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반객위주(反客爲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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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반객위주(反客爲主)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21.08.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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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을 주인으로 바꾼다.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 (중국고전 연구가)

‘반객위주’의 본뜻은 주인이 손님 대접을 잘못하여 오히려 손님의 대접을 받는다는 뜻이다. 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작전하는 것을 ‘객’, 본국에서 방어하는 것을 ‘주’라고 한다. 두목(杜牧)은 손자의 공격과 방어에, 대한 주장을 해석하여 “아군이 주인이고 적이 손님일 때는 적의 양식을 끊고 퇴로를 지킨다. 만약 입장이 뒤바뀐 경우라면 그 군주를 공격한다.”고 했다. 주객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분석해보면, 거기에는 피동을 주동으로 변화시켜 전쟁의 주도권을 쟁취하는 용병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반객위주‘란 곧 피동적인 위치에서 투쟁을 할때 주동적인 위치를 차지해 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을 말한다. 동의어로 ’훤빈투주(喧賓鬪主)‘란 말이 있는데, 주인의 자리를 강탈한다는 뜻이다. 손님이란 지배를 받는 피동적인 지위로써 모든 것을 주인이 안배한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이 예의이다.

역설적으로 손님이 주인의 자리에 앉아 주인 노릇을 한다면, 주인은 손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기에 주권을 상실하게 된 꼴이 된다. 주인은 권리를 빼앗겨 꼭두각시 같은 입장이 되고 손님은 모든 권리를 얻어 주권을 행사하게 되는 주객전도를 의미한다.

‘반객위주’는 주동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방법으로서 투쟁에 있어서 최고의 원칙을 말한다. 주동적인 위치에 있을 때 대세를 장악할 수 있지 피동적인 입장으로는 남에게 항상 이용만 당하게 된다. 따라서 적이 우세하고 우군이 약한 상황일지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 주동적인 권리를 확보해야 한다.

무술(武術)에 ‘사로잡는 법(擒拿)’과 ‘사로잡혔다가 다시 사로잡는 법(反擒拿)’이 있는 것을 보면 주객의 세력다툼이 반복적으로 계속된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그 목적은 두말할 필요 없이 주도권을 확보하는데 있으며 이 주도권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의지대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된다.

주인에게 사역 당하는 자는 노예이고, 주인에게 대접받는 자는 빈객이다. 빈객 중에도 제 발로 설 수 없는 자(자기 기반을 닦지 못하는 자)는 잠시 머무는 손님이 되고, 제 발로 성 수 있는 자는 오래 머무는 손님이 된다. 손님이 오래 머물면서 일을 주관하지 못하면 천객(賤客)이 되지만, 일을 주관할 수 있으면 점차 수뇌부에 접근하여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끝내는 주인이 된다.

그러므로 ‘반객위주’의 형세는, 1차적으로 손님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어야 하고, 2차는 빈틈을 노려야 하고, 3차로 한 발을 들여놓아야 하며, 4차로 수뇌부를 장악해야 하며, 5차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주인이 되고 나서는 남의 군대를 편입시킨다. 이것이 바로 주도권을 잠식해가는 수법이다.

당(唐) 고조 이연(李淵)은 천하를 얻기 전에는 편지로 이밀(李密)을 극구 존숭하였지만 뒤에는 결국 이밀을 멸망시키고 말았다. 또한 한漢) 고조 유방은 자기의 세력이 항우의 상대가 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을 낮추어 항우를 섬김으로써 신뢰하도록 하면서 차츰 세력을 갉아 먹었다. 그리하여 해하에서의 한판, 승부에 항우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이밀의 경우 반객위주로 세력을 쌓았다가 역시 그 수법에 걸려 당 고조 이연에게 멸망당한 반객위주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수 양제의 폭정으로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양현감(楊玄感)을 도와 반란을 일으켰으나, 싸움에 패하여 붙들려가던 중 도망하여 와강체라는 곳에 웅거하는 반란군에게 피신하였다.

그곳에는 적양(翟讓)이 이끄는 만여 명의 군사가 있었는데, 같은 반란군으로 이밀을 빈객으로 맞이하였다. 적양과 대면한 이밀은 수 양제를 진시황의 아들 호해에 비유하고 적양을 한 고조에 비기면서 천하를 평정하여 창업주가 될 것을 기원하니, 적양은 마음이 흡족하여 더욱 융숭하게 대접했다.

와강채의 두령과 친밀한 관계를 맺은 그는 적양의 명성을 빌어 사방에 웅거하는 반란군을 휘하로 끌어들인 뒤 적양을 총 두령으로 받들었다. 또 어려운 식량사정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양과 함께 각각 군대를 이끌고 형양을 공격하였다. 형양이 포위되었다는 급보를 받은 수 양제는 장군 장수타(張須陀)에게 2만의 병력을 주어 구원하게 하였는데, 장수타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적양은 과거 그에게 혼이 난 적이 있었으므로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려고 하였다. 이밀은 이를 놓치지 않고 싸움을 부추겼다.

“장수타 따위를 겁내서야 어떻게 천하를 다투시겠습니까? 그는 비록 용맹은 있으나 지모가 없으니 두려워 할게 못됩니다.”

다른 장수들도 싸우기를 원하는지라 적양은 하는 수 없이 지휘권을 이밀에게 맡겼다. 이로써 수뇌부를 장악하게 된 이밀은 장수타와 정면 승부하는 기회를 적양에게 양보한다면서 그를 전면에 내보내고, 자신은 매복하고 있었다.

적양의 저지를 받은 장수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와강채로 쳐들어가니, 적양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본거지를 빼앗길 판이었다. 적양이 추격하자 장수타가 역공해왔고 장수타가 추격하자 적양이 역공하며, 일진일퇴가 여러 차례 계속되다가 드디어 매복한 지점까지 왔다. 일성포향이 울리며 대군이 내달아 장수타를 기습하니 수군은 갈팡질팡, 장수타는 말에서 떨어져 전사하고 말았다.

대승을 한 반란군 두령들은 적양을 밀쳐내고 이밀을 통령으로 받들었으며, 와강채의 이름도 이밀의 별호를 따 포산공채로 바꾸었다. 이로써 완벽한 반객위주가 이루어졌고 5단계의 과정도 교범대로 밟은 셈이다.

객이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주인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신하가 임금의 신임을 받지 못하면 어떤 좋은 정책이나 간언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신임 않는 신하의 정책 건의는 타국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사는 수도 있으며, 임금을 위한 간언도 자칫하면 미움을 사기에 족하다.

우선은 천덕꾸러기 객이 되지 않아야 하고, 다음은 자기의 기반을 가진 빈객이 되어야 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신임을 얻은 다음 수뇌부를 장악해야 한다. 이것은 적을 파괴하는 수순도 되지만 인간 생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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