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27 이영진에게 전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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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7 이영진에게 전한 약속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2.2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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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과 친구 이영진이 하루는 좀 보자고 했다. 시국에 대해 몇 번 진지하게 토론했던 친구였다.

​우리가 가장 크게 부딪힌 부분은 ‘광주’였다. 1980년에 일어난 일을 두고 이영진은 ‘광주학살’이라고 했고, 나는 ‘광주폭동’이라고 했다. 광주폭동이라는 생각은 언론보도를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그즈음 교내에서는 자주 시위가 있었다. 학생들은 난간에 매달려 혹은 여럿이 스크럼을 짜고 이렇게 외쳤다.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을 처단하고, 군부독재 타도하자!”

​시위를 하던 학생들은 곧장 사복형사들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신입생인 나는 저런 학생들이 언론에서 말하는 의식화된 불순학생들인가 했을 뿐이다.

​나를 부른 이영진은 동아리방에서 광주학살 현장을 담은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비디오에는 군인들이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일상복을 입은 시민들이었다. 무장하지도 않은, 내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사람들. 그런 시민을 무장한 계엄군이 잔인하게 죽이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고 믿기지 않았다. 폭도는 광주시민이 아니라 군부독재 정권이었다. 내 안에서 의식의 껍데기가 깨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며칠 동안 영상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가 어떻게 전두환 정권에, 언론에 속았는지를 생각하면 창피하고 화가 났다.

​분노가 지나간 뒤에는 고립된 채로 싸워야 했던 광주시민들에게 마음이 가닿았다. 가족과 친구, 이웃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던 슬픔이 떠올랐고, 죽음을 각오하고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용기와 신념을 생각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이윽고 이영진은 내게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활동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문득 되물었다.

​“넌 노동자들 한 달 월급이 얼만지 알아?”

​시위하는 학생들이 ‘노동삼권 보장하라’고 구호를 외칠 때, 속으로 노동에 대해 뭘 안다고 ‘노동삼권’ 운운하나 생각하던 나였다.

의외로 이영진은 제대로 된 대답을 했다. 알고 보니 그도 가난한 집안의 학생이었고 주변 친구들이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또 물었다.

​“집안 형편이 그러면 데모하면 안 되지 않아?”

“죽은 사람도 많은데 뭐...”

​이영진은 광주에서 죽은 사람들을 말하고 있었다.

​“야, 넌 공부하고 운동 같은 건 부잣집 애들이 좀 하면 안 되냐?”

​나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사이로 긴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내가 대답했다.

​“지금은 어려워. 미안해. 하지만 사법고시 붙은 다음에 판검사 안 하고 변호사 돼서 그때 함께 할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일할 거야. 이건 내 약속이야.”

​약자들에게 힘이 되겠다는 건 법대에 붙은 뒤 일기장에 써 내려간 결심이기도 했다.

​이영진은 그때의 내 약속을 믿었을까?

내가 변호사 개업 1년 뒤부터 합류해 지금까지도 나와 함께하는 이영진은 이렇게 말했다.

​“재명이는 명석한데다 공장노동자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아서 계속 주목했죠. 재명이의 대답을 듣고 정말 그럴까, 의구심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저는 믿었어요.

재명이가 약속 안 지키는 친구들을 무척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안 할 거면 난 못해, 난 안 해, 틀림없이 이렇게 얘기했을 친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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