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칼럼] 내일 6월 10일은 6월항쟁 34주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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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칼럼] 내일 6월 10일은 6월항쟁 34주년입니다
  • 김용택 참교육이야기
  • 승인 2021.06.09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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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민중항쟁...! 34년전, 당시 30대 청년이 지금 종심(從心)을 바라보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7년 5~6월은 나라가 온통 최루탄 가스로 뒤덥혀 퇴근시간이 되면 누가 모이자고 약속을 하지 않아도 같은 장소에서 만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하나가 되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 그리고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벌어집니다.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고, 1987년 12월 16일 직선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게 됩니다.

<6월항쟁은 왜 일어났을까?>

1979년 10·26 사건으로 17년간 독재정치를 해 오던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자, 새로 취임한 대통령 최규하는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힙니다. ‘서울의 봄’으로 일컫는 민주주의의 기쁨도 잠시, 전두환 등을 비롯한 신군부(하나회)가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후 전두환은 최규하를 로봇처럼 조종했고, 집권 시나리오에 따라 집권하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결국 1980년 전두환·노태우 신군부는 국민의 민주화열망과 5·18광주민중항쟁마저 유혈진압하고 살인마들이 집권하게 됩니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1987년 1월 13일 자정 무렵,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종철군은 하숙집에서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 수사관 6명에게 연행되어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를 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 연행을 당했습니다. 

취조실에 공안 당국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물었으나, 박종철은 순순히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경찰은 잔혹한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가하였고, 박종철은 끝내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11시 45분 경 중앙대 용산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의사가 검진했을 당시 이미 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고문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고 사망원인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2월 7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박종철군 범국민추도식" 및 도심 시위가 열리고, 이어 3월 3일에는 "박종철군 49재와 고문추방 국민대행진"과 함께 또 다른 시위가 벌어집니다. 이후 4월 2일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학부모 130여 명이 건국대학교 사태 등 시국관련 구속학생의 징계철회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전두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특별담화'를 통해 차질없이 대통령선거를 실시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는 호헌조치를 발표하게 됩니다.

 

<박종철 고문치사 폭로하다>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광주항쟁 7주년 미사에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음을 폭로하게 됩니다. 이에 제5공화국 전두환정권을 비판하던 국민들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에 크게 분노하게 되고,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이후 5월 23일 "박종철 고문살인은폐조작규탄 범국민대회 준비위원회"가 결성, 6월 9일 연세대학교 학생인 이한열이 학교 앞 시위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다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살인정권, 6·29선언으로 위기를 넘기다>

위기의식을 느낀 노태우는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통한 1988년 2월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한다. 대통령선거법 개정을 통한 공정한 경쟁 보장하고, 김대중의 사면복권과 시국관련 사범들의 석방, 인간존엄성 존중 및 기본인권 신장, 자유언론의 창달, 지방자치 및 교육자치 실시, 정당의 건전한 활동 보장. 과감한 사회정화조치의 단행...”는 내용의 6·29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순진한 국민들은 일면 ‘속이구선언’으로 불리는 이 6·29선언으로 승리에 도취해 뜨겁던 여름은 노태우의 당선과 김영삼의 유신잔당과 3당야합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역사의식은 어디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요, 주인인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 34년 전, 그 뜨겁던 민주화의 열망은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정권을 지나오면서 주권자인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이루어졌는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정부는 국민의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헌법 34조가 보장하는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누리고 사는가? 다시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 볼 줄 모르는 주권자들은 ‘쥐나라에서 고양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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