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칼럼] 필공불수(必攻不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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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 칼럼] 필공불수(必攻不守)
  • 이정랑의 고전소통
  • 승인 2021.08.09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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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지키지 못하는 곳은 반드시 공격한다.

전국시대 군사 사상가들의 중요한 용병 사상이다. ‘필공불수’의 계략은 ‘손빈병법(孫臏兵法)’ ‘위왕문(威王問)’에 기록되어 있다. 대장 전기(田忌)와 손빈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자.

전기 : 상과 벌은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것입니까?

손빈 : 아닙니다. 상은 병사들을 격려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듭니다. 징벌은 군기를 정돈하며 상급자들을 존경하고 두려워하게 합니다. 이 모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전기 : 그렇다면 권(權)‧세(勢)‧모(謀)‧사(詐)가 가장 긴요한 것입니까?

손빈 : 아닙니다. 이른바 권술(權術)은 군대를 모이게 합니다. 형세(形勢)는 병사들로 하여 용감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게 합니다. 음모(陰謀)는 적이 예방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합니다. 변사(變詐)는 적을 곤경에 빠뜨립니다. 이 모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요소는 아닙니다.

전기 : (다소 신경질 적으로) 이 여섯 방면은 용병에 능한 자라면 늘 활용하는 것인데, 어째서 당신은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까?

손빈 : (참착하게) 적의 정세를 분석하고 지형을 연구하여 반드시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것, 등 이것은 장수로써 갖추어야 할 원칙입니다. ‘필공불수’의 전략을 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일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손빈은 ‘필공불수’를 그 어느 용병술보다 우위에 놓고 있다. 이른바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필공(必攻)’은 힘차게 공격하는 것, 또는 반드시 공격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불수(不守)’는 방어할 수 없는 곳, 다시 말해 적이 막지 못하거나 막을 수 없거나 허약한 곳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는 동시에 단 한 번의 타격으로 전체 국면에 변화가 초래될 수 있는 적의 급소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른바 ‘손자병법 ’허실편‘의 “공격하면 반드시 빼앗는 것은 적이 지키지 않는 곳을 공격하기 때문”이라든지, “튼튼한 곳을 피하고 허점을 친다” 등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 말이다 ’사기‘ ’손자오기열전‘에서 손자가 말하는 “급소인 목을 움켜쥐고 허를 찌른다”와 같은 말이다.

손빈은 당시의 역사적 조건하에서 ‘필공불수’라는 용병 사상을 제기했는데, 이것은 우선 작전 방식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필요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춘추시대 이전의 전차전 위주의 전투 방식이 전국시대 이후에는 보‧기병전 위주로 바뀐다. 이는 전쟁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혁이었다.

대규모 기동작전이 가능해짐에 따라 ‘필공불수’는 그 작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되었다. 이 이론은 우세를 차지하고 있는 쪽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열세에 놓인 쪽에 대해서도 기동성 있게 튼튼한 곳을 피하고 허점을 공격, 적을 흔들어 놓음으로써 불리한 국면을 승리의 국면으로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이것은 실로 전쟁 지휘술을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린 이론이었다.

‘필공불수’의 사상은 전쟁의 목적, 즉 자신을 보존하고 적을 소멸한다는 중요한 측면을 체현하고 있다. 적의 소멸을 으뜸으로 삼아 전쟁 지휘의 출발점과 귀결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전쟁에서 강자와 약자, 공격과 수비를 불문하고 적을 소멸해야 비로소 진정한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필공불수’의 정신은 적을 소멸시킨다는 한 가지 점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대단히 적극적이고 보편성을 갖춘 『손자병법』의 이 이론은 『손자병법』을 뒤이은 중요한 발전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손빈은 ‘필공불수’를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것’으로 보았다. 이 ‘필공불수’야 말로 정확한 공격지점의 선택, 즉 작전 전체의 승부‧안위‧승패‧주동 도는 피동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이 계략을 주요한 작전 방침으로 삼은 계릉(桂陵) 전투에서, 전기는 초나라에 대한 위의 공격을 풀기 위해 위나라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기로 하고 공격지점을 한단(邯鄲)으로 선택했다가 위나라 주력군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여기서 위군은 맞상대한다면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때 손빈은 전기에게 공격목표를 적의 빈틈이자 급소인 대량(大梁)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전기는 손빈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전세는 급격하게 변했다. 위나라 혜왕(惠王)은 대경실색하여 어쩔 줄 몰라 했고, 방연(龐涓)이 밤새 달려와 구원하려 했으나 이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기다리고 있던 제나라 군대에 의해 계릉에서 참패했다. 그야말로 ‘주객이 뒤바뀐’ ‘반객위주(反客爲主)’ 꼴이었다. 이 전투는 ’필공불수‘ 계략의 진수를 제대로 구현한 본보기였다.

전쟁사에서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자주 보인다. 228년, 제갈량은 촉군의 주력 6만을 거느리고 한중(漢中) 서쪽의 기산(祈山-지금의 감숙성 서화현 북쪽)을 나와 농우(隴右)로 진군했다. 초반에 촉군은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어, 농우의 천수(天水)‧남안(南安)‧안정(安定) 등 세 군이 잇달아 촉의 수중에 들어갔다.

관중지역 전체가 동요되기 시작했고, 위의 조조도 내심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위나라 명제(明帝) 조예(曺睿)는 급히 우장 장합(張郃)으로 하여금 보‧기병 5만을 거느리고 서쪽의 제갈량의 기세를 막도록 했다. 장합은 촉군의 주력군과 맞상대하지 않고 측면 날개 부분으로 곧장 쳐들어가 일거에 가정(街亭-지금의 감숙성 천수현 동남 가자구)을 점령했다.

가정을 빼앗긴 촉군은 측면과 후방으로부터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은 하는 수 없이 전군의 철수를 단행했고, 농우 지구는 다시 위의 수중에 들어갔다. 위군은 가볍게 위기 상황을 전환시켜, 잃었던 땅을 회복하고 방어를 강화할 수 있었다.

이는 촉군 쪽에서 보자면 깊은 교훈을 남긴 사례가 되었다. 마속이 제갈량의 통제에 따르지 않는 바람에 가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제갈량은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의 목을 베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는 바로 여기서 유래한다.

반면에 위나라, 입장에서는 장합이 공격지점을 정확하게 선택하여 ‘급소인 목을 움켜쥐고 공격’하는 ‘필공불수’를 펼친 셈이었다. 이런 사례들에서 볼 때 손빈이 강조한 ‘필공불수’가 참으로 ‘용병에서 가장 긴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용병 사상은 적극적이고 주동적이며 정확하다. 강자든 약자든, 공격이든 수비든 어느 경우에나 대단히 중요하게 작용하는 용병 사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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