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웹자서전] 매 맞는 대양실업 폐업으로 오린엔트 공장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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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웹자서전] 매 맞는 대양실업 폐업으로 오린엔트 공장 입사
  • 충청메시지 조성우
  • 승인 2021.11.2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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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홍 대리 되기 vs 홍 대리 없는 세상 만들기
ep.13 퇴근길, 시 낭송하기

기적적으로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시험준비를 시작할 때 나는 알파벳도 몰랐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석 달 만에 영어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무리였는데, 아홉 과목 중 한 과목의 과락도 없이 합격했다.

​원래 영어는 다음 시험에 과목합격을 노릴 요량이었다. 그런 내게 영어선생님이 비책을 가르쳐줬다. ‘4지선다형 문제에선 긴 답이나 3번 보기가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덕분에 영어는 다 찍었음에도 45점이나 받았고 전과목 평균이 70점을 넘어 중졸자격을 얻었다. 확률의 과학을 벗어나는 이런 게 바로 기적이다!

​엄마와 형제들이 축하해주었다. 아버지도 조금 뿌듯하게 여기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단과 학원에 드나들자 아버지는 빨리 공장을 알아보라고 독촉했다.

​취업에 미적거리고 있으니 아버지는 새벽 3시에 나를 깨워 쓰레기 청소에 데려갔다. 상대원 시장통과 동네를 오르내리며 쓰레기를 수거하고 폐지와 고물을 골라내야 했다. 아침에 등교하는 여학생과 마주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려면 공장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홍 대리의 왕국으로 돌아갔다. 중졸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대양실업은 여전했다. 권투경기도, 빳따도... 한 번은 공장에서 소원수리를 받았는데, 순진한 소년공 한 명이 빳따와 권투경기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적어냈다. 다음날이 되자 홍 대리가 현장을 돌며 반장과 고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좀 잘하자아.”

​홍 대리의 그 말은 서늘했다. 소원수리에는 공장을 칭송하는 말만 있어야 했다. 분위기 파악 못한 그 민주적인 건의가 이제 막 참사를 만들어낼 참이었다.

​홍 대리가 떠나자 폭행이 시작됐다. 작업불량, 복장불량, 청소불량. 고참과 반장들은 온갖 이유를 들어 빳따를 휘둘렀다. 쓰나미처럼 한 차례 매타작이 지나간 다음, 홍 대리가 다시 등장했다. 그는 우아한 자세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공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폭력을 사주하고 행하는 자였다.

얻어터진 소년공들은 어떤 녀석이 그런 쓸데없는 걸 적어냈는지 서로 의심하며 눈을 부라렸다. 나도 다짐했다. 홍 대리처럼 고졸이 되어 손도 대지 않고 군림하는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분노와 억울함은 내 안에 그런 지옥도 만들어냈다.

​공장에서 맞는다는 얘기를 집엔 한 적이 없다. 나중엔 맞아서 갈비뼈에 금이 간 일도 있었다. 그때는 치료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알렸다. 재영이 형은 이렇게 말했다.

​“그때까지 나는 재명이가 그렇게 공장에서 맞고 다녔는지 까맣게 몰랐어요. 난 걔보다 먼저 공장에 들어갔지만 나이가 있어서 그렇게 맞지 않았죠. 재명이가 집에는 한 번도 그런 얘기를 안 하니까 전혀 몰랐어요.”

​홍 대리가 되겠다는 다짐과 달리, 나는 서서히 직접 때리는 반장이나 고참보다 그걸 용납하고 사주하는 상급자의 위선이 더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장과 공장장, 아니 홍 대리라도 마음만 먹으면 폭력은 없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폭력으로 유지되는 질서의 최대 수혜자였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달랐고 말과 행동이 달랐다. 앞에서는 소년공들을 때리지 말라고 했지만, 뒤에서는 더 많이 때리도록 부추겼다. 그들은 우아한 위선자들이었다. 약자에게 더 가혹했고 소년공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나빴다.

​결국 나의 목표는 천천히 수정돼 갔다. 홍 대리 되기가 아니라, ‘홍 대리들’이 없는 세상이어야 했다.

대양실업이 문을 닫았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낯선 공장을 기웃거려야 했다. 소년공을 괴롭히던 홍 대리와 반장들도 어깨를 떨어뜨리고 공장문을 나섰다.

​이번엔 제대로 된 공장에 들어가겠다는 다짐 덕분이었을까. 종업원이 2천명이 넘는 오리엔트 공장에 들어가게 됐다. 성남공단에서 넘버3에 드는 공장이었다.

거기엔 예상치 못한 행운도 기다리고 있었다. 고입 검정고시 학원을 함께 다녔던 친구 심정운을 만난 것이다. 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날부터 우리는 단짝이 되어 붙어 다녔다. 시들해졌던 공부 욕심도 살아났다. 고졸이 되어도 공장의 관리자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우리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자고 맹세했다. 그래서 이 지긋지긋한 공장에서 벗어나자고... 아주 멀리 반짝이는 별처럼 아득한 꿈이었지만 정운이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나란히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공부하려는 소년공들에게 야박하기는 오리엔트도 마찬가지였다. 쉬는 시간에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반장은 물론 동료들도 대놓고 싫어하며 구박했다.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 꿈 깨라고, 이 자식아!”

​그들은 내가 공장에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라 느꼈을지도 모른다. 감히 이곳이 아닌 저곳을 희망하는 이에 대한 질투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꿈꾸는 게 죄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수시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이들을 피해 혼자 작업하는 도금실로 옮겼다. 그곳에서 물량을 최대한 빨리 빼놓고 공부할 시간을 벌었다.

​삶에서 얻은 ‘유일한’ 특혜가 있다면 공부머리를 물려받았다는 것이다. 나는 물량 빼는 속도가 최고였고 불량률도 낮았다. 공장 다니며 석 달만에 중학과정 검정고시를 패스한 것도 그렇고... 물론 죽을 만큼 노력하기도 했지만...

​재영이 형은 초등학생 때 내가 병아리 키우는 것을 보며 이미 그런 싹수를 보았던 모양이다. 나는 기온에 따라 병아리 집에 땔 장작의 개수를 정했고, 먹이를 얼마나 줬는지, 병아리마다 상태가 어떤지 밤낮으로 살피고 기록까지 했다. 형은 이렇게 말한다.

​“병아리를 사주고 갔는데 완벽하게 키웠어요. 재명이가 막 일을 벌이고 저지르는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뭐든지 할 때는 철저히 준비하고, 빈틈없이 진행하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고, 옳지 않고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안 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동생들 데리고 20년을 한 방에서 살아봐서 잘 알아요.”

​공장에서 퇴근하는 길이면 정운이와 나는 공부 삼아 교과서에 나온 시를 외우곤 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그 고백은 맑고 깨끗해 보였다. 정운이와 나는 공장을 다니면서도 대학 입학을 꿈꿀 수 있었다.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신념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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