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ep.14 성일학원, 김창구 원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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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ep.14 성일학원, 김창구 원장님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2.02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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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무급 연장근무 하느라 학원에 가지 못하면 정운이와 나는 속이 탔다. 결국 조퇴를 해가며 학원에 가야 했다. 공장을 다니며 공부를 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보다 번번이 나를 절망에 빠뜨린 것은 아버지였다.

​학원에 다녀와 밤늦게 공부를 하면 아버지는 불빛이 너무 밝다고 타박했다. 또 한 번은 학원을 쉬었다고 학원비를 덜 내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전기세와 학원비를 너무나 아까워했다. 그러면 서럽고 원망스러워 눈물이 찍 고이곤 했다.

​그런 아버지가 학비를 대며 대학에 보내줄 리 없었다. 또 검정고시로는 고졸이어도 홍 대리가 될 수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더는 학원비를 달라 하고 싶지 않았다. 지친 나는 결국 두 달 다닌 단과학원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그만둔다고 하자 원장님이 불러 이유를 물었다. 성일학원 김창구 원장님이었다.

​“돈이 없습니다.”

원장님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돈 내지 말고 다녀.”

“왜요?”

“너 공부하고 싶잖아.”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공부해야지.”

공부하고 싶으니 공부하라는 말. 단순한 논리였다. 김창구 원장님이 덧붙였다.

​“재명이 넌 공부해야 될 놈이야. 넌 달라.”

​나는 가만히 앉아 그 말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캄캄한 골방에 한 줄기 빛이 비치는 듯했다. 김창구 원장님은 왜 나를 응원하는가? 가족도, 친구도 아닌데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신기했다. 세상으로부터 건너온 호의는 처음이어서 낯설었다.

​성일학원에서 무료로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이 여럿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한없이 감사한 일이었다. 내게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겨나고 있었다.

​이후로 슬프고 힘들 때 김창구 선생님을 떠올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겼다. 명문대에 입학하면 과외교사를 해 스스로 벌어 다닐 수 있다며 길을 안내해준 이도 김창구 선생님이었다.

​후에 사법고시 합격하고 찾아뵀다.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아주셨다. 그 눈물이 잊히질 않는다.

​보잘것없는 소년공을 귀히 여기고 아껴주셨던 김창구 선생님. 지금도 가끔씩, 이 세상에 안 계신 그분이 무척 그립다.

[이재명의 웹자서전] ep.15 심정운과 절교하기

 어느 날 정운이와 자취하는 친구로부터 정운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고입 검정고시 학원에서 만나 절친이 되고, 오리엔트 시계공장을 다니며 같이 대학에 들어가자는 다짐을 했던, 나의 작은 스승 같았던 그 정운이가... 또 노는 데 도가 텄다는 소문으로 유명한 소년공이랑 어울리며 술까지 마신다는 얘기도 들었다.

​충격적이었다. 배신감, 분노, 상실감 같은 것들이 뒤범벅이 돼 몰려왔다.

​그날 자취방에서 정운이를 기다렸다. 밤늦게 돌아온 정운이를 세워놓고 나는 정색을 하고 물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다닌다는 게 정말이야?”

정운이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이란 뜻이었다. 나는 말없이 정운이를 노려보았다.

“널 믿었는데... 너랑은 이제 절교다.”

​공장과 집에서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건 정운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둘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상의 반쪽을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에 가슴이 아렸다.

​술과 담배라니... 가난하다고 해서, 소년공으로 살아야 한다고 해서 망가질 권리는 없었다.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생이라고 지레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쓸쓸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운이의 방에 가지 않았다. 외롭고 힘들면 찾아가던 유일한 도피처였다. 친구들이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다. 그것은 정운이에 대한 내 무언의 압박이었다. 당시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 그건 정운이에 대한 나의 멸시, 아니지,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어떤 작가는 사랑은 무조건 주는 게 아니라고 했다. ‘사랑은 지각 있게 주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지각 있게 주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평안하게 해주는 것과 더불어 지각 있게 논쟁하고, 투쟁하고, 맞서고, 몰아대고, 밀고, 당기는 것이다’

​정운이에 대한 내 마음이 깊지 않았다면 그런 일탈쯤 별것 아닌 듯 봐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겐 같이 꿈꾸고 함께 노력했던 정운이가 더없이 소중했다. 절교는 내 사랑의 방식이었다. 술과 담배는 해로운 것이었고 나는 정운이를 원래의 밝고 성실한 아이로 돌아오게 할 의무가 있었다.

​미리 말하자면 내 목적은 달성됐다. 정운이는 다시 공부로 돌아왔고, 우리는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중앙대학교 법대와 공대에 나란히 합격했다. 대학시절 최초의 여행도 정운이와 함께했다.

​정운이는 그 당시의 나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재명이는 내가 술 먹고 담배 피우는 걸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어요. 사실 소년공들은 보통 술, 담배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든요. 어려서부터 공장 다니면서 형들한테 일찍 배우죠. 그런데 재명이는 내가 술, 담배 못하게 하려고 굉장히 애썼어요. 너 그렇게 하면 어떻게 공부해서 대학 가겠냐구요.”

​그리고는 안 해도 될 말까지 덧붙인다.

​“그랬던 녀석이 대학 가더니 나보다 술, 담배를 더하더라구요. 배신감 느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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