우리 인민이 당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따르며 우리 당의 위업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우리 당은 나라의 형편을 터놓으면 언제나 산악같이 일떠서는 인민을 믿고 인민에게 의거하여 모든 국난을 타개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그 사례로 “당에서 대고조를 호소하면 천리마를 타고 호응했”던 이야기를 하였다.

천리마운동은 김일성 주석이 1956년 12월 27일 강선제강소를 방문하면서 시작됐다. 김일성 주석은 “동무들이 다음 해에 강재를 1만 톤만 더 생산하면 나라가 허리를 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소했다. 이에 호응해 강선제강소 노동자들이 증산운동에 나서서 강재를 4만 톤 이상 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한다고 강조해왔다.

푸에블로호 사태 때 북한 청년들이 “수령의 명령 지시 관철에서 근위대, 결사대가 되자”라며 나섰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학생군사조직인 붉은청년근위대가 창설됐다. 1993년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을 땐 고등학교 예비졸업생과 대학생 150만 명이 입대를 청원했다고 한다. 

이러니 북한 지도부가 미국에 배짱을 부리며 맞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 국민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지 않았다면 핵무기가 없는 북한이 핵보유국인 미국을 이기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북한이 일심단결을 핵무기보다 강한 최강의 무기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2) 공격정신

북한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 여기는 듯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만일 우리가 제재 해제를 기다리며 자강력을 키우기 위한 투쟁에 박차를 가하지 않는다면 적들의 반동 공세는 더욱 거세여 질 것이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자고 덤벼들 것입니다”라며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라고 선언했다.

상황이 좋아지길 앉아서 기다리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뚫고 나가야 한다는 공격정신을 볼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나는 지금 죽음을 각오한 사람을 당할 자 이 세상에 없다는 필승의 신념과 배짱을 가지고 혁명과 건설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라고 정치신조를 밝힌 적이 있다. “원수들이 칼을 빼 들면 장검을 휘두르고 원수들이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대는 것이 우리 당의 신념이고 의지이며 배짱이다”라는 것이다.

이를 보면 공격정신은 북한이 대대로 이어오고 있는 기질이자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은 수세적인 자세를 가지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며 공격적으로 나서야 승기를 거둘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미국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압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경험

북한이 미국을 멸시할 수 있는 배경엔 실제로 북한이 미국을 이겨왔다는 경험도 한몫하는 듯하다. 한국전쟁의 경우, 북한은 정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로 부른다. 

반면 정전협정에 서명한 마크 클라크 미군 사령관은 “나는 역사상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최초의 미군 사령관이라는 영예롭지 못한 이름을 띠게 되었다”라고 한탄했다. 오마 넬슨 브래들리 미국 초대 합참의장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적과 진행한 잘못된 전쟁”이라고 한국전쟁을 평가했다. 

주한미군 제2여단 공병대대는 한국전쟁 패배의 치욕을 상기하기 위해 매해 부대기 전소식을 한다. 1950년 11월 29일에서 12월 1일, 당시 미2사단은 평안남도 군우리에서 병력 80%가 사상당하고 철수하는 대패를 겪었다. 당시 미군은 부대깃발을 빼앗길 것을 염려해 스스로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미국은 이 치욕을 잊지 말자며 당시 일을 재현하는 것이다. 

북한은 이겼다고 하고 미국은 졌다고 하니, 북한이 한국전쟁에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북한은 한국전쟁 외에도 푸에블로호 사건을 비롯해 북미대결 내내 자신이 승리해왔다고 자신한다. 반면 미국은 항상 자신들이 패배했다고 말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실패했다”라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후임인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북한이 사용할 수 있는 더 많은 폭탄과 미사일을 갖게 됐다”라면서 미국이 어느 때보다 덜 안전해졌다고 비판했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올해 1월 2일 “이란과 북한은 2021년을 잘 활용했지만, 미국은 그저 하릴없이 있었다”라며 바이든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는 오바마를, 바이든은 트럼프를, 존 볼턴은 바이든을 대북정책에서 실패했다고 비난한다. 그러니 미국은 언제 한번 북한과의 대결에서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고 항상 패배했다는 비난만 들은 셈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첫 핵시험을 단행했을 때 이미 “핵실험에 성공한 나라가 외교나 제재를 받고 핵무기를 포기한 전례가 없다”라며 미국의 대북정책을 ‘총체적이며 충격적인 실패’로 규정하고 북미 양자대화를 촉구했다. 북한이 스스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을 이길 수 없다는 선언이다.

북한은 미국과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미국을 멸시할 수 있는 심리적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4) 군사무기에서의 우세 확보

이제 북한은 무기 개발에서 미국을 추월했다.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 15형 발사에 성공하며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국가핵무력 완성을 기점으로 북한의 군사무기 역량이 미국을 추월하는 이른바 ‘골든크로스’가 일어났다고 평가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신년사에서 “미국은 결코 나와 우리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보지 못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미국은 2017년까지만 해도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라면서 북한을 위협했지만, 북한의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공화당 트럼프 정권과 민주당 바이든 정권 모두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로도 북한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초대형방사포, 극초음속미사일, 열차기동미사일 등 미국도 보유하지 못한, 혹은 미국이 방어할 수 없는 첨단무기를 쏟아내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2월 8일 “세계에는 200여 개 나라들이 있지만 수소탄, 대륙간탄도미사일, 극초음속미사일까지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불과 몇 개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세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북한, 중국, 러시아뿐이다. 미국은 북·중·러에 뒤처졌다.

북한 입장에선 지금 상황이 어떻게 보일까? 옛날에도 미국을 이겨왔는데, 이제 무기에서도 앞서면 미국을 완전히 압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북한은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부터 지금까지 지도체제와 정책이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민을 믿으면 승리한다는 독특한 철학과 특유의 공격정신도 이어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은 여기에 더해 승리의 경험을 축적했고 무기에서 우세를 차지하며 자신감도 얻었다. 그러면 북한의 미국 멸시는 앞으로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1년 조선노동당 8차 대회에서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겠다고 천명했다. 앞으로 북미대결이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화보 '조선' 2017년 12월호
▲화보 '조선' 2017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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