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17 ‘싸움닭’과 ‘무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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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17 ‘싸움닭’과 ‘무던이’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2.27 05: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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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될 거라는 자기확신이 있었다. 잘 될 것이니 도전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반드시 정규대학에 가겠다는 생각으로 학원에 보내달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내 기세가 평소와 다르다 느꼈는지 아버지는 그달 안에 다시 취업한다는 조건으로 학원에 다니는 것을 허락했다. 하지만 학원에 다니는 와중에도 새벽마다 일어나 쓰레기는 치워야 했다.

​취업에 미적거리고 있었더니 아버지는 새로운 제안을 했다. 아예 밤낮으로 자기와 일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종일 쓰레기를 치우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 발등에 불 붙은 사람처럼 서둘러 일자리를 알아보았다.

​- 학원 갔다 와서 공부 좀 하려 했더니 아버지가 쓰레기 치우러 나오라고 한다. 신경질이 났다. 신발을 확 집어 던졌다. 아버지가 그 모양을 보더니 한참 나를 노려보았다. - 1980. 5. 29

​부당한 일을 당하면 나는 전투력이 강해진다. 아버지의 그런 압력이 나를 더 치열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재영이 형은 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명이는 기가 잘 죽지 않는 애였어요. 어려서부터 우리 형제 중에 아버지한테 말대꾸한 건 재명이 뿐이에요. 우린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무조건 따랐는데 재명이는 자기 할 말 다했어요. 그러다 맞기도 했지만 자기가 옳다고 여기면 맞으면서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죠.”

​나는 부당한 것을 참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재영이 형은 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도 말했다.

​“재명이가 좀처럼 기죽지 않고 고집이 세기도 했지만 언제나 밝아서 주변의 사랑은 가장 많이 받고 자랐어요. 어릴 때 별명이 ‘무던이’였다니까요.”

​둘 다 나에 대한 이야기다. 맞아도 고집을 꺾지 않는 것도 나였고, 별명이 무던이였던 것도 나였다. 삶은 매우 복합적이다.

​아버지에 대한 내 감정도 양가적이었다. 비 오는 어느 새벽, 아버지와 쓰레기를 치우는데 급기야 일을 못할 정도로 빗줄기가 굵어졌다. 우리는 시장통 처마 밑에 쪼그리고 앉았다.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꼬박꼬박 조는데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가게 좌판에 누워 눈 좀 붙이라고 했다.

​새벽에 누가 깨웠다. 엄마였다. 흠뻑 젖은 작업복을 입고 오들오들 떨며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말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때 아버지는 희뿌연 여명 속에서 비를 맞으며 혼자 쓰레기를 치우고 있었다.

​“재명이 댈꼬 드감더.”

​엄마가 소리쳤다. 아버지가 천천히 돌아보더니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아버지의 그 모습이 문득 아렸다.

​생각하면 아픈 것들 투성이. 그래도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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