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26 광치령, 한계령, 소청봉과 비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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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26 광치령, 한계령, 소청봉과 비선대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2.27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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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첫 학기는 대충 보낸 하루에 대한 자책과 내일부터는 공부에 매진하겠다는 다짐 사이에서 끝났다. 일곱 식구 복닥거리는 단칸방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았고, 동기들보다 한 살 일찍 대학에 들어온 나는 사법고시도 3학년에야 볼 수 있었다.

​졸업정원제에 반영하는 성적도 2학년부터 적용됐다. 문득 이것은 ‘1학년 때는 놀도록 하라’는 어떤 초자연적 명령이 아닐까 하며 합리화에 골몰했다.

​결국 여름방학을 맞아 여행이란 걸 해보자 결정했다. 수학여행을 빼면 삶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내게 여행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친구 심정운이에게 말하니 적극 반겼다.

우리는 교양과목 교재는 한 권만 사서 돌려보며 책값을 아꼈다. 그렇게 모은 돈을 몽땅 털어 강원도로 떠나기로 했다. 1만4천원을 들여 낚싯대와 배낭, 싸구려 농구화, 모자를 샀다.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고 경춘선을 탔다. 춘천에서 정운이네 큰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소양강에서 양구행 배를 탔다. 푸른 물을 가르며 달리는 뱃머리에 서 있으니 너무 좋았다. 대학생이란 이런 것인가 싶었다.

물론 영화 타이타닉의 레오처럼 ‘I`m the king of the world! (내가 세상의 왕이다)’를 외치진 않았다.

​그 배에서 자전거를 가지고 탄 학생 하나를 만났는데 뜻밖에 그도 중앙대 공대 1학년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제주도까지 갈 거라고 했다. 우리는 단박에 의기투합해 함께 여행하기로 했다.

​양구에서 인제로 가기로 했다. 광치령을 넘어야 했는데 고개 기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있었다. 군인들이 걸어서 넘기엔 너무 늦었다며 말렸지만 세 청춘을 막진 못했다.

​정상에 도착했을 땐 밤 10시가 넘었다. 지나온 길은 달빛 아래 아득했고 가야 할 길 위로는 밤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밤새 광치령을 넘었고, 여행은 외설악과 한계령, 소청봉과 비선대로 이어졌다. 소청봉과 비선대는 싸구려 농구화 때문에 물집이 잡혀 맨발로 올랐다.

​여행은 삶의 가장 훌륭한 학교다.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이 기다리고, 내리막을 가면 다시 오르막이 있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다.

고개를 넘으면 새로운 세상이, 어쩌면 정상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에 다시 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희망은 우리를 견디게 하고, 비용을 요구하지 않아 만인에게 공평하다.

​광치령을 밤새 걸어서 넘을 때 산이 구름에 가리지 않고 그 모든 골짜기를 드러냈다면 엄두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혹자는 내가 두려움을 모른다는데 맞지 않는 얘기다.

나는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배웠을 뿐이다.

​내려가면 반드시 올라가고, 또 골이 깊어야 산이 높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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